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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omments on: 성삼일 &#8211; 다시 들춰본 생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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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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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y: 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187; Blog Archive &#187; 잡감: 죽음, 종교, 그리고 잡종된 기억의 발언</title>
		<link>http://viamedia.or.kr/2009/04/10/543/comment-page-1#comment-28917</link>
		<dc:creator>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187; Blog Archive &#187; 잡감: 죽음, 종교, 그리고 잡종된 기억의 발언</dc:creator>
		<pubDate>Thu, 02 Feb 2012 18:02:28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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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죽음에 대한 기억의 종교이다.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고통받는 사람과 연대하다가 스러진 한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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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y: 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187; Blog Archive &#187; 성주간 생각 &#8211;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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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187; Blog Archive &#187; 성주간 생각 &#8211;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dc:creator>
		<pubDate>Tue, 19 Apr 2011 06:56:1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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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성주간 전례에 관한 글을 써서 한국에 보냈다. 전례에 초점을 맞춰서, 그동안 블로그에 적었던 여러 생각을 부활 성삼일 전례 전체에 맞춰 다시 엮어 확장한 것이었다. 이런저런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성주간 전례에 관한 글을 써서 한국에 보냈다. 전례에 초점을 맞춰서, 그동안 블로그에 적었던 여러 생각을 부활 성삼일 전례 전체에 맞춰 다시 엮어 확장한 것이었다. 이런저런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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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y: 민노씨.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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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민노씨.네</dc:creator>
		<pubDate>Fri, 21 Aug 2009 03:54:5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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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strong&gt;위험한 기억과 투명한 죽음...&lt;/strong&gt;

그리스도교는 기억 위에 세워진 종교이다.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억이 그 기반이다. 그리스도의 삶이 그랬듯이, 그래서 결국 처형으로 마감되었듯이,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위험한 기억과 투명한 죽음&#8230;</strong></p>
<p>그리스도교는 기억 위에 세워진 종교이다.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억이 그 기반이다. 그리스도의 삶이 그랬듯이, 그래서 결국 처형으로 마감되었듯이,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8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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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y: 민노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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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민노씨</dc:creator>
		<pubDate>Fri, 21 Aug 2009 03:54:10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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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오랜만에 다시 읽어봅니다.. 
오래전에 이 글을 모티브로 제 부족한 생각을 더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는데, 쓰다가 말고 묵혀두고 있다가 최근의 몇몇 사건들 때문에 다시 이어서 써봤습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오랜만에 다시 읽어봅니다..<br />
오래전에 이 글을 모티브로 제 부족한 생각을 더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는데, 쓰다가 말고 묵혀두고 있다가 최근의 몇몇 사건들 때문에 다시 이어서 써봤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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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y: fr. joo</title>
		<link>http://viamedia.or.kr/2009/04/10/543/comment-page-1#comment-13426</link>
		<dc:creator>fr. joo</dc:creator>
		<pubDate>Sat, 30 May 2009 18:51:13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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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홍 / 깊은 생각을 나눠 주어서 거듭 고맙습니다. 여기서 드러내는 문제의식과 어떤 사안들에 대한 의견에 전반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토론하여 발전시킬 만한 좋은 주제들이 짧은 글에 많이 나온 탓이라 생각합니다만, 의견의 전개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있습니다. 특히 기억과 역사에 대한 언급에서,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다고 봅니다. &quot;누구&quot;의 기억이요, 역사인가 하는 것입니다. 중립적인 &#039;역사 비평&#039;은 없습니다. 십자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따라가기 힘든 이유입니다. 

철학이든 신학이든, 지식인이든 종교인이든, 제 스스로 매우 염려하는 것이 &quot;도통&quot;한 듯한 태도입니다. 역설적이게도 &quot;도통&quot;의 순간 자기 성찰이 죽어버립니다. 특히 우리처럼 &quot;변합 없는 진리&quot;에 대한 생각을 골몰히 하는 이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입니다.

이런 점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quot;상대화&quot;하는 일에 대한 언급은 깊이 새겨야 하리라 봅니다.  

깊은 대화를 이끌어 주셔서 고맙습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홍 / 깊은 생각을 나눠 주어서 거듭 고맙습니다. 여기서 드러내는 문제의식과 어떤 사안들에 대한 의견에 전반적으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p>
<p>토론하여 발전시킬 만한 좋은 주제들이 짧은 글에 많이 나온 탓이라 생각합니다만, 의견의 전개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있습니다. 특히 기억과 역사에 대한 언급에서,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다고 봅니다. &#8220;누구&#8221;의 기억이요, 역사인가 하는 것입니다. 중립적인 &#8216;역사 비평&#8217;은 없습니다. 십자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따라가기 힘든 이유입니다. </p>
<p>철학이든 신학이든, 지식인이든 종교인이든, 제 스스로 매우 염려하는 것이 &#8220;도통&#8221;한 듯한 태도입니다. 역설적이게도 &#8220;도통&#8221;의 순간 자기 성찰이 죽어버립니다. 특히 우리처럼 &#8220;변합 없는 진리&#8221;에 대한 생각을 골몰히 하는 이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입니다.</p>
<p>이런 점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8220;상대화&#8221;하는 일에 대한 언급은 깊이 새겨야 하리라 봅니다.  </p>
<p>깊은 대화를 이끌어 주셔서 고맙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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