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솔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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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낙현 요셉 신부 (전례학-성공회신학)

사람에게는 저마다 인생의 책이 있습니다. 자못 진지하게 삶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사춘기 무렵의 책들이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는 합니다.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오랜 생각을 접고, 우선 종교와 신학을 공부해보겠다고 다짐한 때가 고등학교 2학년 말이었습니다. 하라는 입시 공부는 안 하고 교과서 뒤에 몰래 펼쳐서 여러 신학책을 읽고는 했습니다. 아직 철모르던 때에 어느 분이 소개해 주신 책 하나가 제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았습니다.

<신에게 솔직히> Honest to God (1963년). 그 제목이 마음에 깊이 걸렸습니다. 현실의 교회가 하느님께 솔직하지 않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렸지만, 저 자신도 물었습니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 정직한가?’ 책의 저자 존 로빈슨(1919-1983년)은 자신이 겪는 신앙의 의문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흔들리는 신앙의 터전을 어떻게 하면 쇄신할까 고민했습니다. 그가 저명한 성서학자이고 성공회 주교님이라는 사실에 더욱 놀랐습니다. ‘신학자와 주교가 이렇게 터놓고 고민해도 되나?’

로빈슨 주교님은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씨름한 신학자들을 초대하여 대화합니다. 이 시대에도 하느님을 ‘저 하늘 위나, 이 세상 밖에서’ 찾을 수 있을지 질문합니다. ‘노인의 얼굴을 한 채 심판관을 자처하는’ 신을 상상하는 관습이 옳은 일인지 묻습니다. 그는 성서학자인 불트만을 따라 성서를 새로 읽고 해석하는 방법을 나눕니다. 조직신학자인 틸리히를 읽으며 하느님을 인간 존재의 힘이라고 새롭게 이해합니다. 히틀러에 저항하다 순교했던 본회퍼를 되새기며 세속사회 안에서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 없이, 하느님과 함께’ 걷는 신앙이 가능한지 성찰합니다.

주교님은 변화한 세상에서 신앙의 의미를 정직하게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솔직함때문에 교회에서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어찌 주교가 이런 망발을 하느냐?’는 험한 말도 나왔습니다. 친구들도 너무 나갔다고 핀잔했습니다. 신자들은 의심 없이 물려받은 신앙을 흔드는 이야기가 불편했습니다. 여러 공격을 받아 외로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떠나려 했던 이들과 교회 밖에 있던 이들은 이 책이 던진 질문으로 하느님과 신앙, 그리고 시대에 관하여 더 깊은 생각을 이어갔습니다.

30여 년 전 그 책을 제게 쥐여 주었던 분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신앙의 고정관념을 벗어나자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나중에는 솔직하고 깊은 신앙 안에서 자유와 기쁨의 은총을 체험했습니다. 가을 낙엽처럼 헤매는 이들과 동행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했습니다. 그 책은 다시 누군가에게 줘서 이제는 제 손에 없습니다. 그도 저와 같은 축복을 누렸으리라 믿습니다.

신에게 솔직히. 그 제목만으로도 여전히 마음이 뜨겁고 떨립니다. 신앙을 버릴까 하던 방황을 거쳐, 로빈슨 주교님과 함께 성공회 전통 안에서 정직한 신앙의 길을 걷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한 고민과 정직한 배움 안에서 쉬지 않고 흔들리는 신앙이 참 아름답습니다.

  1.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복음닷컴> 2018년 11월 18일 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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