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든 – “장례식 블루스” (Funeral Blues)

Tuesday, June 29th, 2010

사소한 글을 하나 적고 몇 가지를 살피는 참에, 어느 연예인의 부고와 영상 하나가 겹쳐 들어왔다. 젊은 죽음이니 더욱 안타깝다. 기쁨과 사랑을 함께 주고 받았던 가까운 이들에게 큰 슬픔과 아픔으로 남을 것이다. 겹쳐진 영상에 담긴 시를 다시 찾아 읽고는 번역하여 여기에 옮긴다. 망자에게는 평화의 안식을, 슬퍼하는 이들에게는 위로를.


장례식 블루스

W.H. 오든

모든 시계를 멈추고, 전화선도 끊어 버려라.
개에게도 뼈다귀를 던져 주어 짖지 않도록 하여라.
피아노를 멈추고 드럼도 덮어라
관을 내 놓고, 슬퍼하는 이들을 들여라.

비행기들이 머리 위를 신음하듯 돌게 하여
하늘에 부고를 쓰게 하라. 그가 죽었다고.
비둘기들의 하얀 목에 나비 넥타이를 매고
교통 경관들은 검은 장갑을 끼게 하라.

그는 나의 북쪽, 나의 남쪽, 나의 동쪽, 나의 서쪽이었느니,
내가 일하는 나날과 나의 일요일 휴식,
나의 한낮, 나의 한밤, 나의 말, 나의 노래였느니,
사랑이 영원할 줄 생각했으나, 내가 틀렸네.

별들도 지금은 바라지 않나니, 모두 치워 버려라
달을 가리고, 해도 없애 버려라
바다를 쏟아버리고, 숲을 밀어 버려라.
이제 그 어떤 것도 덕이 될 수 없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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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H. Auden, “Funeral Blues” (1937/1940) 부분

대화의 무대에서 넓혀가는 경계와 사이의 지평

Monday, March 8th, 2010

이글은 블로거 민노씨의 글에 대한 한 상념이며, 블로거 아거님과 민노씨에게 드린다.

1.
선한 이들과 나누는 대화는 그 자체로 큰 위로와 힘이 된다. 이미 내 안에 있었다 하더라도 여러 분심때문에 흩어져 힘을 못쓰던 생각과 다짐이, 서로 귀 기울인 대화 속에서 자리를 찾아 단단해지고 든든해진다. 일상이든, 블로그이든, 트위터이든, 그 대화와 나눔 속에서 그 단단한 알맹이를 키우고, 흩어진 상념을 통해서나마 자신을 드러내어 바라 볼 수 있는 일은 영적인 일이다.

거대한 힘의 구조 속에 부속처럼 끼어서, 혹은 그에 저항한다 할지라도 힘이 달려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처지에서, 이러한 대화들은 사소한 것이더라도, 허튼 지혜이더라도, 일천한 경험이더라도, 공감과 기쁨으로 모여서 서로 위로하고 서로 일으켜 세운다. 새로운 질서나 공간에 대한 고민은 이러한 위로와 공감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동안에 조금씩 쌓이고 퍼질 수 있을 것이다. 트위터의 짧은 몇 마디든, 블로그의 어설픈 고민이든, 엮이는 동안 서로 도우며 질정할 수 있다면.

한편, 이런 기대는 사람마다 다르겠다. 인터넷이든 어디든, 어떤 공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가 이런 공감을 확대하고 기쁨의 전염을 확장시키는 일이라 믿을 수 있다. 아니라면, 이 공감을 향한 행위도 본질상 일인극의 무대일 뿐임을 깨달아 그 무대에 선 실존의 깊이를 되새길 수도 있을 것이다 (민노씨). 그마저 아니라면, 인생에서 펼쳐지는 어떤 위대한 무대를 꿈꾸며 그 희망 속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러나 준비된 연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처지에서 바라보든, 그 무대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는 이름 모를 관객”이 있음에 감사할 일이다 (아거). 아거님이 말하고, 민노씨가 되새겨 준, ‘무대의 배우론’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 이 무대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리기도 한다. 앞선 글에서 내비쳤던 것처럼, 전 지구적인 자본의 지배와 그 행태의 하나인 상품화와 소비주의 문화에 대한 고민 탓일까? 그 무대가 종종 드리우는 어둠에 자꾸 의심을 둔다. 예를 들어, 입바름으로는 진보이고 산뜻한 논리와 언술로 사람을 끌어모으는 어떤 이들의 주장은 ‘노이즈 마케팅’ 같은 어둠에 기대고 있는지 모른다. 끊임없는 ‘신상’(품)스러운 주장으로 격정 어린 찬반의 싸움을 불러 일으키는 사이, 보아야 할 것들은 이미 저만치 숨어버리고 만다. 그 소비자의 분주한 입출입을 관전하는 사이, 정작 숨죽이고 있어서 세심한 시선이 아니면 놓치기 쉬운 여리고 선한 것들의 면밀한 선과 결은 ‘쌘드뻬빠’로 사정없이 밀려나간다.

어쨌든, 이 맥락에서 쓰인 ‘무대’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받아들이고 보면, 우리 삶 자체가 무대인 것은 자명하다. 그 안에서 나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피할 수 없는 배우의 운명으로 무대에 우리는 던져져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 안의 나는 ‘무대 체질이 아니다’라는 태생의 부끄럼증에 기대어, 그 무대에서 자신을 끌어내리려 한다. 방황 끝에 성공회라는 신앙 전통에서 순례의 천막을 찾았을 때, 신앙의 새로운 이름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평생 말없이 고민 많았을 마리아의 남편, 예수의 지상 ‘양’ 아버지 ‘요셉’이 마음에 다가왔다. 역사라는 무대에 잠시 나왔다가, 어느 순간에 소리 없이 사라졌던 그 사람 요셉을 내 안에서 느낀 탓인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내 생의 무대는 번듯하고 큰 무대는 아닐 것 같다. 그릇이 작은 탓이다. 그 무대가 주어진 것이라면, 유랑극단의 천막 무대 어느 한켠에서 나를 발견할는지 모른다. 인기 배우의 등장을 준비하고, 관객의 더 큰 웃음을 위해 그들의 배꼽을 잠시 쉬도록 하는, 한 짬의 ‘땜통’ 배우. 슬프도록 어설픈 배우일 성 싶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그 작은 쉼의 시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면, 쓸쓸하지만 넉넉한 일이다.

2.
다시 돌아와 생각한다. 세상의 여러 큰 힘들이 만들어 내는 힘과 게임의 구조를 넘어설 수 있을까? 사람은 그 안에서 끼워져 살아가야 하는 한편, 그것에 저항한다. 그러나 그 진입과 저항의 경계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편만 선택하도록 몰리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이것은 그 큰 힘들의 전략이 아닐까?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느다랗게 그어진 분열의 금을 밟을 때마다 가해지는 폭력과 싸움에서 그나마 지친 몸을 쉬지 못하여 피폐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이런 생각에 매달린다. 경계를 분리의 선으로 삼지 않고, 쉼의 공간으로 만드는 일. 경계의 지름과 사이를 넓히는 일. ‘사이’(betwixt-between)라는 회색의 공간. 주저하면서 큰 힘과 그 문화에 어쩔 수 없이 진입했다가도 빠져나와 발을 디딜 수 있는 여백. 온몸으로 저항하다 지쳐 ‘악’만 남은 이들이 조금이라도 쉬고 충전할 수 있는 여유의 공간. 그곳은 지친 이들을 보듬고, 상처받은 이들과 더불어 ‘다양한 태도와 가치’를 발견하고, 남과 자신의 처지를 성찰하며, 새로운 힘과 용기, 그리고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다.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사제직의 의미와 더불어 이러한 공간을 성찰한다.

십자가 안에서 보이는 하느님은 자신의 ‘영역’ 수호를 거절한 분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스스로 영역 수호를 거절하는 인간의 삶 속에, 그리고 그 인간의 삶을 통하여 지극히 역설적인 방법으로 하느님은 존재한다. 이 삶 속에 하느님은 모든 순간과 생각과 행동에 침투하시며, 그 삶을 하느님께 순종하게 하신다…

[이러한 십자가 사건의 결과] 더는 도로 닫힐 수 없는 하늘과 땅 사이에 어떤 열린 문이 마련되었다. 이 공간은 하느님의 행동과 인간의 현실이, 어떤 대결이나 두려움 없이, 함께 하는 곳이며, 이곳이 바로 예수께서 존재하는 곳이다. 이 공간 속에서 인간은 오직 주어진 것들에 마음을 열며, 하느님은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고, 다만 멈추지 않는 사랑 안에 머무신다. 그 사랑은 인간의 세계와 인간의 언어로는 오직 ‘상처입기 쉬움”(vulnerability)을 통해서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공간에서 인간의 경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공간에서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이다. 이 공간에서는 미리부터 어느 누구도 배척당하지 않는다.

예수의 행동은 이 공간과 문을 여는 것이었다… 사제직의 임무는 이제… 이 예수를 통하여 마련된 공간을 집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공간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사제직이란 이제, 예수 안에서 신과 인간의 행동이 겹쳐진 그 공간에 자리잡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세계가 바로 그런 공간이 존재함을 알게 하는 일이다.

인간의 공동체요, 실재의 물리적 공간인 교회는 정기적으로 이곳에 모임으로써 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간 경험의 측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준다…

성공회 안에서 사제직은 하느님께서 열어 놓으신 이 공간을 위해 철저히 봉사하는 것이다. 그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혼란스러운 인간이 서서히 그 안으로 들어가도록 돕고, 그 안에서는 모든 복잡한 것들과 감정적인 격동과 영적인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주고 들어준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Rowan Williams, “Space for the Divine: An Essay on Christian Priesthood in Contemporary Culture” in Praying for England: the Heart of the Church edited by Sam Wells ad Sarah Coakley (T. & T. Clark Ltd, 2008)

그러니 내가 사제이든, 어느 유랑극단의 서푼 짜리 배우이든, 유일한 희망은, 아니 함께 만들어가야 할 밝은 희망은, 이 ‘사이의 공간’에서 어슬렁거리는 쓸쓸한 이들이 맞잡은 연대의 공간이다. 대화와 실천을 통한 연대를 경험하고 넓히는 경계의 지평이다.

쓸쓸해서 가까운 – [최승자]에 기댄 친구 생각

Saturday, February 13th, 2010

1.
선의(善意)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최승자 시집을 받아들고는 단골 카페로 출근했다. 마감을 넘겨 바동거리는 일이 있는 터에, 달랑 시집 하나만 들고 나갈 수 없어서 읽어야 할 의무의 책들을 액세사리로 싸왔다. 거대한 주제의 영어 제목들에 정신이 잠시 흐릿해진다고 우선 변명을 삼았다. 뻐겨보자는 투로 오랜만에 시킨 카푸치노를 찍어 트윗하는 일로 호흡을 고르고, 시집을 들췄다. 이런 뻐김을 용납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었던 내 어린 날에 대한 복수처럼. (내 의식은, 이 정도면 충분히 감상적이 되었다, 고 속삭인다.)

2.
“시간”이었다. 시인이 견딜 수 없는 것. 세월이었다. 그는 무의식에도 숨고, 병에도 핑계를 대보지만, 그가 맞닥뜨린 것은 흐르는 시간과, 얼마남지 않은 세월에 대한 원초적 ‘무의식’의 바동거림이었다. 이제 흐르는 시간을 쓸쓸하게 응시하는 일로, 세월은 지속하는 지루함의 일부분이라고 태연해할지라도, 그 몸부림은 선연했다. 아니라면, 내가 투사한 내 몸부림일 테다. 삶 뒤에는 삶이 있고, 죽음 뒤에는 죽음이 있다. 이는 종교인의 전매품이 아니다. 시간과 세월 속에 있는 모든 인간의 가장 가녀리고 끈질긴 마지막 욕망이다. 종교가 그 보편성을 기대는 몸부림, 모든 숨겨진 욕망이 드러나는 지점.

3.
시가 베푸는 덕은, 생각의 너른 행간. 단절된 비약이 마련한 틈새로 끼어드는 잡념은 시인의 ‘시간’에 대한 응시와 더불어 쓸쓸해서 가까운 내 친구들 생각으로 데려간다. 허름했던 고교 시절의 자취방에 모여 점심은 후다닥 까먹고, 둘러 누어 서로 읽었던 최승자를 비롯한 다른 이들. 지치면 들었던 성내운 교수의 시 낭송 불법 테이프. 흥이 나면 불렀던 프랑스 국가 “La Marseillaise.” 속이 ‘꾸리꾸리’하면 소화제로 듣던 나나무스꾸리. 그 사이에 늘 있었던 새파란 이십 수년 전의 얼굴들. 시의 행간을 뛸 적마다 내 잡념은 그 쓸쓸하게 가까운 그 얼굴들에 걸려 넘어졌다.

4.
이 고교 시절의 친구들은 오랫동안 내 삶에 헤집고 들어와 다른 이들을 거들떠보지 못하게 했다. ‘우리 지방’에서 가장 공부 잘하고 똑똑했던 친구는 문학이나 철학을 하고 싶어했지만, 가난 때문에 법대에 진학했다. 가난과 문학과 철학의 고민은 그를 한시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눈 많이 오던 날 아르바이트하던 학교 일터에 수배 중인 몸으로 찾아왔을 때, 나는 주머니에 있던 삼천 원밖에 쥐여 주지 못했다. 최루탄에 한쪽 눈을 잃은 한 친구는 몸을 추스르다 도를 닦으러 떠났다. 몇 년 전 인도(India)에서 영양실조로 실려온 그를 얼마 후 다시 찾았을 때, 많이 괜찮아졌노라며 내 걱정을 위로했다. 시인이 되고자 했으나 마르크스주의 인권운동가로 내달음친 친구 하나는 귀농했다. 조직사건으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거물과 함께 체포되어 몇 년을 감방살이한 친구 하나는 사면 복권 후 지금 시골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문학평론가를 꿈꾸던 한 친구는 갑자기 마음을 접고 공무원이 되었다가 이제는 회계사로 일한다. 선천병으로 늘 습기 어린 충혈된 눈으로 손을 꼭 잡고는 했던 친구는 자기 병에 관한 한 의학 전문가가 되어 출판사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대학 갈 일 없노라고 떼쓰듯 입대해서 백령도에서 3년 푹 고아져 돌아온 한 친구는 한국 최대 노조의 간부로 일한다. 반년이 멀다 하고 직장을 때려치우다 무슨 일인지 이번에는 몇 년 버텨온 친구 하나는 곧 이직할 것이라고 밝혀온다. 같은 대학에 있었으면서도 경찰에 쫓기는 골목이나 뒤풀이 술판에서 만나곤 친구는 유학 후 지금 시골 어디에서 연구원으로 살아간다는 안부를 전한다. 시간을 무릅쓰고 그 쓸쓸해서 가까운 얼굴들이 내게 다가온다.

5.
내 친구들의 희망과 절망, 그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그들의 몸부림과 갈망은 내 것보다 더 깊고 넓고 치열했으며 도저했다. 내 하릴없는 시선과 몸뚱어리는 그 ‘사이’에서 늘 불안하게 왔다 갔다 했을 뿐이었다. “문턱에서 문턱으로, 경계에서 경계로.”

6.
늦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는 내 어머니와 설맞이 안부 전화를 했다. 베갯머리 이야기를 청하다가 지쳐 제가 도리어 이야기를 풀어놓던 딸 아이를 결국 재우나 싶더니, 등 뒤로 이상한 콧소리가 났다. 등을 두드리지 말 걸 그랬다. 무언가에 닿는 순간 모든 게 왈칵 한다, 우리는. 얼마 후 어두워 낮아지는 기온으로 구식 히터에 ‘퍼벅’하고 불이 붙자, 우리는 라면 두 봉지를 마늘 양파 듬뿍 넣고 끓여서, 후루룩후루룩 먹었다. 눈물 뒤에는 입맛이 당기는 법인가?

7.
죽음은 사람을 모은다. 지난 12월의 장례식장에서 우리는 만났다. 그 슬픔의 한 가운데서 아내와 나는, 그 친구들이 반가워서 함께 웃고 떠들었다. 어느 친구에게 ‘너 군대 있을 때, 세상의 모든 단조의 음악을 다 듣고 싶다고 편지한 적 있었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다른 친구들의 안부를 묻고 전화기 너머로 몇몇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사진도 두어 장 박고는 다시 아쉽게 작별 인사를 했다. 쓸쓸해서 너무나 가까운 친구들.

8.
시인은 더더욱 혼자가 된 것 같다. 역사는 여럿이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면, 죽음은 혼자서 맞아야 하니까. 그 와중에 시인은 시간의 무의식이 저 멀리까지 펼쳐질 수 있다는 먼 여유의 공간을 우리에게 확보해 준다. 아직 시인보다 젊고, 아직 시인보다 건강하다. 그러니 내 몫은 쓸쓸해서 가까운 친구들과 이웃에게 눈을 돌릴 시간을 누리는 일이겠다. 아내와 그 친구들에게 축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