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글 “전례 여행” 차례 및 본문 링크

Thursday, February 2nd, 2012

지난 한 해 동안 <성공회 신문>에 실었던 전례 연재 글의 차례를 밝히고, 해당 글이 있는 온라인 <성공회 신학-전례 포럼>의 주소를 링크한다. 원래 기대했던 토론이 이곳이든 <포럼>에서든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주낙현 신부와 함께하는 전례 여행
(2011년 2월 ~ 2012년1월, 성공회 신문)

주낙현 신부(서울교구)는 현재 미국에서 전례학과 성공회 신학을 연구하며 <성공회 신학 전례 포럼>을 비롯한 성공회 인터넷 지식 프로젝트 http://www.skhcafe.org 를 운영하고 있다. 개인 블로그 http://viamedia.kr 트위터 @viamedia

1. 연재를 시작하며 –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2. 예배, 기도, 전례
3. 전례 – 구원과 선교의 잔치
4. 전례 전통과 도전 – 한국 성공회의 위치
5. 기도의 법은 신앙의 법 –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6. 전례와 역사 – 전통과 정통 사이에서
7. 종교개혁의 빛과 그늘
8. 성공회 종교개혁 – 전례를 통한 개혁
9. 전례 운동 1 – 성공회의 이상과 공헌
10. 전례 운동 2 – 하느님 백성의 예배와 선교 공동체
11. 예배 전쟁? – 다시 생각하는 고교회와 저교회
12. 말씀과 성사 – 하나인 전례
13. 성사와 성사성 – 하느님 은총의 통로
14.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전례와 몸의 감수성
15. “나를 기억하라” – 전례의 기억과 시간
16. 우리에게 내리시는 영 – 전례와 성령
17. 춤추시는 하느님 – 삼위일체와 전례
18. 성전의 두 기둥 – 성무일도와 성찬례
19. 성찬례의 인간 – 전례와 사회
20. 세상의 종말 – 전례와 선교

편집자 주: 주낙현 신부의 이 연재글은 서울교구 분당교회의 후원으로 마련된 것입니다. 분당교회 교우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 이 문구는 지면에 실리지 못했다.

선교를 향한 리더십과 영성

Wednesday, June 15th, 2011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선교 Missio Dei 에 참여하라는 부름을 받은 사람이다. 이 부름에 응답하여 참여하고 실천하는 행동을 ‘선교’(mission)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명(mission)은 선교이다. 교회의 여러 구조와 실천은, 그 위계질서를 포함하여, 이 선교 사명을 위한 일에 종속된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전망 속에 신자의 삶, 사목자의 삶, 교회의 삶이 있다. 교회의 삶과 실천은 하느님 나라를 지향한다. 그러니 사목과 전례, 교육과 영성, 이런 실천도 모두 하느님의 선교 지평에서 자리 잡아야 한다. 교회의 위계질서, 특히 리더십은 더할 나위가 없다. 교회의 선교 지향과 실천에서 지도자와 그 리더십은 너무도 중요하다.

멀리 뉴질랜드에서 글 하나가 배달된다. 가만보니 2년 전에 회의차 갔다가 만났던 신부님의 글이다. 성공회 프란시스 수도회 제 3회(재속회) 회원이고 오랫동안 청소년과 청년 선교에 몸을 바친 분이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뉴질랜드에서도 고민이 많았다. 청소년-청년 선교가 쉽지 않다는 것. 교구나 교회 지도자들은 변화는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함께 변화하려 하지 않으니, 답보를 거듭한다 했다.

그 탓일까? 그는 리더십에 대한 체크 리스트를 제공한다. 돌아볼 점이 많다. 발설하지 못할 여러 생각이 겹친다. 다만, 이를 통해서 우리도 우리 처지에 맞는 체크 리스트를 새롭게 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것으로 교회 내의 지도자인 나 자신, 신자들, 그리고 여러 형태의 지도자들에게도 돌아보고 갖추라고 요구했으면 한다.

2020년의 리더십 – 지도자상

  • 무엇보다 먼저, 작금의 현실 교회에 물들지 않은 좀 더 젊은 리더십
  • 선교에 집중하며, 특히 성공회 전통 안에서 선교에 대한 이해가 있는 리더십
  • 성공회 전통을 그저 보존하려고만 들지 않는 리더십
  • 하느님께서 성공회 전통 안에서/통해서 세상에 생명을 주고 세상을 변화시키려 한다는 믿음이 있는 리더십
  • 깊은 기도에서 나온 리더십
  •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는 리더십
  • 변화를 추구하는 리더십
  • 모든 사람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에 깊이 물든 리더십 – 하느님은 우리가 종종 사랑하기 어려운 이들마저도 사랑하신다.
  • 복음을 설교하기보다는 복음을 사는 데 관심을 둔 리더십
  • 당연히 여기지 않고, 물음을 던지는 리더십
  • 혼자서 감독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를 사랑하고 그들과 어울리는 리더십
  • 팀과 일하는 리더십
  • 사람들을 도와서 비전과 일이 가능하도록 돕는 리더십
  • 사람들이 처한 사목 영역에서 사람을 키우고 자료를 제공하는 리더십
  • 자기 또래만이 아니라 모든 세대와 함께하려는 리더십
  • 선교는 모든 세대와 함께, 특히 젊은이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확신이 분명한 리더십

참고: 이 블로그에서도 비슷한 주제를 여기저기서 다뤘다. 성직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모든 ‘리더십’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좀 더 영성적인 면에서 바라본 것들을 선별해 놓는다.

희망해 본 질문과 도전 – 미국 성공회를 향해서

Monday, April 4th, 2011

세계 성공회 안에서 이어지는 여러 논란에 대해서는 내 생각은 이곳에서 여러 번 말했다. 그 전개가 예상을 빗나가지 않으니 이전에 적은 관전평과 판단도 그대로다. 그러니 더 적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당사자들과 만나서 이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 성공회의 시각과 방향을 물을 때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저 외교적 언사로 누구 편이 되어주는 것보다는, 비판적인 질문과 도전을 던지는 일이 더 중요하겠다. 짧게 주어진 시간이라면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문제의식과 그 방향을 잡고 질문하고 도전했으면 한다. 그것이 서로 도우며 자라는 방법일 수도 있다. 그 가운데 자신의 원칙도 정리할 수 있고, 자기비판의 근거와 방법으로도 삼을 수 있겠다. 미국 성공회를 향해서 발언한다면 이런 내용을 희망해 본다. (발뺌: 다른 이의 위치와 입을 가상하여 급하게 ‘초안’한 생각일 뿐이다.)

여러분도 아시고, 계속해서 기도하시는 바와 같이, 일본과 일본 성공회가 겪고 있는 희생과 고통을 깊이 느끼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일본에 있는 사람들과 일본 성공회를 위해서 계속 기도해 주시고 지원해 주십시오. 이 거대한 고통과 슬픔의 사건 속에서 피조물은 우리 인간 모두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그 하느님의 손길이 되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일본과 한국은 고통스러운 역사적 경험을 나누고 있으며 일본이 남긴 상흔은 여전히 여기저기에 깊게 남아 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 성공회와 일본 성공회는 서로 협력하여 이 역사적 고통을 치유하고 화해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 일을 시작하는 초창기에 양국의 많은 사람은 우리의 이런 화해 노력을 의심했습니다. 아직 미움과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던 탓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양 교회는 계속해서 양 국민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며 일했고, 이제는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해서 함께 애쓰고 있습니다. 십여 년 전부터 이런 우리 노력을 알아차리고 우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미국 성공회, 특히 미국 성공회 정의평화위원회의 노력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한국 성공회가 이러한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것은 바로 약자들과 고통받은 이들에 대한 관심 때문입니다. 이 관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른 것입니다. 한국 성공회는 한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소수자로 살아갑니다. 보수적이고 거대한 여러 다른 교단들이 지배하는 처지에서 생존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작음이 우리에게는 은총이 되었습니다. 작은 이로서 우리는 작은 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이들 속에서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각을 통해서 미국 성공회와 세계 성공회의 일치 문제를 고민해왔습니다. 한국 성공회 주교원은 이미 ‘성공회 계약”(the Anglican Covenant) 문서에 대해서 주교원의 생각을 세계 성공회 사무소에 전달했습니다. 한국의 주교들은 어떤 ‘문서’로 우리의 신앙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 계약 문서가 “고전적인 성공회 전통”(classical Anglican tradition)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런 계약 문서가 누군가를 배척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배척당하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동성애자와 같이 사회에서 배척당한 이들을 포용하는 여러 교회의 선교와 사목은 그리스도의 선교와 사목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미국 성공회는 그 대가로 분열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포용과 환대의 사목과 선교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약한 자들과 함께 하는 선교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여러분과 깊은 연대의식을 나눕니다.

아시아와 세계 성공회의 작은 교회로서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과 도전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그 원칙은 힘없는 이들에 대한 경청입니다.

첫째, 세계 성공회 안에서 미국 성공회는 세계의 힘없는 이들과 함께 했습니까? 특별히 미국이라는 제국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불의를 저지를 때, 미국 성공회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비록 오해이긴 하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은 미국과 미국 성공회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정의와 평화를 위한 여러분의 노력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어떤 점에서 LGBT에 대한 미국 성공회의 실천은 예언자적입니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자인 예언자는 없었습니다. 세계의 많은 사람은 여러분의 노력을 부자들과 제국주의자들의 이야기로 취급합니다. 이 오해를 극복하려면 여러분은 미국이라는 제국에 도전해야 합니다. 또 이 논란을 통해서 여러분과 미국 성공회가 세계 성공회에 있는 힘 없는 이들에게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세계 성공회의 다른 이들을 더 방문하고 더 초대하며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이 설정한 예언자적 행동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둘째, 우리는 지금 누구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윈저 위원회가 요구한 핵심적인 내용은 “잠정중지”조치가 아닙니다. 가장 핵심은 경청 과정(listening process)입니다. 그런데 이때 누구에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까? 세계의 주교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까? 몇몇 유명한 신학자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까? 아닙니다. 힘없는 이들입니다. 목소리가 없는 이들입니다. 미국에 앉아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습니다. 다른 나라의 주교들을 통해서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어렵습니다. 그 힘없는 이들의 목소리는 첩첩이 숨겨져 있습니다. 복잡한 연유로 싸인 겹을 어떻게 펼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시겠습니까? 우리는 더 깊이 투신해야 합니다. 더 많이 관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미국의 소수자 문제에 집중하는 만큼 세상의 힘없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국 성공회와 더불어 여러 다른 나라 성공회는 세계 성공회가 필요합니다. 세계 성공회는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측은지심과 사랑을 실천하는 연대의 네트워크이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세계의 힘없는 이들, 그리고 힘없던 예수 그리스도와 연대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성공회는 “성공회 계약”에 대해서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아직 모릅니다. 작은 교회로서 갖는 두려움과 염려가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과 상관없이 한국 성공회는 계속해서 우리의 선교를 계속할 것입니다. 그것은 여전히 작은 이들과 배척받은 이들과 함께 하는 선교와 사목입니다. 그리고 이 길을 걷는 모든 이들과 언제라도, 어디서라도, 어떤 조건에서라도 우리의 연대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