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제로 향하는 젊은 벗들에게

Monday, April 16th, 2012

이 나이 되도록 프랑스 떼제 공동체에 가보지 못했지만, 지난 25여년 동안, 떼제는 내 신앙의 동경이요, 기도 생활의 모본이요, 신앙의 벗들 그리고 가족과 나누는 기도의 못자리였다. 10대 말에 책으로 접했던 떼제 이야기와 떼제 성가, 그리고 다양한 떼제 기도 경험, 한국 화곡동 떼제 공동체 기도 체험, 그리고 성가수녀원에서 한동안 지속했던 떼제 기도 모임, 미국에서 가족과 종종 찾던 머시 센터의 떼제 기도 모임.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걱정할 때, 떼제에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그 불편한 삶을 감수하고, 그 젊음의 생명과 서로 나누는 우정을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이해하며 함께 모여 기도한다. 이런 ‘봄의 새순’ 같은 기도가 교회의 생수이겠건만, 10년 전에 성공회 신문에 이를 다시 소개하고, 실제로 여러 모양으로 시도했건만, 여전히 우리 교회에 자리 잡지 못한다. 아마도 성과를 빨리 바라는 조급증 때문일 테다. 다른 이들에게서 그윽하게 빛나는 거룩한 얼굴을 인정하지 못하는 질시 때문일 성도 싶다. 푸릇하고 젊은 가슴 안에 심어야 할 깊은 기억이 여러 이유와 모양으로 짓눌리는 시절 탓일 테다.

이제는 내 아들과 딸과 더불어 언제 한번 가볼 궁리하는 할 뿐인 터에, 떼제를 향하는 젊은이들, 떼제 순례 중인 이들을 향해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님이 건네의 우정의 인사를 옮긴다.

내가 십대였을 때 처음 떼제에 갔습니다. 그 첫 기억은 텐트에 퍼붓듯 쏟아지는 비였죠. 무서웠어요. 여러분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기를 정말로 바랍니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이나, 새로운 일이 생기는 순간에 그것도 꼭 나쁜 신고식이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왜냐면 내 두 번째 경험 때문인데요. 떼제에서는 그런 일 때문에 친구 사귀는 일이 정말 쉬워진다는 것을 경험했거든요. 사람들이 그냥 와서 자신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주 다른 배경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다른 나라와 다는 문화에서 온 사람들은 여러분이 그들에게 관심이 있는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말이에요. 그리고 함께 있다는 걸로 서로 기뻐할 겁니다. 떼제 경험의 중요한 부분은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문화들, 새로운 경험들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에는 친구가 될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세 번째 경험은 어떤 점에서 가장 깊이 기억에 남는 것인데, 바로 성당 안에서 가진 침묵의 시간입니다. 떼제의 본당, 전체 공동체 교회 안이었죠. 작은 마을 성당에서 경험한 침묵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지만 역사적인 성당인데 때로는 정교회 전례를 거행하기도 합니다. 은은하게 빛나는 촛불과 함께하는 깊은 침묵, 하느님과 함께 머물려고 시간을 내어놓는 사람들. 내 생각에, 떼제에 있으면서 가장 어렵기도 하고 가장 흥미로운 경험은 속도를 늦추고 느리게 사는 것을 배우는 일입니다. 여러분 주위에서 모든 것들이 빛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죠. 말들과 사진들과 촛불의 은은한 빛, 그리고 다른 사람들 얼굴에서 빛나는 은은함으로 서서히 다가서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정적을 배우고,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고픈 바를 말씀하시도록 내어 놓는 것을 배웁니다. 어떤 좋은 인상을 만들기 위해서 늘 바쁘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죠. 여러분이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하느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떼제 경험이 여러분 인생에 깊은 기억으로 남길 바랍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방문해서 가지게 된 기억처럼 말이죠. 그 경험이 친구를 사귀고, 하느님을 새롭게 경험하는 시간이길 바랍니다. 모든 것을 느리게 하는 시간, 여러분 자신을 위한 시간, 기도와 사랑이 비추는 은은한 빛 속에 흠뻑 젖는 시간이길 빕니다.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

잡감 –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 10년

Thursday, March 22nd, 2012

빚진 마음이 무거운 탓일까?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사임 발표에 대해서 ‘잡감’을 적기로 했지만, 잘 안 된다. 때아닌 감기가 몸과 머리를 어지럽히고 이런 글쓰기도 부질없는 짓이라 타박하는 듯하다. 로완 대주교에 빚진 신학적 통찰력과 그분의 대주교직 수행의 불일치를 목격하며 생각했던 것들이 너무 무거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편히 적으려는 데도 계속 힘이 들어간다. 힘을 빼고 그저 잡감에 충실해 보려 한다.

나는 10년 전 그분의 대주교직 지명에 기뻐했고, 그 전후로 그분의 글에서 깊은 배움을 얻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세계 성공회 전체에 닥친 분열의 위기 속에서 그분의 ‘치리’에 대해서는 다 동의하지 않았다. 특히 그분의 글에서 읽는 신학자와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나는 여러 불일치와 모순을 느꼈다. 이런 내 느낌은 그분의 글을 내 멋대로 읽은 탓일 수도 있겠고, 교회 지도자가 처한 현실을 다 헤아리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그분에 대한 배움과 오해가 어떻든, 그마저 내 시각에서 몇 가지 의문으로 정리하는 것도 또 다른 배움이 될 테다.

교회 일치, 그 빛과 어둠

성공회는 특별히 지난 20세기 교회 일치 운동의 산파였다. 성공회는 ‘개혁하는 가톨릭 교회’(a reforming catholic church)로 자신을 규정하는가 하면,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는 갈라진 서방 교회(천주교와 개신교)를 다시 잇는 ‘다리 교회’(bridge church)로 자신을 규정하곤 했다.

이 희망은 50년 전 마이클 램지 대주교의 말에 아주 잘 드러난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성공회의 역할은 우리만의 독자적인 캠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지개의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남들과 깊이 사귀는 밝은 하나의 색깔이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확장하여 어떤 이는 “성공회는 ‘보편 교회’의 일치를 위해 궁극적으로 사라지는 것을 기뻐하는 교회이며, 그날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교회 일치와 선교의 사명을 다할 뿐”이라고 비장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공회 자신의 이런 선의와 비장한 마음과는 달리, 다른 교단, 특히 정교회와 천주교는 성공회에 확정적인 교리적 통일성이 없어서 그 정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반응을 자주 보였다. 이것이 교회 일치 대화의 걸림돌이라고 늘 단서를 달았다.

성공회는 적어도 19세기 말 이래로 ‘영국 성공회’라는 단일 체제를 떠나 지역마다 독립적인 관구 교회로서 자신의 전례와 교리적 가르침을 정했다. 다만, 영국 성공회 안에서 경험하고 발전한 신학과 전례의 기풍을 너르게 나누고 친교하는 것으로 ‘세계 성공회’가 살아간다. 단일한 교리 체계가 아니라 우리의 처지와 맥락에서 다양하게 만나는 하느님의 경험을 성공회 전통과 전례라는 기풍 안에서 서로 나누며 살아간다.

교회 일치에 대한 희망은 종말론적이다. 종말론적 시각에서 보면, 이른바 ‘가시적 일치’는 환상이다. 갈라진 그리스도교회의 가시적 일치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종말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하느님의 힘으로 ‘온전하게 될’ 일이지, 억지로 저마다 다른 맥락에서 발전한 여러 교회의 다양한 발전과 특성을 무시하면서 우리 힘으로 하나 되게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동안 교회는 일치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을 통해서 펼쳐지는 하느님의 다양한 경험을 억누르기 일쑤였고, 그 조직적인 일치에서 얻은 힘을 함부로 부리곤 했다. 어쩌면 역사 속에서 일어난 교회의 큰 분열들은 이런 문제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발이었고,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하느님의 뜻이었으리라.

그러니 하느님의 선교 사명을 저버리거나 소홀히 하는 교회의 일치는 종종 환상에 불과하다. 로완 대주교는 이런 환상에서 자유로우셨을까? 천주교의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성공회와 천주교 간 일치 대화에서 성공회에 오래된 주문을 계속했다. 즉 성공회의 일치성을 보장해야만 양 교회가 일치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언뜻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일치의 실상은 무엇인가? 천주교 자신의 일치는 어디에 있는가? 그 획일적인 교도권이 정말 우리가 바라는 일치인가? 그 일치의 교도권 아래 억눌린 천주교 내의 다양한 목소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게다가 이런 와중에 여성 성직 서품과 동성애 문제에 관련하여 성공회를 떠난 그룹을 받아들이고, 성공회 내 보수주의자들에게 미끼를 던지는 교황청의 조치는 정말로 교회 일치에 도움이 되는가?

아마도 교회 일치에 대한 필요 이상의 집착이 로완 대주교의 패착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성공회 계약’이라는 종이 문서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영국 성공회 내부에서도 그 ‘계약 문서’는 더 많은 반대에 부딪혔다. 죽은 말에게 채찍을 가하듯이, 이미 실효를 상실한 ‘계약’ 문서를 옹호하고 역설하시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영국 vs. 미국 – 제국주의와 소비주의, 개인주의

고정관념, 고정된 편견은 늘 사람의 시각을 왜곡한다. 미국 문화와 관련하여 더욱 그렇다. 영국의 몇몇 주교들은 미국 문화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의견을 자주 내놓았다. 적절한 비판이 많았다고 본다. 그런데 이들의 비판에는 늘 함정과 허점이 있었다. 현재 미국이라는 제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휘두르는 힘, 그리고 소비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은 옳다 못해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미국’이라는 제국과 ‘미국 성공회’를 그대로 겹쳐서 속단해서는 안 된다. 어떤 교회도 그 상황과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 ‘미국 성공회’는 미국이라는 전체 사회와 문화 속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적어도 그 기풍은 주류 종교 이념인 청교도주의를 거부하는 반문화 전통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경계를 너무도 쉽게 무너뜨리고, 싸잡아서 비판하는 일은 옳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영국보다는 오히려 미국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많은 독자를 거느린 신약성서학자 N.T. 라이트 전직 더럼 주교는 이런 태도가 뾰족한 분이었다. 미국과 ‘미국 성공회’를 그대로 겹치다 못해, 이제는 미국의 제국주의, 미국의 개인주의는 ‘미국 성공회의 제국주의’ ‘미국 성공회의 개인주의’로 펼쳐진다. 그러나 현실 사회에서 종교의 처지를 생각하면, 영국 사회의 세속화는 미국보다 더 심하다는 평이 많았다. 적어도 영국 문화를 걱정하는 건전하고 지적인 종교인들의 언급이었다. 남 말할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왜 계속 ‘제국주의’ 비유에 빠져 함부로 남을 덧씌우는 것일까? 자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거나,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으면, 남 탓하면 그만이기는 하다. 정말 그런 심리에서 나왔을까?

아프리카 생각

로완 대주교는 아프리카에 대한 연민을 매우 자주 피력하셨다. 서방 국가들의 부와 힘이 아프리카의 질병과 가난과 극명하게 대비되곤 했다. 아프리카의 가난과 그 처지에 대한 동정과 연민은 버릴 수 없이 소중하다.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교회를 볼 때는 더 세밀한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게다가 아프리카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아프리카 전체를 뭉뚱그리기도 쉽지 않다. 실상을 펼쳐보면 여러 아프리카 교회들이 아프리카 국가의 독재에 협력하는 일이 허다하고, 교회 지도자들의 권력과 부패, 그 권위주의는 하늘을 찌른다. 특히 이슬람과 종교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그리스도교 선교를 정당화하고, 사회의 소수자를 앞장서서 박해하는 이들도 대개 교회들이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에 대한 연민은 늘 선별적이어야 한다. 그 식별의 기준은 하느님의 선교일 테고, 좀 더 적확히 말하면, ‘가난한 자를 우선 선택하시는 하느님의 당파성’일 것이다.

세계 성공회 안에서 동성애 논란이 크게 번질 때, 로완 대주교의 처사는 썩 중립적이지 않았다. 캐나다와 미국 성공회에는 동성애자 서품 ‘잠정 중지’를 촉구하면서도, 아프리카 교회들이 다른 나라 성공회의 ‘치리 지역 침입’하는 것에는 별 조치를 하지 않았다. 교회의 힘을 업고 아프리카 여러 독재 정부가 추진한 동성애자 처벌법 등에 대해서는 오래 함구했다. 이 불공정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마저, 지난 ‘영국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던 아프리카에 대한 어떤 죄책감과 부채감의 발로일까?

‘글로벌 사우스’와 람베스 회의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몇몇 보수적 성공회 관구들은 소위 ‘글로벌 사우스’라는 이름으로 ‘리버럴’한 서구 교회, 특히 북미 교회에 반대하는 모임을 만들고, 캔터베리 대주교를 계속 압박했다. 그런데 이들이야말로 세계 성공회의 일치를 계속 위협한 이들이 아니었나? 세계 성공회의 일원이 되는 가장 중요한 문구인 “캔터베리 대주교와 나누는 상통”을 교회 헌장에서 삭제하고 자신들의 교세를 바탕으로 영구적 탈퇴를 위협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실제로 이들은 다른 관구 교회들과 함께하려 하지 않았다. 10년마다 열리는 세계 성공회 주교회의인 람베스 회의를 보이코트하려 했다. 그 보수적 대표들이 따로 예루살렘에 모여서 회의를 열었고, 람베스 회의 불참을 결의하고, 자기 관구에 속한 개별 교구 주교들의 참석을 강제로 막았다. 교회 분열은 누가 일으키고 있는가?

그러나 더 많은 주교가 람베스 회의에 참여했다. 직접 목격했던 충격스러운 일은 캔터베리 대주교가 캐나다와 미국 성공회를 징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주교가 집전한 람베스 회의 개회 성찬례에서 영성체(communion – communication)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놀라운 일인데, 이야말로 자기 파문(self-excommunication)이 아닌가?

전혀 새로운 형태의 람베스 회의를 기획하고 이끈 로완 대주교의 지혜는 겸손하고도 출중했다고 생각한다. 인다바 그룹을 통해서 서로 다른 경험을 나누고 귀 기울이도록 하는 일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 경청 과정이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 누구에게 ‘귀를 기울일 것인가? 주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면 그 경청 과정이 완료되는가? 그들이 성공회 신앙인들을 대표하는가?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도 않은 일들이 세계 성공회 곳곳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귀 기울일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교회 일치와 여성 성직

세계 성공회의 절반은 여성 성직 서품을 시행하고, 나머지 절반은 반대한다. 세계 성공회의 여성 성직 서품 시행 역사에서 ‘영국 성공회’는 늘 뒤처졌다. 1993년 여성 사제 서품이 가능하게 되고, 여러 논란 끝에 2014년이면 여성 주교가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문제는 이를 반대하는 보수파들이다. 이 보수파들은 ‘성공회-가톨릭’이라는 전통을 아주 협소하게 이해하는 이들이라 하겠는데, 이미 그 무리의 절반은 1993년 영국의 여성 성직 서품 이후로 천주교로 건너갔다. 그런데 몇몇이 남아서 여전히 여성 주교직도 반대한다.

로완 대주교는 여성 성직 서품을 찬성하다 못해 적극 후원하는 분이다. 로마에 초청받아 전하신 강연에서도 당신의 이런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소위 ‘영국 성공회의 일치’라는 이름 아래서 이 보수적 주교들과 교회를 달래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즉 1993년 여성 성직 서품 이후 만들어진 ‘플라잉 비숍’(flying bishop) 제도를 더욱 확대하려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혹시라도 여성 주교가 선출되면, 그 교구 내에서 여성 성직을 반대하는 성직자와 신자, 교회가 교구 밖의 다른 ‘남자’ 주교의 치리를 받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는 명백히 주교직에 대한 이해를 훼손하는 일이다. 실제로 로완 대주교는 요크의 존 센타무 대주교와 함께 여성 주교직과 관련된 치리 문제 개정안을 제출했다. 관구 의회는 두 대주교의 개정안을 부결시켰다. 결국, 이로써 두 대주교는 자신들의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 역시 일치에 대한 집착에서 나온 패착이었다고 본다.

희생의 대가

성공회는 어떤 신학적인 ‘문서’를 가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하거나, 자신의 신학적 주장을 구획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례와 선교의 경험 안에서 만나고 나누는 행동으로 서로 의존하고 서로 이해하려 했다. 하느님의 손길은 그런 공동체와 선교의 경험 속에서만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로완 대주교는 ‘성공회 계약 문서’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 계약 문서는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소위 ‘리버럴’을 좀 누르면서 보수파를 달래려는 방법이리라 기대했겠으나, 리버럴은 물론, 보수파도 ‘계약 문서’를 반대했다. 오히려 보수파는 세계 성공회의 분열 책임을 로완 대주교에게 돌렸다. 캔터베리 대주교직을 곧 사임하겠다는 발표에 대해서 나이지리아 관구장의 첫 반응은 모욕과 욕설이었다. 세계 성공회 분열이라는 역사에서 로완 대주교는 ‘본디오 빌라도’와 같은 존재로 기억될 것이라는 험담을 늘어놓았다. 로완 대주교는 누구를 감싸 안으려 했던 것일까? 자신의 친한 친구이자 동성애자인 사제가 영국의 한 교구 주교장직에 지명되었을 때, 그를 설득해서 주교직을 포기하게끔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일치를 위한 희생의 대가는 무엇인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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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문들과 더불어 로완 대주교 10년 세월을 따라왔다. 그분의 책과 글에 드러난 놀라운 영성적, 신학적 식견에 감복하고 찬탄하면서도, 그것이 교회 치리와 행정과 엇나갈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분의 여러 글을 조각으로나마 읽고 복기하고, 번역하여 다른 이들과 나눈 기쁨이 컸다. 전례력에 따라 발표되는 그분의 편지를, 하던 일 다 제쳐두고 냉큼 번역하여 퍼뜨리는 즐거움이 남달랐다. 그러나 교회와 관련된 그분의 처신은 내 기쁨과 즐거움을 짓누르곤 했다.

연말에 어느 분이 대주교로 지명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분이든 내게 로완 대주교의 지명 때와 같은 흥분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 말하는 것이 그대로 원고인 그분의 탁월한 지성은 그나마 남아서 성공회 신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시리라 기대한다. 그 높은 지성과 지위에도 늘 겸손하게 행동하셨던 분으로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고집불통처럼 ‘보라색’ 성직 셔츠를 한 번도 입지 않으신 분. 주교라면 뽐내고 싶을 주교 장백의의 꽃 소매 장식을 한사코 마다하신 분. 성공회를 대표하는 대외적인 일이 아니면 되도록 ‘보라색’ 캐석도 입지 않으려 하셨던 분. 람베스 회의 공청회장 뒤쪽에 남몰래 쭈그리고 앉아 찜통더위 속에서 연신 손부채를 하시며 경청하시던 분. 그러고 보면 이런 불평어린 잡감이 초라하여 그분에 누가 되지 않나, 잠깐 생각했지만, 크신 분이기에 그럴 리는 없겠다.

그분의 부활절 메시지는 아마 우리말로 번역할 것이다. 올 성탄절 메시지는 그분이 내실까? 아니라면, 또 다시 번역하게 될까? 지난 10년 동안 로완 대주교의 절기 메시지를 거의 다 번역했으나, 이 일도 올해로 그쳐야 할 성 싶다.

인터뷰 – 미주 한인 사회의 종교, 갈등, 그리고 희망

Friday, February 3rd, 2012

어느 미주 한국 신문 샌프란시스코 지역 판에 인터뷰 기사가 오늘 나왔다. 한 달 전, 친분 있는 ‘객원’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그 내용을 인터뷰 형태로 정리했다. 몇 시간 넘은 대화였으나 그 내용을 다 담을 수도, 다 전할 수도 없다. 언론 인터뷰를 작정했다면, 이정환 기자의 “인터뷰 당하고 낭패를 당하지 않는 몇 가지 원칙”을 참고했어야 했다.

다행히, 기자는 자신이 작성한 내용을 살펴달라는 정성을 보여주었다. 깊은 배려라 생각한다. 그래서 틀과 기조는 유지하되 이곳저곳 바꿀 기회를 얻었다. 내 식대로 손 봐 돌려준 내용을 옮긴다. 최종 지면에 나온 기사와는 좀 다르다.

미주 한인 사회의 종교, 갈등, 그리고 희망

성공회는 한인사회에서 무척 낯설다. 성공회를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성공회는 종교개혁에서 시작된 교회이다. 개신교 단일 교파로서는 현재 세계 최대이다. 한국에서는 교세가 작아서인지 천주교와 개신교의 중간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 성공회(The Episcopal Church)만 보더라도 미국 장로교와 비슷한 규모이고 미국 사회 내 영향력도 아주 크다. 교리적인 신학보다는 예배를 중심으로 그 영성과 복음을 체험하고, 이 체험을 삶으로 이어가려는 것이 성공회의 특징이다. 극단과 배타보다는 포용과 관용의 정신을 중시한다.

성공회 입장에서 개신교가 일으키는 한국사회의 종교 갈등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모든 개신교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극단적이고 근본주의적 종교는 언제나 갈등을 유발한다.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는 신학적인 문제인데, 한국 교회에 흐르는 배타적이고 과도한 선민의식이다. 이것은 구약성서에만 있는 선민의식을 끌어들이고, 종교개혁기에 나온 선택적 예정론이라는 특정 교리를 결합해서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독단이 깔려 있다. 이 때문에 타 종교, 심지어는 이웃 교단들과도 갈등이 일어난다. 둘째는 사회 정치적인 문제인데, 한국의 여러 교회는 반공주의라는 색안경을 끼고 사회를 판단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런 정치 이데올로기에 물들면 좌나 우나 눈을 가리고 현실을 왜곡해서 보게 된다. 이러면 다양한 주장에 귀를 기울이거나 대화할 수 없다.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고 자신들과 다른 목소리에 무조건 반대하는 경향을 보인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고, 잘못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부분에서는 그렇다. 사실, 한국 교회는 과거 우리 민족에게 큰 희망과 위로를 주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공헌이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교회가 그동안 보여왔던 일관적이지 않은 태도를 반성해야 할 때다. 예를 들어, 교회 지도자들이 국가 조찬기도회 등을 열어서 독재 정권을 축복했다. 타 종교에 그토록 배타적이면서도 전혀 다른 종교를 가진 독재 정권의 지도자들은 후원했다. 게다가, 그런 압제적인 정권에 반대하던 시민과 종교, 심지어는 같은 교단까지도 ‘용공’이니 좌파’니 하며 딱지를 붙여 몰아붙이며 독재 정권과 행보를 같이 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런 행태가 아직도 많다.

미주 한인 사회에서 교회는 어떤 갈등이 있다고 보는가?

“한인 사회의 교회는 한국에 있는 교회보다 배타성이 더 강한 것 같다. 이것은 모든 이민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민자들이 주류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한인들이 이민 생활에서 겪는 영적인 어려움을 이겨나가도록 종교적인 위안을 준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나? 이것은 잃어버린 욕구 충족의 길로 빠질 수 있다. 교회가 마련해주는 직위와 직함은 이민자가 주류 사회에서 얻기 어려운 지위의 대체품이기도 하다. 그것도 권력이라고, 휘두르고 싶은 유혹에 쉽게 빠지곤 한다. 이민 교회에서 다툼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또 한국이나 이민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가 그대로 교회에 들어온 경우도 많다. 그 하나가 성공에 대한 집착이다. 자칫, 교회가 자기 기준에 따라서 성공한 교인들과 성공하지 못한 교인들을 암묵적으로 갈라놓지는 않은가, 어렵게 사는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은가 반성해야 한다.

교회가 한인들이 쉽게 정착하도록 도와주는 면도 있지 않은가? 많은 한국 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물론이다. 미주 한인의 70%가 크리스천이라는 통계가 있다. 교회는 새로 이민 온 한인들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주고 있다. 교회는 이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소개하려는 목적도 갖고 있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포교적 목적이 지나치면 새로 정착하는 사람들은 내면에서 갈등을 빚게 된다. 즉, 각종 서비스를 받게 되면 은연중에 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게 되고, 교인이 안 되면 얌체같이 도움만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이 때문에, 기대와는 달리 이민자들은 생활이 안정되면 교회를 떠난다. 앞에서 말한 70%에는 이렇게 떠난 사람을 반영하지 않은 수치이다. 예전에 샌프란시스코 한국 학교가 폐쇄 직전까지 갔던 사실이 떠오른다. 교세 확장 수단으로 한인 교회가 한국 학교를 난립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이것은 서로 지는 게임이다. 최근에는 ‘실리콘 밸리 한국학교’와 같이 특정 종교 색채를 제거해서 오히려 잘 운영되는 사례도 퍼진다고 들었다. 장기적으로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교회는 본연의 일에 더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인 교회 안의 갈등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가?

갈등이 없는 사회가 있겠는가. 다만, 신앙은 그 갈등을 함께 견디고 그 방향을 공동의 선을 향해 조정하는 훈련이요, 능력이다. 이민 사회는 어쩔 수 없이 소수자요, 사회적 약자이다. 이것을 잊으면 안 된다. 소수자로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깊은 연민과 공감을 함께 나누는 일이 필요하다. 특별히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세례는 크리스찬 사이에는 어떤 차별도 없다는 상징이다. 성찬례에서는 누구나 똑같은 잔과 떡을 나눠 먹는다. 이렇게 나누면서 서로 격려하고 세워주는 일이 교회의 선교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 사회의 다양한 소수자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과 함께 성숙할 수 있다. 이것이 이민 사회의 힘이어야 한다. 종교나 그 지도자들에게만 답을 구하지 말고, 스스로 자기 삶의 가치를 성찰해야 한다.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다른 이웃과 대화할 때 한인 사회를 둘러싼 여러 문제를 해결할 힘이 생긴다.

북가주 한인 사회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우리의 경험과 시야가 좀 더 넓어져야 한다. 한인 사회나 교회에서 듣고 보는 것이 세상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한인들만 울타리를 두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미국 주류 사회 안에서 우리보다 더 오랜 시간 살아가야 하는 자녀들를 위해서라도 더욱 그렇다. 미국 사회나 교회에서 논쟁하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한인 사회나 교회의 한정된 시야로만 이해하지 말고, 좀 더 넓게 바라보고 대화해야 한다.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을 포용과 관용의 정신으로 키울 때라야 미국 사회 안에 바로 서서 공헌하는 한인 공동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