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수요일 – 배신과 어둠을 넘어

April 16th, 2014

이사 50:4~9 / 시편 70 / 히브 12:1~3 / 요한 13:21~32

2014년 4월 16일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아침 성찬례 – 주낙현 요셉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나이다. 아멘.

성주간 성 수요일은 배신의 수요일입니다. 가리옷 사람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길 계획을 세운 날입니다. 오늘 읽은 요한 복음의 장면은 아무래도 성 목요일 최후 만찬을 배경으로 한 사건이었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요 친구였던 유다의 배신을 특별히 기억하는 날은 대체로 성 수요일이었기에, ‘배신의 수요일’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우리는 가리옷 사람 유다의 삶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그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 당시의 많은 사람이 그랬듯이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고통받는 유대 땅의 현실에 깊이 마음을 둔 사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그는 로마의 폭압적인 권력을 물리칠 메시아를 기다리는 종교 단체의 일원이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그는 곧 오실 정치적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며 로마의 지배 권력과 싸우던 혁명 단체의 일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기대하고 그 제자단에 참여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는 제자단 사이에 신임이 높았던 것 같습니다. 돈이 오가는 재정 책임은 웬만한 신뢰가 쌓이지 않고서는 맡기지 않습니다. 그는 깊은 신임을 얻은 재정 책임 비서였던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던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여 팔아넘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여러 추측과 해석이 있습니다만, 그리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먼 훗날 우리가 세상을 떠나 그를 만나게 될 일이 있다면 모를까, 아직 그 정확한 동기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복음서는 그 이유를 단순하게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고만 전합니다. 그에게 들어간 사탄은 지난 사순 첫 주일에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만났던 그 악마였을까요? 잘 먹고 잘 사는 안녕과 권력과 명예를 미끼로 광야에서 40일 동안 고생했던 예수님을 유혹했던 그 악마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탄 악마를 물리치셨지만, 안타깝게도 가리옷 사람 유다는 그 유혹에 넘어갔는지도 모릅니다. 애처로운 일입니다. 특히 유다가 뒤늦게 자신이 한 일을 뉘우치고 후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듣노라면 그 애처로움이 더욱 깊어집니다.

가리옷 사람 유다는 참으로 애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예수님의 제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래도록 예수님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애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예수님과 제자단의 오랜 신임을 받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생사고락과 친구의 신임을 저버렸습니다. 그는 참으로 애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배신은 친구 사이에 일어납니다. 가족 사이에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일어납니다. 참으로 깊이 마음을 두며 배려했고 보살폈던 관계에서 일어납니다. 남남에게는 배신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모든 배신은 안타깝습니다. 모든 배신에는 인생의 쓴맛과 분노가 서려 있습니다. 이때 배신자 유다는 오늘 우리에게 되묻습니다.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배신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신을 알아차리는 모습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신할 자를 지목해 달라는 어떤 제자의 부탁에 신호를 줍니다. “내가 빵을 적셔서 줄 사람이 그 사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빵을 떼어 유다에게 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서 그 일을 행하라.” 게다가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을 때, 어둠 속에서 예수님을 알아보는 신호로 유다는 예수님께 “입맞춤”을 합니다. 입맞춤은 언제나 “평화의 입맞춤,” 즉 평화의 인사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장면들에서 무엇을 발견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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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iel van der Borch, “최후의 만찬에서 유다에게 빵을 주시는 예수,” 14세기)

그렇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성찬례에 나오는 행동이 유다의 배신행위에 그대로 겹쳐집니다. 우리는 서로 웃는 얼굴로 평화의 인사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련하시는 식탁에 초대받아 그리스도의 몸을 그의 피에 적셔 먹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일을 행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유다 또한 우리와 다를 바 없이 그리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몸을 바쳐 따랐고, 예수님과 풍찬노숙을 같이했고, 함께하던 친구 동지들과 함께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예수님께서 주시는 빵과 잔을 먹고 마셨습니다. 유다는 여기에 모인 우리와 그리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배신을 생각할 때, 우리 역시 그와 똑같은 배신의 잠재적 피의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무엇이 유다를, 그리고 오늘 우리를 배신의 행동으로 이끌까요? 사탄입니다. 광야의 금식 40일을 마친 예수님께 나타났던 그 악마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안녕과 복지만을 신앙의 열매로 생각하게 하는 달콤한 유혹입니다.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않으면서 자신이 지닌 지위로 남들을 나무라고 호령하고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는 멋진 유혹입니다.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의 부러움과 존경을 받으려고 으스대는 근사한 유혹입니다.

오래도록 몸과 마음을 바쳐서 예수님을 따르며 그와 함께 먹고 마셨다 하더라도, 이 달콤하고 멋지고 근사한 유혹에서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면, 우리는 금세 배신자 유다처럼 악마에게 우리 영혼을 팔아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이 살아가는 냉혹한 현실이요, 늘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유다는 빵을 받아들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성 수요일은 어둠의 수요일입니다. 우리 자신의 깊은 어둠 속에 똬리 틀고 있는 배신의 그림자를 깊이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자기 내면의 깊은 어둠을 직시하고 살피는 시간입니다.

전례 전통의 여러 교회들은 성 수요일 밤에 ‘테네브레’(Tenebre)라는 촛불 예배를 드렸습니다. ‘테네브레’는 어둠과 그늘을 뜻하는 라틴어 낱말입니다. 이 예식에서 사람들은 세상의 빛인 예수님을 상징하는 촛불을 켜고, 이와 더불어 다른 여러 개의 촛불을 밝히고 그 둘레로 모입니다. 탄식의 시편들을 읽고, 예레미야 애가를 노래하고, 그리스도 수난의 순간을 담은 복음을 읽으면서 차례로 촛불들을 끄면서 드리는 기도의 예식입니다.

마침내, 예수님을 상징한 촛불을 제외한 모든 불이 꺼지고, 그 마지막 촛불마저도 어딘가로 사라져서, 우리는 모두 침묵이 지배하는 어둠에 묻힙니다. 그런 뒤에 갑작스러운 그 어둠 속에서 시끄러운 굉음이 울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알리는 소음입니다. 어둠이 세상을 이겼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 예식을 통해서 많은 신앙인은 자신의 어둠을 되새겼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과 말과 행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전체 삶, 즉 그의 나눔과 고난과 죽음을 닮지 않으면,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홀연히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에게는 깊은 허공 같은 어둠만 남습니다. 거기에 배신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웁니다.

그때, 예레미야는 탄식하며 우리를 다시 부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주님께 돌아오라.” 그때, 예수님께서는 탄식하며 우리를 다시 부릅니다. “돌이켜서 나에게로 돌아오라.”

그러므로 사순절 마지막 수요일인 성 수요일은 사순절 첫날인 재의 수요일입니다. 기억하시나요? 이마에 재를 받는 순간을? 그때 들었던 말을 기억하시나요? “인생아, 기억하라. 그대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이 선언은 인간 존재 조건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선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인생무상을 말하는 것도 아니요, 다들 죽을 존재들이라는 운명을 되새겨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이 선언은 우리가 맞이하는 죽음의 끝에 새로운 생명, 즉 우리가 먼지와 흙에서 창조되었듯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 새롭게 빚어지는 새로운 창조의 삶에 대한 기대까지를 담고 있습니다. 회개하며 “돌아오라, 돌아오라”는 초대입니다. 새로운 창조와 생명을 함께 만들자는 초대입니다.

탁월한 구약성서학자이자 시인인 월터 부르그먼은 이 수요일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에서는 이미 멀어진 날
그러나 모든 수요일은 재를 바른 수요일이니
우리는 이날을 입에 든 재를 맛보며 시작하나니
실패한 희망, 깨진 약속들의 재
잊어버린 아이들, 놀란 여인들의 재
우리 자신은 재에서 재로,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리니
우리 혀 위에 있는 재로 우리의 죽음을 맛볼 수 있으리니
우리가 흙이요 재인 것을 깊이 생각하리니
모든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이요, 확신하나니
모든 수요일은 이 메마른 파편 맛인 죽음을 이기는 부활을 기다리는 탓이리니

이 수요일, 우리는 재처럼 창백한 우리의 길을 주님께 드리나니
새로움을 가져다주는 주님의 부활 행진에 드리나니.
해가 지기 전, 우리의 수요일을 받아 주시고, 우리를 부활케 하소서.
우리를 부활케 하시어 기쁨과 활력과 용기와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우리를 부활케 하시어 두려움 없이 주님의 진리를 살게 하소서.
여기에 오시어 우리의 수요일을 부활케 하시고
자비와 정의와 평화와 너그러움이 넘치게 하소서.”

이제, 이 성찬례에서 여러분은 배신의 빵과 잔을 먹고 마시겠습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더불어 고난받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영광의 빵과 잔을 먹고 마시겠습니까?

나는 누구인가? – 본회퍼 축일

April 9th, 2014

잠언 3:1~7 / 시편 119:89~96 / 로마 6:3~11 / 마태 5:1~12

2014년 4월 9일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아침 성찬례 – 주낙현 요셉 신부

1998년 8월, 영국 성공회 런던 웨스트민스터 애비 성당에서는 20세기의 순교자 10명의 입상을 세워 봉헌하였습니다. 그 순교자들 가운데는 천주교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미국 침례교의 마틴 루터 킹 목사, 그리고 독일 루터교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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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우리 기도서가 개정되면서 한국 성공회도 마틴 루터 킹과 디트리히 본회퍼를 기념하도록 했습니다. 오늘은 방금 읽은 복음 본문, 산상수훈의 진복선언을 끔찍이도 사랑하며 그 말씀대로 살았던 본회퍼의 축일입니다.

아마도 지난 100년 역사 속에서 성공회의 여러 지도자, 그리고 현대 성공회 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을 꼽을 때, 그 목록에 본회퍼가 빠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1960년대 초, 영국 성공회의 주교이자 탁월한 신약성서 학자였던 J. A. T. 로빈슨 주교님이 <<신에게 솔직히>>라는 책을 출간하여 기존의 신앙 체계에 도전하고 세계 교회에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분도 바로 본회퍼였습니다.

1906년에 태어난 디트리히 본회퍼는 1929년, 25살에 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촉망받는 신학자로서 기대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목사 안수에는 너무 이른 나이여서 박사후 과정으로 미국에 건너갔고, 미국의 신학교를 보면서 “신학이 없는 동네”라고 말할 만큼 신학적 총명으로 기고만장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 뉴욕의 할렘, 즉 흑인 빈민촌의 삶을 경험하고, 그들의 처지와 그들의 삶이 만들어내는 신앙과 영성 안에서 자신의 책상물림 신학을 깊이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그는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평화, ‘샬롬’이 이뤄져야 할 이 땅이 잘못된 사회 구조와 못된 권력에 의해 계속 망가지는 사태를 목격했고 그 현실을 새롭게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경험을 마치고 그가 독일에 돌아왔을 때, 당시 독일은 히틀러가 폭압적인 정치를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속한 교회 전체가 이 폭압적인 히틀러를 비판하기보다는 그를 두둔하거나 침묵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이 현실을 반성하고 뜻을 같이하는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이 모여, <고백 교회>라는 교회 개혁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치 정권을 반대하던 <고백 교회> 운동의 동료와 더불어 그는 계속 탄압을 받았고, 결국 영국 런던에 있는 독일인 교회 목사로 초청받아 영국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영국에서 본회퍼는 히틀러 나치 정권의 유대인 탄압과 학살을 반대하며 유럽의 평화를 염려하던 영국 성공회 성직자들을 친구로 얻었습니다. 또한, 그는 당시 막 시작한 성공회 수도회 <부활 공동체>(the Community of Resurrection)에 방문하여 머물면서, 새로운 신학교의 모습,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삶을 더 깊이 구상하고 생각했습니다.

독일로 돌아온 본회퍼는 먼저 지하 비밀 신학교(Finkenwalde)를 세웠습니다. 그 모델 가운데 하나는 그가 영국에서 경험한 성공회 ‘부활 공동체 수도회’였습니다. 이 신학교를 이끌면서 본회퍼는 오늘 읽은 복음 본문이 들어 있는 산상수훈을 연구하는 한편, 당시 신학과 교회의 문제가 ‘값싼 은혜’(cheap grace)를 팔고 다니는 데서 나온다고 간파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에 치명적인 적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값진 은혜를 구하며 싸워야 합니다. 값싼 은혜는 싸구려 상품 같은 은혜입니다. 교회는 은혜를 퍼주는 곳처럼 어떤 질문이나 고치려는 노력도 없이 그저 후하게 축복을 던져 줍니다. 값이 없는 은혜, 대가 없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미 값을 치렀으니 더는 치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은혜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당연한 것 같은 후한 말로) 죄의 용서를 선포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합니다. 그리하여 값싸게 죄를 덮어버리고, 회개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죄에서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값싼 은혜는 죄인을 의롭게 하는 일 없이 죄를 정당하다고 용인하는 꼴입니다…. 값싼 은혜는 우리 스스로 축복하는 은혜이며, 회개를 요구하지 않고 용서를 선포하는 일이며, 교회 공동체의 훈련 없이 주는 세례이며, 죄의 고백 없이 얻는 영성체입니다… 값싼 은혜는 제자됨이 없는 은혜요, 살아계시며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끊임없이 찾아야 할 복음은 값비싼 은혜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이 은혜가 우리더러 예수를 따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값비싼 까닭은 인간에게 생명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는 인간에게 참 생명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의 생명을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에게 값쌀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값비싼 은혜는 바로 하느님의 성육신입니다.”1

히틀러 나치 정권은 이 비밀 신학교를 찾아내고 폐쇄했고, 본회퍼는 다시 미국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미국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와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교수 자리를 제안하며 미국에 머물라고 했고, 본회퍼는 독일을 잊고 미국에 안주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자신의 결정을 돌이켜서 상황이 더 나빠지는 독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독일로 돌아온 본회퍼는 당시 독일 장교들이었던 그의 사촌들과 히틀러 제거 계획에 가담했습니다. 그의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미친 운전자가 모든 광포한 차) 바퀴에 사람이 깔려 죽을 때, (성직자와 교회의 일은 그 희생자들의 장례만 치르르는 일이어서는 안 되고), 그 바퀴를 멈추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의 히틀러 제거 계획은 발각되어 수포로 돌아가고 그는 곧장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옥중에서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어 보냈습니다.

“인간은 이제 하느님 부재의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고통을 나누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인간은 ‘세속’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안에서 인간은 하느님의 고통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종교인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방법에 의지해서 자신을 죄인이나, 참회하는 자 혹은 성인으로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만들어 내시는 그 인간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은 어떤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이 세속 사회 속에서 하느님의 고통에 참여할 때 가능합니다.”2

1945년 4월 8일 일요일, 다른 수인들과 예배를 마친 본회퍼를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수인 본회퍼는 나오시오.” 그는 감옥의 동료에게 마지막 말을 건넸고, 그 말을 가까운 친구였던 영국 옥스퍼드 크라이스처치 대성당의 주임사제인 조오지 벨 신부님(후에 옥스퍼드 주교)께 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친구, 이것이 마지막이네. 그러나 내겐 새로운 삶의 시작일세.”

다음 날인 4월 9일, 그의 교수형이 집행됐습니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었습니다.

본회퍼가 자기 생의 막바지에 선택했던 결정을 두고 신앙적이고 신학적인 논쟁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목사가 암살 음모에 가담할 수 있는가? 어떻게 신앙인이 자신을 죽음에 그처럼 쉽게 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남은 가족은 생각지도 않는단 말인가? 그러나 본회퍼는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오는 “복된 사람들”을 마음 깊이 품었습니다. 그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목말라 하는 사람들,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들, 그리고 예수를 따르다가 모욕당하고 비난받는 사람들을 마음에 깊이 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순간에도 자신을 여전히 깊이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는 옥중에서 스스로 물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런 사람 혹은 저런 사람?
오늘은 이런 사람, 내일은 또 다른 사람이 되는가?
동시에 둘 다일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위선자요,
나 자신 앞에서는 비겁하고 비탄에 잠긴 허약한 인간인가?
아니면, 내 안에 여전히 어떤 패잔병이 남아 있어
이미 이룬 승리 앞에서 패주하는 것일까?
나는 누구인가? 나를 비웃는 내 안의 이 외로운 질문들.
내가 누구이든, 그대는 아시나니,
하느님, 나는 그대의 것!”3

그는 자신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하느님과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 함께 걷던 사람들과 나누던 깊은 사랑과 의리에 자신을 내맡겼습니다.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남을 위한 존재”여야 한다는 진리에 자신을 던졌습니다. 이 세상에 그런 분이 본회퍼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가까운 이웃, 친구, 가족에게도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아니 이제, 우리가 그런 신앙인이어야 합니다.

죽임을 당하기 얼마 전 본회퍼는 옥중에서 아름다운 시 하나를 써서 가족에게 보냈습니다.

“넘치는 은총의 힘에 아름답게 둘러싸여
주님의 오심을 신실하게 기다리나니
주님께서 밤과 아침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며
매일 새로운 날에 우리에게 인사하십니다.

그러나 오래된 고뇌들이 우리 마음을 괴롭히고
나쁜 나날들이 견디기 힘든 짐을 지우나니,
주님, 이 두려운 마음에 구원을 주소서.
주님께서 고통이 넘치는 쓰디쓴 잔을 주실 때,
우리는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지만
주님의 선하고 사랑스러운 손으로 주시는 것이기에
어떤 두려움도 없이 이 잔을 감사하며 마시겠습니다.

슬픔과 고통이 많은 이 세상에
주님께서는 여전히 기쁨을 주시며, 밝은 해로 비추시니
우리가 함께 살아온 날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때에 우리의 모든 삶은 오로지 주님의 것이 되겠지요.”4

아멘.

*5

  1. The Cost of Discipleship(↩)
  2. http://viamedia.or.kr/2008/03/18/191(↩)
  3. http://viamedia.or.kr/2008/12/31/384 (↩)
  4. 미국 성공회 성가 1982 에 번역된 가사의 우리말 번역(↩)
  5. 인용문은 모두 주낙현 신부의 사역(영어)이며, 강론 시 전달을 위해 느슨하게 번역했다.(↩)

경계 – 신앙인의 자리

January 25th, 2014

성직자의 자리는 어디인가? 세상의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백성이 ‘보편적 사제직’(혹은 만인 사제직)을 나누고 있다면, 그리스도인의 자리는 어디인가?

오래전, 시인 황지우는 이렇게 적었다.

“문학은 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조짐에 관여한다. 그리고 문학은 반혁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상처에 관여한다. 문학은 징후이지 진단이 아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징후의 의사소통이다.”

여기 ‘문학’이라는 자리에, ‘신학’을, ‘교회’를, ‘성직자’를, 그리고 ‘신앙인’을 넣어도 되겠다. 나는 여전히 이 지점에서, 그동안 명멸했고 여전히 진행 중인 그리스도교 운동, 신앙 운동, 특히 소위 ‘진보적’ 종교 운동이 자기 자리를 굳건히 잡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 ‘관여’의 방식에서 ‘조짐’과 ‘상처’와 ‘의사소통’에서 실패했다고 본다. 변화를 향한 다른 운동도 마찬가지겠다 싶다.

오늘 외신을 통해, 그 ‘관여’의 상징적 이미지, 아이콘, 십자가, 아니 신앙의 자리를 발견한다. 시위대와 진압부대 ‘사이’에 우뚝 선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수사 신부들은 자신들이 들고 있는 십자가와 아이콘, 바로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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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키에프에서 일어난 시위에서 시위대와 진압경찰 사이에 선 정교회 수사 신부들

종교는 ‘사이’와 ‘틈’의 공간을 만들어 내야 한다. 대결하고 가르는 분열의 경계선 위에서, 그 경계의 공간을 넓히는 이들이 신앙인이다.

함부로 도통하여 ‘경계를 넘는다’고 말하지 말 일이다. 그 가느다란 경계의 선 위에서, 그 사이에서, 그 틈에서 수없이 떨리고 긴장하며 고통당하며, 조짐을 보고, 상처을 껴안으며,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서는 경계를 넘을 수 없다. 아니다. 실은, 경계를 넘는 일은 없다. 그저 그 경계의 공간을 넓히는 일만 가능하다. 예수께서 늘 경계를 걸으셨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