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 잠시 멈춰가는 나그네

성공회 안에서 나를 깊이 염려하신 분들이 내 처지와 행동에 안타까움을 전한다. 요즘 보이는 내 글이 남들을 불편하게 하고, 그 효용이 남들이 기대하며 내게 매겨놓은 가치에 맞지 않으며, 더욱이 현실 안에서 ‘적절한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는 안타까움이다. 비슷한 말이라도 이 말을 전하는 사람이 다르기에, 그들의 깊고 안타까운 마음을 안다.

그 고마운 마음과 충고에 여전히 주저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그런 기대치에 형편없이 모자란 사람이거나(이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런 ‘효용성 기대’ 자체를 ‘철든 기성 사회’의 한 미끼라고 나 스스로 경계하는 탓일는지 모른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못하는 용기없는 말이라고 핀잔할지 몰라도, 내 주위에서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 잡았다는 이야기를 나는 들은 적이 없다.)

블로그 등에 쓰는 ‘잡감’은 진솔한 내 목소리인 탓에 내게 더 귀하다. 메아리가 별로 없지만, 이런 블로깅이야말로 깊이 고민하며 소통하려는 도구요 실천이다. 당장 산뜻한 지식 정보를 내놓고 짐짓 권위자인 체하거나, 그것으로 위험 없는 원만한 관계와 명성을 쌓기보다는(그럴 능력도 없음을 이미 밝혔다), 지식과 성찰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모습을 그대로 내보이고, 그렇게 살아가자고 다짐할 뿐이다.

frjoo-130530.png
(아, 이 난감한 표정!)

(그렇다고 지식 연구가요 생산자, 그리고 신학 교육에 책임을 느끼는 자로서 그걸 나누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블로그, 성공회 지식 프로젝트, 번역 프로젝트, 성공회 신문 기고 등을 꾸준히 했고, 사적으로 몇몇과 교회를 위한 대화의 통로를 마련했다. 그렇다면, 어떤 이들의 요구는 자기 입맛에 맞는 내용을 적어달라는 볼멘소리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 경험에서 80년대에 생각했던 “세상의 변화”에 관한 고민이 “세상이 왜 변하지 않는가?”라는 색깔 다른 질문으로 옮겨갔을 때, ‘자기 변화 먼저’ ‘세상 원래 그래’라는 도통한 체념적 답에 나 스스로 기대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직 ‘세상 물정 모른 채’로, 나 자신과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며, 여전히 흔들리며 산다. 단호한 지도자나 명석한 학자, 지혜로운 선생을 기대했다면 일찍 포기하라고 말씀드리련다. 요셉 성인처럼 나는 길섶에 주저앉은 이들에게 잠시 멈춰가는 나그네일 뿐.

나그네는 적어도, 권력을 부리지 않는다.

12 Responses to “요셉 – 잠시 멈춰가는 나그네”

  1. Hyeokil Kwon Says:

    메아리~. 신부님의 글은 늘 잰 걸음을 옮기기 바쁜 저를 잠시 길섶에 주저 앉아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Reply]

    fr. joo Reply:

    방문해주셔서 메아리를 쳐주시니 고맙습니다. 가까운 데 있으면서 엇나가 자주 만나지 못하고 대화를 나누지 못해 좀 아쉽네요. 기회가 있겠지요. 평화를 빕니다.

    [Reply]

  2. 아거 Says:

    사진의 캡션이 재밌습니다. 전혀 난감한 것 같진 않구요. 😉 다빈치 선생께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표정입니다. 🙂

    제 마음속엔 신부님은 늘 빛이십니다.

    [Reply]

    fr. joo Reply:

    난감한 처지와 표정 가운데 어느 지점이겠지요. 지난 번 파리 방문에서 다빈치 선생의 그림에서 큰 영감을 받으신 모양이네요. 🙂

    마지막 말씀은 무겁게 새기겠습니다. 평화!

    [Reply]

  3. YongHan Chung Says:

    신부님, 호랑이 굴에 들어와 호랑이를 잡기는커녕 잡아 먹히고 있는 또 한사람의 잰채하는 종교인입니다. 이제 다시 호랑이 굴을 나가려해도 그 마저 호락호락하지를 않네요…

    [Reply]

  4. 주낙현 Says:

    오랜만이에요, 정목사님. 떠나신 후에 함께 메아리 울리던 좋은 상대가 없어져서 상당히 우울해요. 앞에 간 사람이 좀 더 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이제는 정목사님이 추월하셨으니 좋은 모습으로 이끌어 주세요. 😉 가족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Reply]

  5. YongHan Chung Says:

    신부님 출근 길 버스 정류장입니다. 얼마나 반가운지요. 저도 외로운 자리에 있는지라 신부님과의 대화가 때때로 가슴더리도록 그립습니다. 언제나 다시 뵈올려는지요… 신부님의 귀한 사역을 멀리서나마 계속 기도로 응원드립니다. 사모님과 아이들에게 저 또한 안부 부탁드립니다. 저희 제주도 잘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둘째 생일이라 마음이…^*^

    [Reply]

  6. YongHan Chung Says:

    신부님 출근 길 버스 정류장입니다. 얼마나 반가운지요. 저도 외로운 자리에 있는지라 신부님과의 대화가 때때로 가슴더리도록 그립습니다. 언제나 다시 뵈올려는지요… 신부님의 귀한 사역을 멀리서나마 계속 기도로 응원드립니다. 사모님과 아이들에게 저 또한 안부 부탁드립니다. 저희 제주도 잘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둘째 생일이라 마음이…^*^

    [Reply]

  7. Lee Kyoungsil Says:

    어제 뵙고 오늘 처음 블로그에 들어와 보네요^^*
    근엄하신 신부님이 아니라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이네요
    그런데 세상은 그 굴에 호랑이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Reply]

  8. 주낙현 Says:

    이제야 블로그에 달린 댓글을 확인했어요. 그때 저도 너무나 반가웠고요. 귀한 분들과 만남과 대화를 잘 즐겼습니다. 평화가 늘 함께하기를 빕니다.

    [Reply]

  9. Donghee Kim Says:

    나그네로서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하는 글이네요..

    [Reply]

  10. 주사랑 Says:

    주신부님! 혹시라도 어제 찾아뵌 개신교도로서 무조건 카톨릭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걸로 느끼셨다면 죄송해요! 성심유치원과 성심여고를 나온 저로서는 유치원 원장수녀님을 정말 좋아했었구요^^
    여고시절엔 크로닌 책에 빠져 ..특히 ‘고독과 순결의 노래’ 통해 기독교인이었지만 청빈한 수녀가 되고싶어서 결국 고민하다 개종까지 생각하며 성당에 친구따라 갔었답니다^^
    늘 뒷정리로 힘들게 하던 문제 많은 친구가 평소 삶과 너무 다른 위선적 가면 쓴 모습에 실망했었고.. 또 학교 신부님이 한번씩 만취된 채 학교를 순회하시며 우리들을 음침한 눈빛으로 보시는 것에 기겁을 하며 결국 꿈을 내려놓았었답니다!
    전 교파도 무엇도 아닌 오직 성경과 오직 예수님을 바라 볼뿐입니다..거기에서 어긋나면 천하에 누구도 아닌거고.. 맞으면 누군들 감히 제가 거부할까요!
    어찌되었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전하고자 많은 정진해오신 귀한 신부님 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충고를 기억하며 사람보고 선입견이 있었던 제 모습도 꺼내어 돌아보며 숨어있던 비판의 씨앗은 내려놓았습니다..
    여러 가르침들 정말 감사했구요..성토요일 꼭 가보고 싶은데 아버지가 계속 위독하셔서 서울에 없을 수 있어 장담은 못드리겠네요!!! 강건하셔서 더욱 많은 영혼들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제님으로,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주께로 인도하시는 선한목자되시길 기도드립니다~~~

    [Reply]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