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수요일 (VI) – T. S. 엘리엇

Tuesday, February 16th, 2010

재의 수요일 – T. S. 엘리엇

Ash Wednesday (1930) by T. S. Eliot (1888~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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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

다시 돌아가리라 희망하지 않더라도
희망하지 않더라도
돌아가리라 희망하지 않더라도

얻음과 잃음 사이에서 흔들리느니
꿈이 교차하는 이 짧은 전이 속에서
탄생과 죽음 사이를 꿈처럼 교차하는 황혼은
(신부님, 저를 축복하소서) 내 비록 이를 바라노라 바라지 않더라도
바위 해안을 향해 난 넓은 창으로부터
하얀 돛배들은 여전히 바다를 향해 비상하느니, 바다를 향한 비상
부러지지 않은 날개들

그리고 추락한 마음은 뻣뻣해져서 기뻐하느니
떨어진 라일락 꽃과 잃어버린 바다의 목소리 안에서
그리고 나약한 영은 급히도 반항하느니
굽은 금 지팡이를 얻으려고, 그리고 잃어버린 바다 내음은
급히도 되찾으려 하느니
메추라기의 울음소리와 급선회하는 물새떼를
그리고 멀어 버린 눈이 만드나니
상아로 만든 문 사이의 빈 형상을
그리고 내음은 모래땅의 소금 냄새를 새롭게 하느니

이는 죽음과 태어남 사이의 긴장된 시간
세 개의 꿈이 교차하는 고독의 장소
푸른 바위 사이에서
그러나 주목(朱木)을 흔들고 나온 목소리가 흘러갈 때
다른 주목이 흔들리고 답하게 하라.

복된 누이여, 거룩한 어머니, 샘의 영, 정원의 영이여,
어리석은 우리가 스스로 조롱하지 않도록 하소서.
보살피고 보살피지 않도록 가르쳐 주소서
정지하여 앉아 있도록 가르쳐 주소서
이 바위들 사이에서마저
누이여, 어머니여,
강의 영이여, 바다의 영이여
내가 분열되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 울부짖음이 주님께 사무치게 하소서.

(번역: 주낙현 신부)

“화해를 위한 기도 요청”

Tuesday, March 10th, 2009

일전에 교회에서 내는 최소한의 성명서에 대해 운운했는데, 때마침 이메일로 “기도 요청”을 호소하는 글을 받았다. 적어도 우리 교회가 냈던 여느 성명서들과는 다른 시각과 맛과 호소력이 있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언급하면서도 무엇보다 자기 반성을 촉구하고 있거니와, 단문들에, 넘치지 않는 은유와 수사가 적절해 보인다.

참으로 다행이라 보는 건, 남북 화해에 대한 응시가 예전의 낭만적인 통일 운동의 시각을 많이 벗어났다는 인상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화해의 문제가 여전히 큰 화두다. 남과 북이 한 혈육이요, 한 민족이기 때문이 아니다. 실은 이 통일지상주의의 “뒷구녕”에서 남과 북은 독재를 일삼았다. 압제자는 시민의 불안과 공포를 자기 정치의 거름으로 삼으니, 최근의 남북 대결 양상은 양쪽에 있는 두 사회가 한줌 밖에 안되는 지배 세력의 자리를 굳건히 하려는 뻔한 책략에서 비롯했다. (이런 점에서 반목과 질시를 에너지로 삼아 분열하는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이 “두 나라”의 화해는 더이상 어떤 압제의 핑계를 만들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요 출발점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또한 이 화해의 문제는 우리 “남한” 사회, 그리고 우리 교계 안에 더 큰 화두로 남아 있다.)

스스로 참회하고, 화해를 위해 기도하며, 좀더 너그러운 신앙과 신학적 담론을 형성하자는 주문, 그리고 생명에 대한 생각을 깊이하자는 이 호소는 아직 성글지만, 이 사순절에 참 반가운 격문이다.

그런데, 이 격문을 어디에다 붙였나? 유통의 방법을 제시했어야 했는데, 성직자들에게만 이메일 “한방”으로 던지고는 말았다. 교회 주보에 싣든지, 웹사이트에 싣든지, 아니면 미사 때마다 드리는 [교회와 세상을 위한 기도]의 형식을 빌도록, 좀 친절했었으면 싶다. 고마운 마음에 던지는 투정이다.

남북 화해를 위한 기도 운동을 요청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환경이 나빠지고 있습니다. 내일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경제가 안 좋아서 경제에 일가견이 있다는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했는데, 그게 좋아질 기미가 그다지 보이지 않습니다.

외눈박이 맘몬적 경제 논리로만 모든 문제를 풀어가려고 하다 보니, 그것과 맞물려 있는 정의, 평화, 민주주의, 주권 재민의 문제, 생존권, 역사, 교육, 인권, 언론의 문제, 공정성, 국가폭력, 생명의 문제 등 수많은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개발독재의 야만성이 다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 야만의 잔재들을 문신으로 새긴 천박한 폭력적 경제 논리가 우리의 삶과 영혼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던 개발독재의 망령이 국토 개조란 허망한 이름으로 이 강토와 생명을 향해 폭행을 가하고 있습니다. 맘몬에게 얼을 빼앗긴 자들이 역사와 생명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평화와 화해는 멀어지고 갈등이 깊어갑니다. 한때 개선되었던 남북관계가 대결 상황으로 악화되어가고 있습니다. 과거 암울했던 냉전 시대로 다시 돌아간 듯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렇듯 일그러진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특히 교회는 이런 시대 상황에 대해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공생애 처음 광야에서 맘몬의 손짓을 물리친 서른 살 청년 예수를 생각해 봅니다. 부끄럽습니다! 우리(교회)는 그 맘몬의 손짓을 현실론과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교회의 삶의 자리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이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맘몬이 던져놓은,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 라는 현실론의 올가미에 걸려들자마자,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뒷전으로 밀쳐놓는 큰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몹시 부끄럽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원죄이며, 우리(교회)가 안고 가야 할 시대의 고통입니다.

맘몬주의가 세상의 주도권을 차지하면 곧바로 평화의 문제가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최근 한반도에서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남북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고, 평화가 한없이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일구었던 화해의 분위기가 와해되는 상황을 목도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평화를 위해 부르셨고, 평화의 일꾼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평화가 깨어지는 이런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의롭다고 여기시는 일은 평화를 이루는 일에 기도의 힘을 합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지금까지의 죄책에 대한 고백과 참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의와 평화, 평등, 자유의 근본적인 가치를 불편해 했던 이기심과 안일함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물질적 가치관에 기초한 맘몬주의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참회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 먼저 남쪽 내부에 화해와 용서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남과 북 화해 이전에 남쪽 내부에 오래도록 얽힌 증오의 그림자를 거두어내는 화해와 용서를 위한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남과 북의 화해의 문제는 남과 북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남쪽 내부의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셋째, 우리 교회 안에서 먼저 포용과 화해가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고귀한 일을 올바르게 감당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 교회 안에 생각의 차이를 담아 들을 수 있는 신학, 신앙적 아량이 필요합니다. 어떤 편향도 담아내는 큰 그릇(담론)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서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넷째, 생명의 문제는 그 어떤 이유에서도 포기되거나 유보될 수 없다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세상에 알리는 우리가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생명은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돌들이 소리치기 전에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2009년 3월 10일

TOPIK

대한성공회 평화통일선교특별위원회

어렵고 힘든 시절 – 사순절기 시작

Wednesday, February 25th, 2009

사순절의 시작이다. 재의 수요일 미사는 학교 채플에서가 아니라 가까운 교회에서 가족들과 함께 드렸다. 재를 이마에 받고서 “기억하라,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선언을 듣는다.

영성체를 하는 동안, 교회의 Angel Band는 성당 뒤켠에서 만돌린을 튕기고 작은 북을 두드리며 Hard Times Come Again No More 를 불렀고, 자리에 돌아온 우리도 모두 따라 읆었다. 구슬픈 노래지만, 좀 발랄하게 연주하며 불렀다. 사순절 내내 부활의 희망을 키워내려는 것이리라. 어쨌든 어렵고 힘든 시절이다. 작은 이들에게 더욱 그렇다.

삶의 즐거움을 잠시 멈추고 삶의 많은 눈물을 세어 보세나.
우리 모두,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슬픔을 맛보며.

이번 사순절 기도와 묵상은 Episcopal Relief & Development 에서 내놓은 Peace & Compassion: 2009 Lenten Meditations을 길잡이 삼기로 했다 (링크에서 PDF 다운로드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