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덫, 닻, 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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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덫, 닻, 돛 (마태 22:15-22)

마음에서는 하늘과 이상을 꿈꾸더라도 몸담은 현실의 유혹과 갈등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신앙인은 하늘과 땅의 경계 안에서 항상 흔들리며 삽니다. 오히려 너무 쉽게 하늘의 신앙을 확신하며 세상을 초탈했다는 주장을 경계해야 합니다. 세상 풍파에 흔들리는 마음의 연약함을 악용하여 신앙의 덫을 놓는 협잡꾼이 세상에 많습니다.

안타깝지만 종교 공동체에도 교묘한 논리와 산뜻한 입발림으로 함정을 파거나 근거 없는 뒷말로 신뢰를 흩어버리는 행태가 적지 않습니다. 신앙인은 사람의 안녕을 미끼로 친 덫을 식별하고, 풍파 속에서도 우리를 하느님께 붙들어 매는 신앙의 닻을 신뢰하고, 그리스도의 바람을 따라 돛을 올려 신앙의 순례를 계속합니다. 말과 발음처럼 혼동하기 쉬운 신앙의 덫과 닻과 돛을 식별하는 신앙이 간절합니다.

– 한 사람을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이 위선의 야합을 만듭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민족주의자 바리사이파와 로마 제국의 앞잡이인 헤로데 당원이 협잡하여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합니다. 공동의 적이 생기면 그동안 적이었던 사람도 친구로 변합니다. 적과 친구를 정의의 잣대로 구분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아침저녁으로 바꿉니다. 이들의 합동작전이 아침에는 잠시 성공할지 몰라도, 저녁에는 서로 배신하여 물고 뜯고 맙니다.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나 정치 행태가 이와 같아 안타깝습니다. 트집을 잡고 덫을 놓으려는 행태는 머지않아 자중지란에 빠집니다. 신앙인은 이 애처로운 일에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 신앙인은 세상 풍파의 출렁임에 의연합니다. 우리 삶이 흔들린다 해도 깊고 굳건한 바닥에 닻을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삶의 크고 작은 풍파를 없애주는 분이 아니라, 우리 삶이 표류하지 않게 하는 근거입니다. 신앙인은 흔들리는 삶을 오히려 더 큰 파도를 넘는 훈련과 준비로 삼습니다. 더 깊고 큰 하느님에 기댄 사람은 세상이 유혹하려고 뿌리는 거짓 선전과 선동에 귀와 입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카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분명히 식별하여, 처세와 지위로 위장한 거짓 권력마저도 끝내는 하느님의 더 크신 권위 아래 복종한다는 진실을 확인합니다.

– 풍파를 넘은 항해로만 우리 신앙은 성숙하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순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순례는 그리스도의 삶이 역사에 불어넣은 바람을 타고 전진합니다. 모함을 이기고 정의를 세우며 사랑을 펼치는 그리스도의 바람을 온몸에 받는 돛을 높이 세웁니다.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바람 방향에 돛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교회의 가르침과 전통 안에서 지도를 확인하고, 신앙의 배움과 전례로 단련된 근육으로 노를 저어나갑니다. 이 풍파의 바다를 피하거나 우리의 수고를 다하지 않고서는 전진은 없습니다. 신앙인은 카이사르라는 세상의 풍파 위에 하느님의 항로를 그려내며 살아갑니다. 교회의 임무이며 신앙인의 책임입니다.

One Response to “신앙의 덫, 닻, 돛”

  1. Lee Jae Woo Says:

    아,
    예수라는 분,
    그리스도로 고백되는 분,
    그 분의 눈,
    그 분의 가슴을 나의 것으로 삼기!
    그 분에게 닻을 내리고
    그 분으로 돛을 삼고 살고져~!
    이 요상스러운 세파를 견디고 넘어서 저 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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