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 부활의 고백과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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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 부활의 고백과 신앙 (요한 20:19~29)1

이제는 “의심하는 토마”라는 낙인을 지울 때도 됐습니다. 이런 별명은 요한복음 기자의 미필적 고의입니다. 오늘 복음 이야기에 나타난 신앙고백과 초대 교회의 전설이 전하는 선교 활동을 보더라도, 토마는 부활의 선교 정신을 용기 있게 실현한 사도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무서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모였던 집에 그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뵈었다는 소식에야 그 집에 돌아와 애타게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이 의문은 두려움에 떨던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토마가 위험을 무릅쓰고 밖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찾으러 다녔다는 상상력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이 절박하고 애타는 용기가 그의 신앙고백으로 이어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른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시어 평화의 인사를 나누시고 ‘성령의 숨’을 불어넣으셨지만, 그들은 그다음에도 여전히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토마만이 두텁게 쌓아 올린 마음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게다가 예수님의 인사와 말씀에 자신의 입술과 마음으로 응대하는 사람은 토마 뿐입니다.

신앙의 문제는 ‘무서워서 안으로 문을 닫아거는’ 상황에서 비롯하곤 합니다. 상실감과 배신감에 지쳐서 자기 마음을 걸어 잠그면, 오히려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새로운 죄책감이 찾아듭니다. 자신의 신앙 체험에만 몰두하다가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거나, 자신이 이뤄낸 성과에 집착하여 자기 안녕이라는 좁은 성안에 스스로 갇히곤 합니다. 이 위태롭고 안절부절못한 우리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닫힌 벽을 뚫고 부활의 인사를 건네십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너희 자신을 용서하기를!”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 삶을 봉쇄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온갖 분열과 차별, 편견과 미움의 벽을 꿰뚫고 들어오십니다. 우리는 스스로 완벽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부서지고 결함 있는 ‘틈’을 인정할 때, 부활의 생명이 그 ‘틈’ 사이로 들어오십니다. 우리 삶에서 얻은 찢어지고 터진 상처 사이, 의심하며 흔들리는 마음의 틈이야말로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통로입니다. 꿰뚫고 들어오시는 부활의 생명에 자신의 연약함을 여는 일이 참된 용기이며 바른 신앙입니다.

토마는 자신의 불완전한 신앙을 정직하게 대면했습니다. 정직한 의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평화와 용서라는 성령의 숨을 먼저 받은 다른 제자들에게서는 신앙고백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독특한 체험이나 특정 교리를 덮어놓고 확신하는 일은 하느님의 은총에 자신 전체를 개방하는 신앙과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불완전하게 흔들리는 삶 앞에, 위험을 무릅쓰고 신앙의 진실을 찾으려는 애타는 용기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평화와 용서의 음성으로 우리를 감싸며 우뚝 서 계십니다. 그때라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목소리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1.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2016년 4월 3일 부활 2주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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