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성삼일 전례 – 부활의 삶과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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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성삼일 전례 – 부활의 삶과 영성1

주낙현 요셉 신부 (전례학 성공회신학 / 서울 주교좌 성당)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

요한의 이 아름다운 환시는 구원이 창조의 회복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로 일어났습니다. 부활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그리스도교 전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인 구원 사건을 축하하는 일입니다. 제대로 된 그리스도교라면 성목요일의 세족례와 마지막 만찬, 성금요일의 십자가 처형 사건, 성토요일의 무덤의 침묵, 마침내 부활밤의 부활사건을 연이어 통째로 기억하며 그 길을 따라갑니다. 이 거룩한 삼일 동안 인간의 새 창조와 구원이 펼쳐졌습니다. 이것이 부활 전례의 핵심입니다. 모든 주일은 부활일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매주 매시간 부활한 생명으로 새로운 삶을 삽니다.

하느님의 천지 창조는 ‘보시기에 참 좋은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이 창조 세계를 통해서 드러났다는 점에서 창조는 하느님께서 이루신 첫 성사입니다. 그러나 인간 아담은 교만과 욕심으로 아름다운 낙원을 잃고 하느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과 나누는 관계와 인간이 서로 누리는 관계도 뒤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고통은 이처럼 ‘깨진 관계’에서 생겨나고 그리스도교는 이런 상태를 ‘죄’라고 부릅니다.

죄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을 측은히 여기신 하느님께서는 몸소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계셨다’는 성육신 사건은 새로운 창조를 향한 산고의 여정이었습니다. 마리아가 배를 찢는 아픔 속에서 아기를 낳았고, 그 아기는 자라서 십자가 위에서 살이 찢기는 고통 속에서 새로운 창조를 열었습니다. 이 새로운 창조의 과정에 담긴 사랑과 아픔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느끼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안고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일이 바로 전례의 기본입니다. 성삼일은 이 모든 과정을 압축하여 보여줍니다.

성 목요일은 새로운 “명령”의 시간입니다.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기며 세상 안에서, 특히 낮은 사람들을 섬기는 모본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의 만찬’은 그동안 배고픈 사람들을 배불리 먹였던 모든 음식 기적을 하나로 모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삶 전체가 참 생명을 살아갈 인간의 음식이며, 우리 또한 다른 사람에게 서로 먹을 것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이 일을 행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성 금요일의 십자가 처형이 주는 공포는 사람의 호흡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시간을 멈추게 합니다. 이 사건은 이러한 무죄한 고난과 죽음이 우리 안에서 계속 이어지는 한, 역사는 더 진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못 박힘은 사람을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하는 모든 고통과 아픔을 못 박는 일이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장엄기도’를 드리는 까닭은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아픔과 우리 자신의 아픔을 연결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예수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성 토요일은 예수님의 부재로 어두운 침묵이 이어지는 고독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서는 이 무덤 속 어둠의 시간에도 예수님께서 친히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시어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을 펼치셨다고 증언합니다. 삶의 어둠과 고독을 이기는 방법은 자신이 세운 성안에 갇혀 지내는 일이 아니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을 그 어둠 속에서 발견하여 손을 내미는 일입니다. 이때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합니다.

부활밤은 새로운 창조가 열리는 시간입니다. ‘새불 축복식’은 어둠의 과거를 살라버리는 놀라운 힘과 더불어 우리 자신과 세상을 밝히고 주위를 따뜻하게 하는 빛을 선사합니다. 이 불의 연단을 넘어선 우리는 새롭게 구워져서 아름답게 빛나는 도자기와 같습니다. 이 불은 우리 신앙의 열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 뜨거움으로 하느님의 선한 창조세계를 망가뜨리는 모든 힘에 도전하라는 뜻입니다.

새로운 창조가 열렸으니 부활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시간을 삽니다. 부활 오십일 째 되는 성령강림절은 새로운 창조인 부활의 완성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드러난다는 점을 강력하게 보여줍니다. 교회야말로 부활의 몸이라는 놀라운 선언입니다. 이점을 간과하면 ‘몸의 부활’이라는 말을 오해하고 교회와 신학, 신앙마저도 뒤틀리기 쉽습니다.

부활 성삼일은 이처럼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사건이 응축된 시간입니다. 이를 기억하고 따르는 우리는 작은 부활일인 주일 성찬례를 계속 거행합니다. 성찬례 안에서 우리는 부활한 주님을 거듭 만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먹고 마시며 그 몸을 경험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합니다. 이 만남과 경험과 참여의 성찬례가 바로 부활의 신비입니다. 이 신비의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 우리 자신의 마음을 맡겨야 합니다. 이때라야 우리는 부활의 새 생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입니다. 그 부활의 공동체는 하느님 나라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살아가는 백성입니다.

  1. 성공회 신문 2015년 4월 4일치 부활절 특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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