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노벨상, 그리고 자본의 똘마니들
Monday, October 13th, 2008“폴 크루그먼, 노벨 경제학상 수상” 이른 아침에 인터넷 신문으로 듣는 소식이다. 노벨상에 관심 갈이 없지만, 폴 크루그먼이 올해의 수상자라는데 눈에 번쩍 뜨인 것은, 경제학을 알아서도, 노벨상을 우러러봐서도 아니다. 그저 눈에 익숙하고, 그 통찰력으로 세상살이 하나씩을 알게 해주는 한 칼럼니스트의 이름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에 애초에 관심이 없는 건 내 개인적인 무식때문이겠지만, 미국 경제, 금융 위기의 한가운데서, 가파르게 오른 물가와 범죄율을 살갗으로 느끼는 상황에 이 소식은 같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또 다른 사람을 떠오르게 했다. 1980년대인가 90년대인가 밀턴 프리드만이라는 노골적으로 발가벗은 자본주의 경제학자가 같은 이름의 상을 받았다. 이 프리드먼은 미국 레이건 정부와 영국 대처 정부의 강폭한 자본가들의 세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인물이었다. 그의 신자유주의 이론이 지배한 지난 25년 간의 결과물이 현재 미국 금융 위기이라는게 여러 사람들의 말이다. 그는 행복하게도 이 지경을 보지 않고 수를 다하고 재작년에 죽었다.
폴 크루그먼이 노벨상 선배인 프리드먼과 어떤 대척점에 있는지 상세히 판단한 능력이 내게는 없다. 최소한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 이론을 신봉하는 부시 정권과 그와 쌍둥이인 맥케인-페일린 후보의 경제 정책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자인 크루그먼을 보는 것으로 가늠할 정도다. 경제학에 문외한인 탓인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그의 정치 문화에 대한 분석이 빛난다. 영어를 충분히 즐길 만한 능력이 없는 탓이겠으나, 우리나라의 정운영에게는 못미쳐도(;-)), 그를 더이상 못읽는 처지에, 참아주고 읽을 만하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크루그먼은 오늘도 바쁘게 글을 올린다. 세계 경제까지 위기에 빠뜨린 워싱턴 부시 정권보다, 오히려 런던의 브라운 정권이 더 발빠르게, 그리고 좀더 정확하게 사태를 보고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애들의 눈을 가리는 것은 “사적인 것(민간소유)은 좋고, 공적인 것(공공소유)은 나쁘다”(private good, public bad)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그는 잊지 않는다.
이 이데올로기는 여느 자본주의의 기본 이념이겠으나, “하나님이 축복한 나라”에 우리나라를 통째로 봉헌하고 싶어하는 우리 정부의 똘만이들에게는 더 없는 경전이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이 이데올로기의 똘마니들에게는 그들 소수의 “집단적 개인”말고는 “함께 견디고 살아가야 할 우리”는 없다.
한편, 이 “우리”라는 점에서 폴 크루그먼이 그 비평의 지평을 넓혔으면 좋겠다(그를 잘 몰라하는 말이라면 다행이겠고). 미국이 제국으로서 세계 경제의 중핵인 것은 사실이나, 그 영향 아래서 살아가는 세계를 “우리”라는 큰 틀과 가치에서 보고 살폈으면 한다. 얼치기 세계주의자인 토마스 프리드먼 같은 이에게 세계 문제 분석을 내 맡기지 말라는 것이다. 내키지 않으면서도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를 그가 받은 노벨상에 붙여주고 싶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때문이다. 같은 신문의 니콜라스 크리스토프 같은 세계에 대한 지평과 연민과 경험이 그에게서도 드러나기를 바란다. 그러니 상금으로 세계 여행도 많이 하시라.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