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February, 2007

사순절에 받은 편지 하나

Sunday, February 25th, 2007

한국의 친구 신부님에게서 문안 편지를 받았다. 사순절에 맞추어 똑바로 살라는 죽비로 들어야겠다. 서툴게 관구 홈페이지에 올린 글로 생겨난 논란을 옆에서 보고 안타까워 했노라고 위로도 전했다. 그러나 정작 내 부끄러움이 깊어진다. 이 무렵에 신부님 자신도 내내 부끄러운 자화상을 그대로 드러내 나누려 했다. 굳이 전화하여 이런 부끄러움을 되돌아보며 사순절을 보내고 싶노라면서 허락을 받아 그 부분을 옮겨 본다.

얼마전 주 신부님 맘 고생이 심했을 것 같아서 어떻게 위로를 하나 하고 고심하다가 그냥 지나쳤습니다. 관구 홈페이지에서 일고 있던 논쟁을 보고 나도 한 숟갈 보태는 심정에서 주 신부님 입장에 지지를 보내는 글을 올릴까 하다 그냥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글 재주도 없지만 신앙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 또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중요한 현안들에 대해서 워낙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온란인 상에서 논쟁을 한다는 게 제게는 익숙치 않을뿐 아니라 그들과 논쟁해서 얻는 것이란 게 결국엔 깊은 상처입은 내 마음밖에 남지 않는다고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주 신부님 혼자서 고군 분투 하시는 걸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작심하고 공격적으로 따져묻고 비수를 날리는 이들에게 일일이 점잖케 대꾸하시며 사제로서 품위를 지키시는 걸 보면서 힘겨워 하시는 주 신부님을 뵙는 듯 했습니다.

내가 좀 저만치 가면 그만큼의 여유가 우리 신부님들께도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차라리 건방진 생각이 앞섰던 일이었다. 또한 논란의 초점을 분명히 해야 우리 신앙의 깊이와 넓이를 키울 수 있겠다 싶어서 설익은 이야기나마 나누려했을 뿐이었다. 어쨌든 그게 그 뜻하는 만큼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역시 내 부족함이 큰 탓이리라. 힘겨운 이유는 사실 다른데 있었다. 나중에 털어 놓을 기회가 있으리라.

친구 신부님은 교회의 부끄러움을 토로하고자 마음 먹은 듯하다.

**교구는 갈수록 재밌어 집니다. 다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곳이라서(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터 놓고 뭔가 진지하게 소통하기가 쉽지 않은 그런 곳이 돼가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우리들 안에 서로가 서로에 대해 무시하고 폄하하는 그런 풍토가 갈수록 짙어 지는 듯 여겨집니다. 나 아니면 안돼라는 식의 오만함과 독선의 힘이 갈수록 커져서 자신 이외에는 **교구에서 제대로 일을 할 만한 사람들이 없는 것 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저 같은 사람들은 발 붙일 곳이 별로 없는 곳이 돼가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 않고 지내지요.

웬 욕심과 지배욕들이 그리 강하고 많은지… 사제들을 가만 살펴보고 있노라면 우리 자신들이 뭔가에 미친듯 허기진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무서울 정도입니다. 여유라곤 보이지 않는 삶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단단히 잘못가고 있구나! 하는 탄식과 두려움이 밀려오곤 합니다.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는 듯 한데 제 정신들을 못차리고 살고 있는 듯 보이지요.

예수님께서 늘 깨어 있으라! 하신 말씀이 지금 우리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라고 여겨집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지요.

삶에서 행복과 불행 그리고 우리들이 그렇게 바라마지 않는 복이란 게 하늘에서 하느님이 이쁜 놈들에게 뚝 떨어뜨려주는 그런 게 아니라 내 마음에서 내가 창조해 내는 나의 창조물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내 마음으로부터 일체의 모든 것이 시작되고 창조됨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이지요. 일체유심조라 했지요… 주 신부님께서도 마음로부터 짓는 행복과 복을 많이 많이 창조하시길 빕니다.

광야에서 유혹받으신 예수님의 복음 이야기를 우리 성직자들은 신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했을까? 내 자신에게 이 유혹 이기신 이야기를 다시 돌려서 새김질하는 중이다.

사순절 편지 감사합니다, 신부님. 이어서 전화로나마 잠시 바다 건너 나눈 목소리가 정말 반가웠어요. 주신 말씀에서 많은 걸 다시 배웠습니다. 신부님도 마음에 많은 행복을 만들어 가세요.

재의 수요일 단상 – 관구장 회의

Wednesday, February 21st, 2007

이마에 재를 받는 순간의 그 엄숙함을 지키며 스스로를 침잠시키고 있는 참이다. “인생아, 기억하라.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선언은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선언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생 무상을 말하는 것도 아니요, 다들 죽을 존재들이라는 운명을 되새겨주는 것만도 아니다. 이 선언은 우리가 맞이하는 죽음의 끝에 새로운 생명, 즉 우리가 먼지와 흙에서 창조되었듯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 새롭게 빗어지는 새로운 창조의 삶에 대한 기대까지도 담고 있다. 이 이중 의미의 선언이 관구장 회의 이후의 세계성공회, 특히 미국 성공회에게 더욱 깊고 아프게 다가올 것이다.

그리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관구장 회의 전체의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자기 모순들이 서로 충돌하기에 바빴던 허약한 모임이 또다른 희생양 잡기로 전락한 모습을 보노라니 답답할 뿐이다. 게다가 이런 모임이 이제는 [성공회 계약] 초안을 통하여 버젓이 교리적 파수견으로 등극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성공회의 역사가 새로 쓰일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성공회가 가져왔던 깊이와 넓이가 이런 알량한 모임으로 왜소화될 것을 예상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일치”라는 가치가 교묘하게 분열주의자들에게는 일치론자를 압박하는 좋은 무기가 되고, 새로운 “한 몸인 그리스도가 되어 스스로를 봉헌하는 일”이 목적인 성찬례는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볼모가 되어 버리는 광경이 관구장 회의에서 일어나는 다반사라면, 어찌 그들을 지도자로 따를 수 있겠는가? 어처구니 없는 떼쓰기와 협박이 신앙의 보수를 덧입고 날뛰는 괴기한 광경들이다. 자신은 영성체를 하지 않으면서, 성반을 받아들어 주님의 몸을 나눠주는 괴이한 행동은 도대체 어떤 신학에서 비롯되었단 말인가? 남부끄럽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공교롭게도 관구장 회의에 때맞춰 참으로 깊은 신열을 앓았다. 그 와중에도 관구장 회의의 진행 내용을 꼼꼼히 챙겨서 소개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반면교사가 아닌 이상 배울게 없는 사태로 막을 내렸고, 나도 더이상 힘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나흘 동안이나 침대와 책상 앞에 눕기와 앉기를 반복하다 지친 몸의 기운들이 재의 수요일을 통해서야 새로워지는 역설을 경험하고 있다.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그리하여 주님과 새로운 부활한 몸을 얻으리라는 희망 만이 힘이다. 신실한 세계성공회의 신자들과, 실망과 좌절로 이 사순절을 맞고 있는 미국 성공회의 여러 신자들에게 이런 희망에서 나오는 깊은 연대의 기도를 바치는 사순절을 만들어야 하겠다.

이 와중에 동료요 친구 사제인 리차드 헬머(The Rev. Richard Helmer) 신부는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난 축복된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자신에게 축복이었으며, 하느님의 손길이었는지를 깊은 성찰로 증언하고 있었다. 귀가 있는 자들은 이 외침을 들어라. 그리고 그가 감싸고 있는 사랑 안에서 함께 눈물 흘리는 이들을 보라!

이제 나는 그들과 함께 한다. 꼭 해야 한다면 그들과 함께 쓰러질 것이다. 하느님, 필요할 때에 그런 용기를 내게 주십시오.

아멘, 내 친구!

재의 수요일 참회 연도 Litany of Penitence

Wednesday, February 21st, 2007

재의 수요일뿐만 아니라 사순절 매일의 아침기도와 끝기도가 되도록, 글 귀 하나 하나를 숙고하며, 소리내어 바쳐야 하겠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자비하신 하느님, 우리는 주님과 우리 서로에게, 그리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성인들 앞에서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생각과 말과 행실로 저지른 죄와,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를 고백합니다.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는 온 마음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우리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고, 우리가 용서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섬기셨듯이 우리도 서로 섬기라 하신 말씀을 따르지 않았고, 그리스도의 뜻에 진실하지 못했으며, 주님의 성령을 슬프게 했습니다.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지난 날 우리의 불충과 교만과 위선과, 우리 생활 안에서 인내가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 주님, 우리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우리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다른 사람을 착취했습니다.
* 주님, 우리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우리 자신의 좌절로 분노하며, 다른 사람이 가진 행운을 자신과 비교하여 시기하였습니다.
* 주님, 우리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좋은 것들과 그 안락함에 빠져들었으며,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 정직하지 않았습니다.
* 주님, 우리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기도와 에배를 게을리하고, 우리 마음의 믿음을 다잡는 일에 소홀했습니다.
* 주님, 우리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저지른 잘못들을 회개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궁핍과 고통에 눈감았으며, 불의와 폭력에 무관심했습니다.
* 주님, 우리의 회개를 받아주소서.

우리의 그릇된 판단과, 이웃에 대한 무정한 생각들, 그리고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와 편견을 보낸 것을 회개합니다.
* 주님, 우리의 회개를 받아주소서.

주님의 창조세계를 낭비하고 오염시켰으며, 우리 후세에 대해 배려하지 않았음을 회개합니다.
* 주님, 우리의 회개를 받아주소서.

선하신 주님,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고, 주님의 진노를 거두어 주소서.
* 주님은 크신 자비이시니, 우리의 기도를 들으소서.

주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를 우리 안에서 이루소서.
* 그리하여 이 세상 안에서 주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하느님의 아들 우리 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수난을 통하여,
* 주님의 모든 성인과 성도들이 주님 부활의 기쁨에 참여하게 하소서.

전능하신 하느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부이시니 죄인의 죽음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가 사악함에서 돌이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일꾼들에게 분부하시어 회개하는 이들에게 사죄를 선포하게 하시고 죄를 없애는 힘을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거룩한 복음을 믿은 사람을 용서하시고 그 죄를 없애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할 수 있도록 주님께 구하고, 성령을 구하여,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참회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이제부터 우리의 남은 삶이 정결하고 거룩하게 되어 마지막 날에 주님의 영원한 기쁨에 참여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합니다. 아멘.

(미국성공회 기도서 267-269, cf. 한국성공회 기도서 116-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