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머튼, 성 프란시스 호칭 기도

한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병고와 굶주림에 고통받다가 안타깝게 숨을 거두었다. 슬픔과 안타까움에, 그리고 연원을 헤아릴 수 없이 끓어오르는 분노에 말을 잃는다. 가난과 외로움이 겹쳐 싹튼 죽음이었다. cf. 어느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민노씨)

“복되어라, 가난한 사람들아,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복되어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아,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복되어라, 지금 슬피 우는 사람들아,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루가 6:20-26, cf. 마태 5:3-12)

이 참된 복락의 선언이 어제오늘은 슬프기만 하다. 진중하며 힘 있는 희망의 기쁨이 될 노래(아래)가 더욱 슬프게 들린다. “내가 함께 있겠다”는 말씀은 헛된 약속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작은 그리스도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이웃들 안에 작은 그리스도로 함께 있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자신의 수도 성소를 식별하는 과정에서 프란시스 성인의 삶과 영성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일찍이 그가 적은 프란시스 성인을 향한 호칭 기도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진복 선언을 위한 그리스도의 투신과 실천이 무엇인지를 되새겨준다. 그것은 신앙이 요구하는 역설이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실천은 그 역설에서 권위를 얻지 않는가? 프란시스 성인은 그 역설을 살지 않으셨던가? 그 역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첫출발이 아니겠는가?

쓸쓸히 세상에 작별을 고한 최고은 작가와 세상의 모든 병들고 배고픈 이들을 위한 위탁 기도로, 이 주간 내내 드려야겠다. 독자들도 참여해 주시라.

“성 프란시스, 거룩한 사부여, 저를 위해 빌으소서.
성인께서는 주님께 다다르려 드리는 제 기도를 언제나 들어주시니,
제가 가난한 이들과 최대한 나눌 수 있도록 기도해 주소서.
그리하여 제가 굶는 만큼 다른 이들이 먹게 하시고,
그리하여 제가 고통당하는 만큼 다른 이들이 고통당하지 않게 하소서.
제가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조롱을 당할 때라도
웃고 노래하게 하시며,
제가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미친놈, 바보, 재수 없는 놈이라 욕을 먹을 때라도
춤추며 즐기게 하소서.
아멘.”

* 진복선언 – 러시아 정교회 챈트, 성공회 성가 556장

7 Responses to “토마스 머튼, 성 프란시스 호칭 기도”

  1. leopord Says: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http://oneitherside.tistory.com/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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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 joo Reply:

    leopard / 고마운 글 잘 읽었습니다. 기도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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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민노씨 Says:

    주신부님께서 마음을 나눠주시니 많은 위로가 됩니다…
    그 젊은 작가가 저 세상에선 맘껏 창작하고, 그 작품을 서로 나누는 그런 꿈을 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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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 joo Reply:

    민노씨 / 민노씨 글은 제 안에서 나오는 안타까움과 분노를 잘 드러내 줬어요. 고맙습니다.

    작가의 지친 영혼을 쉼을 얻었을 터이나, 세상에 남은 여러 처지를 생각하노라니 잘 꿈 꿔지지 않네요. 이런 기도의 사회적 연대와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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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짠이아빠 Says:

    저도 뉴스를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이러고도 우리가 예의지국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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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 joo Reply:

    짠이아빠 / 동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마도 그 예의는 “수오지심”(羞惡之心)과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자리한 것이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 그 예의의 기반이 사라지는 부끄러운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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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민노씨.네 Says:

    어느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

    ; 2011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어떤 죽음에 대해 이건 내 이야기다. 여기서 ‘내 이야기’라고 말하는 건 비유가 아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꼬라지를 보니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 나는 정말 그런 생각을 한다. 이건 무슨 자기연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배부른 동정도 아니다. 그냥 정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안에 있는 사회적 평균인으로서의 또 다른 자아는 나 자신에게 건조하게 속삭인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저렇게 되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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