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아름다움 – 카타리나 성인 축일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순교자 (11월 25일)
“그리스도와 결혼한 여인”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성인은 자신이 물려받은 재산과 지위를 버리고 자신의 삶을 모두 이 신비한 결혼에 바쳤습니다. 4세기를 살았던 그는 왕비의 지위를 주겠다는 왕의 청혼을 물리쳤습니다. 자신이 깊이 체험한 신비한 결혼으로 이미 그리스도께서 남편이 되었으니, 다른 사람과 혼인할 수 없노라 주장했습니다. 수레바퀴로 만든 형틀에 묶어 살과 뼈를 찢는 고문에도 그는 자신의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능지처참하려는 형틀마저 부서지자, 왕은 카타리나를 참수하여 죽였습니다.
(카라바지오,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c.1598)
교회의 전설은 카타리나의 처절한 순교와 신앙을 그의 아름다움과 대비하여 전하곤 했습니다. “그의 미모는 햇살보다 아름답고, 그의 지성은 온 세상을 헤아릴 정도이며, 그의 재산은 넘치도록 많았다.” 그런데도 성인은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내밀하게 따르는 일에 바쳤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천사들이 카타리나의 시신을 모세가 하느님을 만났던 시나이 산 중턱에 옮겨 묻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시나이 산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다른 이름은 주의 변모 수도원)이 섰습니다. 이 수도원은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오래되고 잘 보존된 이콘과 교회 기록물로 이름 높아 지금도 시나이 산 순례의 필수 여정이기도 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성인이 역사의 실존 인물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대체로 여러 여성 순교자들과 빼어난 여성 지성인의 이야기들을 한데 얽어 구성한 인물이라는 견해에 동의합니다. 후대 신앙인들은 많은 여성 성인의 삶 속에서 하느님을 향한 깊은 사랑, 그리스도와 나누는 지극히 친밀한 관계를 발견하여 카타리나 성인을 그렸습니다. 신앙이란 이 사랑의 내밀한 관계 속에서 격조를 지키며 지성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중세기에 이르러 카타리나 성인은 여성 수도자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미혼, 비혼 여성과 여성 지성인의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 결혼의 삶과 의미를 신앙의 차원에서 더욱 넓게 바라보도록 했습니다. 그의 거룩한 유해에서 여전히 머리카락이 자라나고 치유의 기름이 흘러나왔다는 전설은, 세상에서 결혼하지 않은 한 여성의 삶이 천상의 결혼 속에서 여전히 아름답게 피어올라 세상에 더 깊은 치유의 손길을 펼친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카타리나 성인 생애 이콘, 13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