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은 곳으로 – 신앙의 사도직

February 7th,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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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곳으로 – 신앙의 사도직 (루가 5:1~11)1

“깊은 데로 가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을 낚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평생 어부로 살았던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어 새로운 임무를 주십니다. 이 부르심은 우리 신앙생활의 의미와 방향을 보여줍니다. 더 깊은 곳으로 가서 다시 도전하고 두려움 없이 사람을 만날 때, 신앙과 선교의 사도직이 펼쳐집니다.

베드로는 밤새 그물질을 했지만, 잡은 고기가 없었습니다. 누구나 노력하고 대가와 보상을 바라지만, 세상일이 늘 뜻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땀과 눈물이 모자란 탓이 아닙니다. 어찌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이 더 많습니다. 이때 많은 사람은 절망감과 배신감의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그 감정이 커서 다른 이의 조언에 귀를 막고 마음을 닫기도 합니다. 이때 예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실패의 감정이 이끄는 자기 폐쇄의 유혹을 넘어서라는 초대입니다. 이 초대에 응답하는 일이 신앙입니다. 이때 새로운 사건이 펼쳐집니다.

“깊은 데로 가라.” 예수님의 초대는 명백한 해결책이나 분명한 위로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위험으로 이끄는 것처럼 들립니다. 더 깊은 데로, 더 멀리, 더 위험한 도전을 할 때, 자기 안위와 폐쇄의 그늘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깊은 바닥은 아직 꿈틀거리는 자기 본위의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고, 그 죽음을 경험하는 밑바닥입니다. 자기 중심성은 가볍고 표면적인 삶의 태도를 만듭니다. 그래서 작은 바람에도 출렁거리기 쉽습니다.

깊은 곳은 위험할지언정, 흔들리지 않는 깊이와 새로운 삶의 차원을 발견하도록 합니다. 절망이든 행복이든 그 깊은 곳에 닻을 내릴 때 우리 삶은 어떤 어려움에도 의연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는 그 깊은 곳에서 삶의 가장 큰 절망과 슬픔의 끝에 다다른 많은 사람을 선물로 발견합니다. 이 만남 속에서 우리는 외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과 손잡아 연대하여 바닥을 치고 떠오를 힘을 얻습니다.

신앙의 깊은 모험은 종교에 흔하게 퍼진 격려의 덕담이나 수사가 아름다운 잠언을 넘어섭니다. 우리 신앙의 배움을 더 깊은 곳으로 끌어가 함께 대화하며 심화합니다. 신앙인은 어떤 선생의 가르침에 그저 감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신앙의 모험과 체험과 배움으로 두려움 없이 다른 낯선 이들을 이끄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두려움 없는 신앙인의 사도직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진실로 “사람을 낚는 사도”가 됩니다.

  1.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2016년 2월 7일 연중 5주일 주보(↩)

빛을 비추라 – 봉헌하는 삶

January 31st,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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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비추라 – 봉헌하는 삶 (루가 2:22~40)1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합니다. 당시 율법에 따라 첫아들을 하느님께 바치며 부모 대의 하느님 신앙을 이으려는 뜻입니다. 또한, 빈궁한 살림에 마련한 작은 제물도 바칩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오염된 자신을 깨끗게 해달라는 청원입니다.

하느님께 드려야 할 첫째가는 봉헌은 우리 삶 자체입니다. 그 삶을 바치기로 다짐했다는 뜻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일부를 재물이나 봉사로 주님께 돌려드립니다. 세상의 종교는 종종 본래 뜻을 잃고 봉헌을 형식적인 제사로 이해하곤 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전 봉헌은 아기와 같은 새로운 세대와 그 생각, 미래를 향한 희망이 우리의 봉헌이어야 한다고 전합니다. 우리의 헌금과 봉사와 제물은 모두 이러한 생명과 희망에 바쳐져야 합니다.

봉헌의 현장인 성전은 새로운 만남의 공간입니다. 인생의 황혼이 되도록 세상의 구원을 신실하고 겸손하게 기다리던 ‘시므온’을 만납니다. 여성 예언자로 활동하다 홀로 궁핍해졌으나 깊은 신앙의 길을 걷던 ‘안나’를 만납니다. 나이 든 세대의 신앙이 새로운 세대의 신앙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잘 드러납니다. 인생의 어른은 겸손한 기도로 새로운 세대를 격려하고 지지하는 분들입니다. 자기 시대에 갇히지 않고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신앙이 바로 황혼의 원숙한 신앙이라고 시므온과 안나는 몸소 증언합니다.

시므온의 찬가는 주님 봉헌 사건의 절정입니다. 젊고 새로운 이들을 환대하고 격려하고 신앙을 물려주는 일이 곧장 구원과 연결됩니다. 선택된 소수만을 위한 옛 종교가 아니라, 만민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신앙이 새롭게 펼쳐집니다. 이방인들과 낯선 사람들도 누리고 기뻐하는 구원이 열립니다. 이것이 신앙의 대를 잇는 방법이며 선교입니다. 이처럼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걷는 사람들과 갓 태어난 아기의 만남이 새로운 역사를 엽니다.

오늘 우리는 한 해 동안 성전의 제대와 가정의 기도상을 밝히는 양초를 봉헌하고 축복합니다. 아기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 되어 우리 성전과 제대를 밝히듯이, 축복된 양초로 우리 가정의 기도상을 밝히라는 당부입니다. 여기서 교회와 가정에서 밝힌 불빛이 사회와 세상의 어둠에 번져갑니다. 세상의 어두운 구석에 있는 이들에게 손을 펼치고 새로운 세대, 낯선 사람들과 손을 맞잡아 세상을 밝히는 봉헌이 신앙인의 도리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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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2016년 1월 31일 주의 봉헌 축일 주보(↩)

신앙의 출사표 – 해방의 은총이 지금 여기에

January 24th,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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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출사표 – 해방의 은총이 지금 여기에 (루가 4:14~21)1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은 예수님과 하느님이 나누는 친밀한 관계를 천명합니다. 하늘은 무서운 심판을 내리는 곳이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 마음에 품는 넉넉한 관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세례를 나누는 우리도 죄와 심판의 두려움에 떠는 여느 ‘종교인’에서 이제 하느님과 사랑과 마음을 나누는 ‘자유로운 신앙인’으로 변화합니다. 이 새롭고 친밀한 관계가 예수님께서 펼치시는 선교의 핵심입니다. 이 관계의 선교는 하느님과 예수님의 관계, 하느님과 신앙인의 관계를 통과하여,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삶에서 펼쳐져야 합니다.

작은 곳에서 더 넓은 곳으로, 한 개인에서 공동체와 사회로 펼쳐지는 신앙인의 삶이 명백합니다. 세상이 보기에 작고 보잘것없는 곳에서 새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천한 갈릴래아에서 세례의 사건이 일어나고, 작은 나자렛에서 예수님의 출사표가 들려옵니다. 갈릴래아와 나자렛은 또한 하느님의 구원과 예수님의 복음이 사회 정치의 환경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구원과 복음은 지금까지 눈여겨보지 않았던 사람들을 향합니다. 가난한 사람, 묶인 사람, 눈먼 사람, 억눌린 사람을 부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신앙의 은총은 사회와 정치의 해방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이점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개인의 안녕과 기복에만 갇힌 원시 종교를 초월하여 사회와 공동체 전체와 관계합니다. 예수님께서 호명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한, 우리 신앙도 이 상황에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아울러, 신앙인은 복음에 따라 자신을 성찰합니다. 사회 정치의 현실에 예수님께서 던지시는 말씀을 우리 자신의 내면에도 깊이 적용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인색한 사람이 되지는 않았는가? 우리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부의 가치에 묶여있지 않은가? 우리는 사회의 불의에 눈 감고, 이웃의 아픔에 귀를 막고 살지는 않는가? 우리는 세상의 권세에 억눌려 체념하며 살지는 않는가? 이 상황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여기서 벗어나려는 용기가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우리 삶의 처지에 동행하시며 해방의 은총을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받은 분, 그리스도(메시아)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세례를 나눈 우리 신앙인 역시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며, 세상에 해방의 은총을 선포하고 실천할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이곳, 세상의 작은 곳에서, 작은 사람들과 더불어 이 세상에 구원을 알리며 몸으로 살겠다는 신앙의 출사표를 던지는 사람입니다.

  1.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2016년 1월 24일 얀중 3주일 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