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와 교회 – 스트링펠로우에 기대어

Tuesday, March 24th, 2009

우리 교회 안에서 지속되는 논란 거리 가운데 하나는 신학교와 교회의 관계이다. 서로에게 불평들이 많다. 요즘 일반화된 평가 기준으로 볼 때, 교수진이나 학교 시설이 형편없던 옛날이나, 그 수준과 질의 변화가 뚜렷하다는 지금이나, 이 불평과 투정에서 만큼은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옛날이 좋았노라고 회고하는 이들도 있어서, 나름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훨씬 애쓰는 현직 신학 교수진들을 분노케 한다는 소식도 듣는다.

그런데도 신학교와 교회는 멀어지고, 그 결과, 교회는 교회 안에, 신학교는 대학 안에 자리를 틀고 앉아서, 서로에게 손가락질한다. 한쪽은 ‘신학’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반지성주의 교회로, 다른 한쪽은 어디 하나 써먹을 데 없는 언어 유희나 즐기는 학문주의 집단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고들 맞고소한다. 그 어느 편이든 그 진단이 틀린 것 만은 아니다. 다만 그 와중에 어느 쪽에서도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소리를 듣기 어렵다.

나 같은 먹물들은 그럴듯한 용어과 개념으로 입바른 소리는 잘 하는데, 그 개념과 논리를 스스로에게 적용시키는데는 쑥맥이다. 그게 아니라면 학문 장사를 위한 위선이겠다. 사목자들은 거친 생존 현장의 살벌함을 호위삼아, 방향이 뒤틀린 부지런함으로 사유와 성찰의 게으름을 덮으려고 신학 무용론 같은 반지성주의를 부추긴다. 그러면서 신학 입문 1강이면 늘 등장하는, 닳고 닳은 “삶의 자리”(Sitz im Leben)를 들먹이며 서로를 비판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신학교는 자신의 삶의 자리를 외면하고, 교회는 자기 성찰의 자리를 거절한다. 신학교의 삶의 자리는 큰 의미의 “교회”인데도 스스로를 대학이 짐짓 이상하는 학문 세계에 가두고, 교회는 자기 실천과 행동이 끊임없는 기준과 도전이 될 “신학”에 자리잡기를 멸시한다.

이를 넘어설 대안적 신학 교육은 무엇인가? 아니, 그보다 먼저 뭐가 뒤틀려 있을까?

뉴욕 할렘의 인권 변호사, 사회개혁가, 칼럼리스트, 그리고 성공회 (평신도) 신학자였던 스트링펠로우(William Stringfellow)는 30여 년 전에 이 점을 뼈아프게 지적한 바 있다. 그의 글 단편에서 읽는 것은 신학교의 자리와, 신학교의 임무이다. 그 시절과 지금은 분명 여러모로 다를 것이다. 그러나 반성이 학문의 기초이니, 나 같은 사이비 먹물이나, 신학교 관계자는 먼저 그의 신학교 비평을 쓰게 들었으면 좋겠다. 나로서는 평소 고민하던 바를 명징한 언어로 후려 맞으니 속이 다 후련하다.

신학교는 대체로 학문적으로 인정받기를 갈망하며, 스스로 대학의 기풍과 위계 안에 자리잡으려 했다. 그러나 신학교는 대학의 기풍과 위계와 같은 것들이 얼마나 신학교의 특별한 소명과 동떨어진 것이며 그 소명을 혐오하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신학교는 신앙을 이데올리기적으로 번안한 내용들을 유포하는데 스스로를 굴복시키고 말았다. 이것은 사상을 끊임없이 분류하고 비교하는 일에만 몰두하게 하여, 성서적인 증언에 담긴 역동성을 손상시킨다. 이 모든 것들은 투신을 머뭇거리게 하고, 신학에 대한 신심어린 공부를 회피하게 만든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지금, 사제 서품이나 목사 안수에 필수적인 조건은 이 직무에 부름받은 사람이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종교 연구가나 신학적 논쟁가나, 혹은 학자연하는 사람들과는 구별된다는 뜻이다. 이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신학교의 임무이며, 임무여야 한다. 그러므로 신학교가 자리할 곳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이지, 대학 울타리 안이 아니다. 성직자를 준비시키고 그 능력을 키워주는 일을 위해 신학교가 취해야 할 태도는 교회의 모본을 보여줘야 하는 일이지, 대학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대학의 이데올로기와 함께 유희하는 신학교는 성직자를 어떤 전문가 집단으로 만들어 버릴 우려가 있으며, 이는 교회 신자들의 성장을 중단시키고, 성직자의 소명이라 할 봉사자의 명분에도 모순된다…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가? 무엇보다도 신학교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한 것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The University and the Seminary,” A Keeper of the Word: Selected Writings of William Stringfellow (1994)

오바마, 린칭, 그리고 밥 말리 “구원의 노래”

Friday, September 12th, 2008

첫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투표권도 없는 이방인인 내게 이게 중요한 질문인 것은 역시 미국이라는 ‘제국’의 위치때문이다. 미국이 기침하면, 우리 한반도는? ‘같은 “제국”이니 그 통치자가 부시-매케인이든 오바마이든 매 한가지’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적어도 지난 8년 간 우리는 그 차이를 실감했다.

오바마 당선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뉴욕 타임즈에서만도 여러 생각들이 엇갈린다. 빈정거리는 사람부터 시작해서(브룩스), 사람의 뱃속을 건들지 못하는게 약점이라고 훈수두는 듯하면서 싫은 속내를 은근히 들이미는 사람(프리드먼), 그리고 이른바 미국 문화에 편만한 반지성주의를 찬찬히 분석해 보이는 시선(크루그먼)까지 다양하다. 오바마 지지자들의 걱정을 물어보니, 많은 이들이 크루그먼과 생각을 같이 한다. 게다가 시꺼먼 속이 훤히 보이는 공화당의 페일린 부통령 후보 지명 이후의 판세에 우려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인종차별 문제는 순서에서 밀려 있다. 백인들만 만나봐서 그런가? 아마 반지성주의, 전쟁과 애국주의, 그 다음으로 인종 차별을 걸림돌의 순위로 두는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야 내 피부가 “살색”이라 당연히 받아들여지지만, 이곳에서는 내 피부와 머리칼은 도드라진다. 피부는 감출 수 없다. ‘오바마가 흑인이 아니라면 이번 선거는 따놓은 당산 아니냐?”는 내 물음에 백인 리버럴들은 그리 쉽게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게 이면에 작동하지만, 이미 미국 대선은 워낙 호락호락하지 않은 게임이 되었고, 양 당 지지자들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분열의 폭이 크다는 이유다.

“육체의 힘을 취하고, 영혼을 빼앗아라.”

피부색이 다른 나는 여전히 끙, 하니 앉아 다른 생각을 한다. 미국 백인들이 전혀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미국 흑인들의 삶과 역사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런던 행 비행기 안에서 쭈그리고 보았던 영화 “The Great Debaters”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1930년대 미국 흑인 대학의 유명한 토론 경쟁 팀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는 흑인 차별과 학대의 참혹한 표현이었던 “린칭”(lynching)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팀의 지도 교수인 톨슨 교수(덴젤 워싱턴 분)는 “린칭”의 기원과 속내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런 말이 있지...] ‘노예들을 죽이지 마라. 대신에 그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 주어라. 노예는 쓸모가 있으니 잘 사육해야 한다.’ 린치가 누군지 아는 사람 있나?… 그는 웨스트 인디의 악독한 노예 소유주였네. 식민지 버지니아에 살던 노예 주인들은 이 노예들을 다루는데 문제가 생겼어. 그래서 이들은 린치(Mr. Lynch)를 보내서 그가 쓰는 방법을 가르치게 했지. ‘린칭’이라는 말은 그 사람 성을 딴거네. 그의 방법은 아주 간단했네. 하지만 아주 악독한 것이었지. ‘노예의 육체를 강하게 유지시켜라.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약하게, 노예 주인에게 의지하도록 만들어라. 육체의 힘을 취하고, 영혼을 빼앗아라.’

린칭이 실감 있게 안들어 온다고? 이곳을 열어 보시라! (노약자들은 삼가시라). 린칭 장면을 담아 우편 엽서로 만들어 보냈던 여러 백인들의 ‘시선’에 동참해 보시라.

실제로 린칭은 노예 해방 선언 이후 더욱 극심해졌다. 이 참혹한 사적 형벌인 린칭은 20세기에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1960년 대의 미국 인권 운동 이후에야 린칭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대신 이 린칭의 ‘철학’(차라리 신학)은 다른 온갖 차별의 효과적인 원리로 작동하며 여러 곳에 숨어 들어 있다.

밥 말리 – [구원의 노래]

독일 공연에서 노래하는 밥 말리(Bob Marley)를 엿보았다. 그의 얼굴에 흐르는 땀이 눈물처럼 느껴졌다. 흑인 노예들의 땀은 그들의 피눈물이었다.


Redemption Song

Old pirates, yes they rob I
Sold I to the merchant ships
Minutes after they took I
From the bottomless pit
But my hand was made strong
By the hands of the Almighty
We forward in this generation
Triumphantly
Won’t you help to sing
These songs of freedom
‘Cause they all I ever had

Redemption Song, Redemption Song

Emancipate yourself from mental slavery
None but ourselves can free our minds
Have no fear for atomic energy
‘Cause none of them can stop the time
How long shall they kill our prophets
While we stand aside and look
Some say it’s just a part of it
We’ve got to fullfill the book
Won’t you help to sing
These songs of freedom
‘Cause they all I ever had

Redemption Song, Redemption Song, Redemption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