Archive for June, 2001

종교학자 니니안 스마트 Dr. Ninian Smart 소천

Sunday, June 3rd, 2001

비교종교학의 거두 니니안 스마트 박사가 향년 73세로 소천했다. 스마트 박사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스스로를 일컬어 “성공회-불교 신자”(Episcopalian-Buddhist)라고 말한 것처럼 “어느 특정 종교만이 진리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견해를 피력해왔다. 그는 독실한 성공회 신자로서, 그리고 불교에 대한 깊은 연구자로서 현대 종교학에 중요한 학문적 공헌을 남겼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전통적인 스코틀랜드식 킬츠(남성용 치마)를 입고 다닌 것으로도 유명했다. 니니안 스마트 박사는 한국어로도 번역된 {현대 종교학}(청년사)를 비롯하여 종교 경험,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관계 등을 연구한 30여권을 저작을 냈다. 스마트 박사는 지난 1월 영국 랭캐스터에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ENI)

과학자이자 성공회 사제 템플턴상 수상

Sunday, June 3rd, 2001

영국성공회 사제이자 과학자인 아서 피코크(72세) 신부가 종교 발전의 공로로 수여되는 2001년도 템플턴 상을 수상했다. 옥스퍼드 대학교 신학부 교수인 피코크 신부는 1986년 성직-과학자 협회(the Society of Ordained Scientists)를 설립하고,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상금을 주는 이 템플턴 상의 역대 수상자는 마더 테레사와 알렉산더 솔제니친 등이다.

아서 피코크 신부약력에 따르면 피코크 신부는 전통적인 성공회 집안에서 자라났으나, 대학 시절에는 “그리스도교에서 멀어져서”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캔터베리 대주교 윌리암 템플의 설교를 들은 후에 그리스도교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대량학살의 공포를 통해서 악의 문제에 대해 접근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여 최우수학생으로 졸업한 그는 옥스퍼드에서 박테리아 연구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1952년 DNA 구조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었을 때, 그 연구팀의 일원으로 참여했으며, 세계 유수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다가 1962년 옥스퍼드 최고의 학위인 과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또한 버밍햄 대학교에서 종교와 과학 철학을 공부했으며, 1971년 신학사 학위를 받고 영국성공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1982는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신학박사와 과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피코크 신부는 “과학은 전 지구적인 언어이며 우리 시대의 재산”이라며 “새천년이 시작된 지금이야말로 모든 종교의 사상가와 관련자들에게 과학의 보편적인 전망을 창조적으로 접목시킬 수 있는 때”라고 말했다.

(Anglican Journal)

중국교회의 앞날 – K.H.Ting 주교의 생각

Sunday, June 3rd, 2001

얼마 전까지 중국교회를 대표하던 K.H.팅 주교는 현재 85세로 요즘 몸이 쇠약해 많이 움직일 수 없는 처지이다. 하지만 그는 중국 그리스도교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으며, 지금도 중국교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중국교회의 팅 주교최근 미국성공회 대표단의 방문으로 마련된 만찬에서 팅 주교는 성공회라는 교파는 중국의 초교파적인 교회에서는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라면서도, “성공회 출신의 주교와 사제들은 높은 지적 수준과 훌륭한 신학 교육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성공회 주교와 사제들은 지역 교회의 형성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중국교회 전체를 통해서도 지도적인 위치에서 교회를 이끌고 있다. 현재 팅 주교는 은퇴한데다, 성공회 교파 소속으로 자처하는 사제는 없지만 성공회의 유산인 공동기도서와 성찬례 중심의 성공회식 예배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중국 학생들도 성공회 예전을 들여오기도 하며, 예복을 입기도 한다. 팅 주교는 이를 보면서 “우리 중국교회가 그리스도교회 전체를 대신하여 실험을 하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교회의 급속한 성장은 몇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데, 팅 주교는 이러한 중국 교회의 신학적인 방향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일치를 유지하는 열쇠는 신앙과 예배에 관련하여 상호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팅 주교는 복음전도에 관한 깊은 관심이 곧바로 성사신학에 대한 존폐여부를 논의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현재의 일치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상호 존중을 위해 우리 교회 안에서는 많은 것들이 생략되고 있고, 우리의 신학적인 생활과 사고 방식을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좀더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신학생들이 학교 신학이 아닌 신학 본연에 관심을 가져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팅 주교는 뉴욕 콜롬비아 유니온 신학교를 졸업하고 난징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다가 1950년대 초에 주교가 됐다. 당시 교회는 반(反) 공산주의 입장에 서지 않았다. 이에 대해 팅 주교는 “중국에서 교회가 반(反) 공산주의 노선을 수용한다면, 그 선교의 결실은 없어지고 말 것이다. 지금은 더욱 그렇다.” 팅 주교는 “교회에 대한 공산당의 태도는 변화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Anglican Journ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