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향한 십자가와 변모

부활을 향한 십자가와 변모 (마르 8:31~38, 9:2~9)1

그리스도교 신앙을 간명하게 말하면, ‘자신의 어둠, 세상의 어둠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부활의 빛과 생명을 향해서 걷는 삶’입니다. 지난 주일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는 광야에 나아가 우리의 슬픈 어둠과 세상의 아픈 어둠을 제대로 경험하고 깨닫는 사순절 신앙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복음 본문은 신앙 여정의 조건과 목적지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의 고통과 세상의 아픔을 연결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려는 새로운 생명의 계획에 우리가 참여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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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활의 삶을 기대하지 못하고 ‘십자가’가 드러내는 어둠과 고통에 사로잡힌 신앙이 눈에 자주 띕니다. 중세 시대의 교회에서는 인간이 지닌 어둠과 잘못에만 집착하여 자기 삶에 벌이 뒤따를까 두려워하는 종교심이 즐비했습니다. 이 벌을 없애려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 죄를 대신 지셨다는 교리가 자라났습니다. 이런 생각에 머무는 태도는 신의 진노를 피하려고 종교를 찾는 여느 사람들의 기대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하느님이 그리 속 좁게 이런 위협으로 우리 신앙을 이끌어내시려는 분일까요?

십자가를 대속 교리의 소재 정도로 이해하면 부활에 관한 이해도 어긋나기 일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담긴 인간의 고통과 이웃의 고난을 잊고서 ‘부활의 축복’을 구하는 사람이 많이 보입니다. 십자가에 새겨진 인간 예수님의 고통이 세상이 겪는 고통과 슬픔을 보는 창(窓)이 되지 않으면, 부활은 여느 기복 종교가 던져주는 개인의 ‘값싼 은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온세상에 두루 미치도록 풍성한 하느님의 은총을 사적인 이익과 복에 제한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의 한 장면은 예수님과 베드로가 벌이는 한판 논쟁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하고서야 넓고 깊은 생명이 드러날 테니 그 수난의 길을 걷겠다고 예수님께서 예고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한쪽으로 데려다가 ‘꾸짖습니다’(성서 원어: epitimao). 예수님도 질세라 베드로를 ‘사탄’이라 부르며 ‘꾸짖습니다’(epitimao). 자신의 고통을 피하거나 세상의 어둠에 눈감지 말고, 오히려 대면하여 ‘짊어지고’ 가는 일이 ‘부끄럽지 않은’ 신앙이라고 일갈하십니다. 인간의 고통을 없애는 지우개로 신을 기대하거나, 벌을 피하는 수단이나 제 이익에 따라 신을 이해하려는 종교 행태를 향해 던지는 도전이자 대결입니다.

오늘 복음의 또 다른 장면인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부활을 예견합니다. 그 부활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책임 있는 삶을 보여줍니다. 모세가 누구입니까? 이집트 노예 탈출을 이끌었던 해방의 지도자입니다. 엘리야가 누구입니까? 악행을 저지르는 권력에 맞서 싸우며 고초를 겪어야 했던 예언자가 아닙니까? 이들과 함께 등장하신 예수님은 성서에 면면히 흐르는 인간의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전통을 이어갑니다.

예수님의 변모를 종교적 두려움으로 대하고, 종교의 ‘초막’에 안주하려는 제자들에게 하늘에서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하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통해서 자신과 세상의 고난을 보고,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라는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귀 기울이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두려움을 이기고 세상이 겪는 고통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부활의 희망과 생명을 향해 걷는 순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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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주보 2015년 3월 1일치 – 수정(↩)

One Response to “부활을 향한 십자가와 변모”

  1. Sangkyun Noh Says:

    오늘 로마서5장부터 8장까지 읽는데, 8장 5절에서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마음을 씁니다." 라는 구절을 읽고 나서 신부님의 글과 마르코 복음을 보았습니다.

    중세 사람들처럼, 죄를 무서워하고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
    되려 마음만 무거워 지고, 죄에 얽매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쁜 마음에서 은혜를 나누는 일을 하면 죄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죄에 묶인 사람은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을까?' 생각하고,
    은혜에 놓인 사람은 '어떻게 하면 은혜를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한다.>

    십자가가 지닌 은혜와 행복의 의미를 나누려 노력하고, 모두가 함께 짊어지고 간다.
    라고 보아도 되겠습니까?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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