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양식 – 세월호가 남긴 고통의 빵, 눈물의 잔

Monday, April 20th, 2015

사도 6:8~15 / 시편 119:17~24 / 요한 6:22~29
2015년 4월 20일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아침 성찬례

주낙현 요셉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나이다.

그날은 오늘처럼 비가 왔습니다. 오늘처럼 아침 미사를 드리고 잠시 교우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러 일로 매우 무거운 마음이 흐르던 4월이었습니다. 부활절을 맞이했지만, 부활의 느낌이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문자로 연락이 왔습니다. 자리를 털고 곧장 수원 연화장을 향한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연화장 올라가는 길에는 안산 단원고의 상징색인 초록 리본에 달린 슬픔과 아픔, 미안함과 분노가 비에 젖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제 몸도 이미 흔들리며 젖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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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몸과 마음으로 친구를 만났습니다.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속에서 잃었던 딸 예은이의 시신을 일주일 만에 다시 품에 안은 친구였습니다. 예은이는 친구의 두 쌍둥이 딸 가운데 둘째 아이였습니다. 근 십여 년 만에 얼굴로 만난 친구를 부둥켜안고 울면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슬픔의 무게 때문에 땅바닥에 닿을 만큼 지친 모습이었지만, 저를 안고 손을 잡을 때는 오히려 거목처럼 든든하게 서서, 들썩이는 내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잠시 후, 휘청거리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엄마 아빠, 언니 동생들을 앞세우고 예은이가 한 줌의 재로 우리 앞에 섰을 때, 아니 여전히 예쁜 꽃가루로 우리에게 앞에 섰을 때, 우리의 통곡은 땅 속 깊은 곳을 적셨고, 하늘 끝까지 사무쳤습니다.

추모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안내인은 예은이를 안치할 곳을 안내했습니다. 기독교 신자를 위한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으니 그곳을 선택할 수 있고, 세월호 희생 학생을 위한 방도 마련되어 있으니 그곳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랜 기독교 신자인 친구는 지체 없이 희생 학생들을 위한 방으로 향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예은이를 먼저 온 친구들 옆 칸에 나란히 안치했습니다. 그 꽃가루를 담은 함들을 보니 불교 신자 친구, 그리스도교 신자 친구, 종교 없는 친구가 모두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나은 세상을 이미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진정 화엄 세상이기를 기도했습니다.

안치가 끝난 뒤 예배를 드릴 때, 친구는 제게 기도를 청했습니다. 가족 앞에 섰을 때, 울음 섞인 제 기도가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파편을 되새기면 이렇습니다.

“아무리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로 서니 하느님이 이렇게 우리에게서 선물을 거둬가시는 법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든 그 책임을 묻겠습니다. 그게 하느님의 뜻이라면 하느님께라도 따지겠습니다…”

“남은 언니와 동생들이 남은 삶 동안 터럭 하나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할머니와 할아버지, 엄마와 아빠의 찢어진 가슴을 사랑과 위로로 평생 채워주시지 않으면… 하느님이든 누구든 우리 원망을 받으실 것 아시라” 하며 하느님을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내는 이 사회의 악과 그 사슬을 끊어내도록 당신 백성을 다그치라”고도 하느님께 부탁했습니다.

“당신 자신이 아들을 잃으셨던 그 고통과 슬픔의 하느님만을 믿으며 살겠다”고도 다짐했습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기도를 우리는 눈물을 담아 하느님께 올렸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는 이제 예은이에게 기도했습니다. 세상의 꽃 같은 아이들을 지키는 수호천사가 되어달라고. 못나고 나쁜 어른들이 정신을 못 차리거든 하늘에서 함께하는 친구들과 함께 낡고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는 일곱 천사가 되어달라고.

이렇게 1년이 흘렀습니다. 제 몸과 마음은 지난 1년 동안 젖어있었습니다. 제 친구는 이제 텔레비전 뉴스나 신문 기사에서만 봅니다. 풍찬노숙과 눈물과 분노에 그을린 그의 얼굴과 삭발한 머리가 가상현실처럼 비칩니다. 일차원 화면에 붙어버린 그 얼굴과 몸을 보는 제 마음이 저립니다. 저린 마음으로 기도하며, 저는 그저 건강을 보살피라는 하나 마나 한 문자를 넣어 안부를 전하곤 합니다. 이렇게 1년이 흘렀습니다. 변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보이시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예수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먼저 파악하고, 좀 쉬시려는 듯한 예수님마저도 찾아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알아차리셨습니다.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안에서 종교를 가졌다는 사람들, 신앙을 가졌다는 사람들을 향해서 던지시는 말씀 같아 마음이 따갑습니다.
제게는 이렇게 들립니다.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너희 자신의 안녕과 안위와 축복을 바라기 때문이다.”

에수님은 이렇게 말씀을 잇습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소위 삼박자 축복이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판을 칩니다. 영혼의 축복, 물질의 축복, 장수의 축복을 얻으려고 힘을 씁니다. 이 욕심 많은 기복 신앙이 그리스도교 신앙일까요? 우리가 죽으면 영혼이 어떻게 될지 성서는 실질적인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물질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자식에게 대물림한 재산이 자식을 망치는 일이 오히려 잦습니다. 우리가 건강 관리 잘하여 좀 더 오래 살는지 몰라도, 어른이라는 분들의 행태를 보면 그 오래 사는 삶의 질이 어떨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물어야 합니다. ‘영원한 양식’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삶 자체입니다. 그 삶을 기억하고, 그 삶을 되새기고, 그 삶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이렇게 모여서, 예수님의 찢긴 몸을 먹고, 아프게 흘린 피를 마십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생각하고 기억하여,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작은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평판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고, 그분이 걸었던 삶을 기억하고 그 궤적을 따르는 일입니다.

2천 년 전 우리가 사는 땅 반대편에서 살았던 한 사나이를 기억하겠다는 우리가 어제로 겨우 55년 주년을 맞는 4.19 혁명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정치권력의 부패와 불의와 살인에 반대하여 일어섰던 일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1년 전 세월호의 침몰 속에서 발견한 사회의 안전불감증과 책임 회피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며 울부짖는 소리를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지겹다, 이제 그 정도면 되었으니, 그만하지” 하는 핀잔은 우리 신앙인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배상금’을 운운하는 말을 처음 누가 퍼뜨렸는지도 모른 체, 그 루머에 속아 넘어가는 일은 신앙이 아닙니다.

“교통사고일 뿐”이라는 발언과 논리가 어떤 사람이 처음 내뱉었는지를 다시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그 말을 입에 담는다면 우리는 거짓에 속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생각하고 사고하라고 주신 자신의 ‘머리’를 잘라내어, 속이려고 작정한 언론과 권력자들의 말에 우리 머리를 송두리째 넘겨주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는 ‘좀비’이지 신앙인이 아닙니다.

교통정체와 도로의 혼잡함에 불편을 느낀다며, 찌푸린 눈으로 최근의 일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은커녕, 자기 손톱 밑에 낀 가시의 아픔에 우리 신앙을 팔아넘기는 일과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은 근거 없는 루머에 속지 않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아픔과 고통을 통과한 부활의 소식을 자신의 고통과 부활로 삼아 전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자신의 안녕과 안위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만드신 창조세계의 동료 인간들이 찢어지고 아파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 온전한 회복을 간절히 기도하며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온 세상을 회복하고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을 믿는 길입니다. 이것이 2천 년 전에 찢긴 몸과 피를 먹고 나누며, 오늘도 여전히 찢겨서 애끊는 고통의 목소리에 담긴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 길입니다. 그 아픔과 슬픔의 빵을 눈물의 포도주에 적셔 우리 목에 넘기고 삼켜서, 그 찢어지고 부서진 몸을 우리 안에서, 우리 교회 안에서 온전하고 거룩한 몸으로 하나가 되도록 하는 길입니다.

이 길을 믿고 따를 때 우리는 생명을 살리고 지킬 수 있습니다. 이 길이 영원한 생명의 양식입니다.

경계를 가르며 살기 – 실베스터, 위클리프, 크로우더 축일

Wednesday, December 31st, 2014

실베스터, 존 위클리프, 사무엘 크로우더 축일
1요한 2:18~21 / 시편 96:1, 11~13 / 요한 1:1~18
2014년 12월 31일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아침 성찬례

주낙현 요셉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나이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에 우리는 다시 여느 아침처럼 이 아침에도 성찬례로 모였습니다. 마지막 날은 늘 새로운 날을 기대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희망과 기쁨을 기대하기 위해서 묵은 한 해의 절망과 슬픔을 되새기며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려니 여러모로 고통스럽습니다. 저 자신도 여러 가지 희망을 품고 기쁘게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로 돌아온 해였습니다. 그러나 제 앞에 펼쳐진 현실은 밖에서 들었던 것보다 더 나빴습니다. 우선은 주어진 일에 몸을 맡겨서 적응하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사순절을 참 잘 보냈습니다. 매일 아침 성찬례 탓인지 몸과 마음이 상쾌했고 연일 계속되는 사순절 대심방의 피곤함에도 교우들과 나누는 이야기, 함께하는 기도를 통해서 오히려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는 했습니다.

저 스스로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사순절을 보냈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스스로 사목의 감각을 찾고 있다고 믿던 참이었습니다. 그렇게 사순절 막바지에 다다르며 부활을 기다리던 성주간 화요일, 4월 16일이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세월호 안에서 삼 백 여 꽃다운 생명이 스러지는 광경을 목도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기쁨이 아닌 절망과 눈물로 부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도대체 부활은 무슨 의미일까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세상의 종교들이 주는 허무맹랑한 약속과 환상의 교리에 대해서 새로운 물음을 던져야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사회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희망하고 믿고 따르는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교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인간의 구원은 무엇일까요? 그동안 우리가 외우며 머리에 박아 두었던 신앙과 교리들이 이 현실 속에서 정말로 의미가 있을까요? 게다가, 세월호는 세월이 가면 잊히니까, 우리 신앙의 의문과 흔들림도 그저 세월에 묻어 보내버리고, 다시 예전의 모습대로 돌아가야 할까요?

우리가 사는 시간과 우리가 겪는 사건은 우리 삶과 생각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주의 시간에서 보면 점에 불과한 시간을 우리 멋대로 12월 31일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정하고, 내일을 1월 1일 한 해의 시작이라고 정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천체의 계산법을 따른 것도 아니요, 단순히 편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1년 단위로나마 지나온 시간을 되새겨 역사를 기억하자는 뜻입니다. 반복되는 시간과 날짜로 세월에 묻힐 어느 사건을 잊지 말자는 말입니다. 또 다른 의미에서, 반복되는 시간과 날짜를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이루었는지 비교하고 살피는 계기를 갖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맞을 내일 1월 1일은 작년 1월 1일과 어떤 점에서 달라졌을까요? 우리가 맞을 내년 4월 16일은 어떤 점에서 작년과 달라졌을까요? 우리의 기대와 우리의 희망이 사실 그 변화와 차이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전과 이후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깊이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의 시간을 부활 이전과 이후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보다 먼저 하느님의 창조 사건이 어둠이라는 이전의 시간에서 빛이라는 이후의 시간으로 우리를 초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부활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빛 속에서 살고 있는가? 이것이 여전히 우리 신앙의 가장 핵심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안고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세 분의 성인을 다시 돌아봅니다. 시간과 공간을 전혀 달리해서 살며 운명마저 전혀 달랐던 분들입니다. 오늘 12월 31일은 4세기의 로마 주교 실베스터 성인의 축일입니다. 오늘은 14세기 영국의 초기 종교개혁자 존 위클리프 사제의 축일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19세기 세계 성공회 최초의 아프리카 흑인 주교였던 사무엘 아자이 크로우더 주교의 축일입니다.

실베스터 주교는 4세기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이 그리스도교를 인정하고 그동안 박해받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유의 칙령을 내린 이후에 공식적으로 교회를 이끌었던 첫 지도자였습니다. 박해와 순교로 점철되었던 그리스도교는 이제 자유를 얻었고, 황제마저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갑작스럽게 황제의 보호라는 권력까지 얻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교회를 이끌던 실베스터 주교는 교회라는 거룩한 권력이 로마 제국이라는 세속의 권력보다 더 크고 위대하다는 것을 분명히 하며 로마 교회를 다스렸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권력보다 더 크신 힘이고,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기준에서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권력의 자리에 앉으면 눈과 머리가 변하기 쉽습니다. 이후 서방 교회는 권력 탐하기에 앞장섰습니다. 주교는 순교하는 자리에서 군림하는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성직자는 섬기고 보살피는 자리를 떠나 지옥의 심판을 들먹이며 사람을 위협하는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자유와 평화의 사랑의 삶이 아니라, 두려움을 통한 맹신과 광신의 포로가 되었고, 종교 지도자들이 던져주는 축복이나 애걸하며 살았습니다.

14세기에 영국 교회에 나타난 존 위클리프는 이렇게 변해버린 교회를 통탄하며 일어섰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백성이어야 할 신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무지한 것을 보고 애석해 했습니다. 이러한 무지가 권력을 잡은 고위 성직자들의 계략인 것을 알았습니다. 위클리프는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할 일은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얻은 지식을 이용하여 언어를 모르는 사람의 입과 귀가 되는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실생활에서는 이미 죽은 언어가 된 라틴어 성경을 당시 사람들이 쓰던 평범한 자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번역해야 합니다. 하느님에 관한 지혜, 세상에 관한 지식을 번역하여 사람들이 편하게 읽고 이해하며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공정한 장을 마련해야 합니다. 위클리프는 성경 번역과 지식의 나눔이야말로 권력의 남용과 오용을 넘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위클리프 성경’은 영국 교회가 얻은 놀라운 신앙 유산입니다.

바른 신앙의 길은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는 “죄 없이 살해당한 어린이들”의 축일 미사를 마치고 이틀 후 오늘 과로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를 싫어했던 교회와 세상 권력은 그를 이단으로 몰았습니다. 그의 추종자들이 늘어나자 권력은 30년이 넘은 그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꺼내고 화형하여 그 재를 길거리와 강에 흩뿌리는 일을 자행했습니다. 그가 번역한 성경과 그 유산은 죽은 지 30년인 넘어서도 여전히 권력에 위협이 되었던 탓입니다.

시간과 공간은 19세기와 아프리카 서부로 옮겨갑니다. 탈출한 흑인 노예 출신 사무엘 아자이 크로우더가 아프리카인으로서 세계 성공회 역사상 처음으로 주교가 되었습니다. 1864년의 일입니다. 백인 선교사들은 아프리카 종족 언어를 몰랐고 별로 배울 생각도 없었습니다. 풍토병에 선교사들이 쓰러지면서야 토착민을 선교사로 세우고 교회의 지도자로 세워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사무엘 크로우더 주교가 나왔습니다. 그는 최초의 아프리카인 주교로서 그의 사목에 열정적으로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백인 선교사들의 우월주의는 크로우더 주교를 늘 무시하고 하대했습니다. 그는 묵묵히 참아냈고 서 아프리카 지역에서 놀랄만한 교회의 성장을 일구어냈습니다. 교회와 세상을 주름잡던 백인 제국주의 시대가 끝나고 식민지에서 오히려 복음이 새롭게 피어났습니다. 그 복음이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서 새로운 힘으로 사람들과 함께 일어설지 크로우더 주교는 보여주었습니다. 어쩌면 4세기 실베스터 교황 이후 1500년 만에, 크로우더 주교는 주교의 진정한 역할을 다시 살려냈는지도 모릅니다. 권력의 위세에 따른 작위적인 존경은 거들떠보지 않고, 온갖 무시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을 교회의 역할로 것 다시 살려냈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짜에 지상의 생을 마감했던 이들의 삶을 돌아보며 오늘 성서를 읽은 뜻이 새롭습니다. 한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 해를 여는 시점에서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성서는 늘 전환의 시점에서 볼 때라야 더욱 또렷합니다. 요한 1서의 저자는 말합니다. ‘이 마지막 때에 우리는 성령을 받아서 참된 지식을 지닌 사람’입니다. 참된 지식을 지닌 이들은 거짓에 기댄 권력과 그 위압을 비판하고 몰아내는 일을 자임해야 해야 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이런 일을 하지 않는 이들은 참된 지식을 지녔다고 할 수 없고, 세상의 마지막을 살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참된 지식을 지닌 신앙인의 임무는 오늘 시편 기자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다. “새 노래로 하느님을 노래하여라. 그는 정의로 세상을 재판하시며 진실로써 만백성을 다스리신다.” 여전히 진실이 감춰지고 정의가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세상을 내버려 두는 한 우리가 부를 새 노래는 없습니다. 찬송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제 요한 복음사가는 우주를 넘나드는 아름다운 시를 읊습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한 처음에 빛이 있었습니다. ‘말씀’과 ‘빛’의 뜻은 여럿이지만, 굳이 ‘말씀’과 ‘빛’이라 부른 이유를 되새겨야 합니다. ‘말씀’은 대화와 소통입니다. ‘말씀’이 ‘살’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신 사건은 이 우주적인 대화와 소통의 가장 깊고 완벽한 표현입니다. 대화와 소통은 마음을 닫아걸고 제압하려는 권력을 뚫어 여는 자유와 희망입니다. ‘빛’은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는 활동입니다. ‘빛’은 그늘에서 허덕이는 이들에게 생명을 줍니다. 이 ‘말씀’과 ‘빛’이 그리스도 신앙과 실천의 핵심입니다.

한 해 동안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 걸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있어 고단한 한 해를 버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이 시기를 걸어서 저는 복되었습니다. 이 고마움은 우리 모두 옆에 앉으신 분들과도 서로 나눠야 할 인사입니다. 이제 우리는 절망의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합니다. 우리는 빛과 어둠 사이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공간과 시간을 가르는 경계에 서 있습니다. 이전과 이후가 분명한 신앙의 삶을 우리는 다시 되새깁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내일은 참된 희망과 기쁨의 시간이길 빕니다. 묵은해의 절망과 슬픔을 딛고서, 그러나 잊지 않고 깊이 기억하면서, 새해에는 이 희망과 기쁨을 함께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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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Blake, Elohim Creating Adam, 1795)

순례자의 신앙 – 고통과 연민과 자유가 낳은 희망

Saturday, October 18th, 2014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걷는 생명과 평화의 도보 순례’
장정 마감 성찬례

창세 18:1~8 / 시편 126 / 루가 10:1~9

2014년 10월 18일 오후 5시,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주낙현 요셉 신부

입당 전, 환영의 예식

하느님의 길을 걷는 순례자들이여, 이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우리 곁을 그냥 지나쳐 가지 마십시오. 우리가 물을 길어 올 터이니, 발을 씻으시고, 이 집에서 좀 쉬십시오. 우리가 떡을 가져올 터이니 잡수시고 허기를 채우십시오. 우리가 잔을 가져올 터이니 마시고 피곤을 푸십시오. 우리에게 와서 이곳을 참으로 복되게 하셨으니, 이제 우리와 함께 길을 걸읍시다.

본기도

자비하신 하느님,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자로 불러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고, 기쁨과 희망을 세상에 펼치며 걷게 하셨나이다. 비옵나니, 순례자인 교회와 우리가 이 세상의 아픔을 늘 기억하며, 사랑과 치유의 능력으로 이 세상을 바꾸는 하느님 나라의 일꾼이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영원히 사시며 다스리시는 한 하느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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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 나의 바위 나의 구원자이신 하느님, 내 입술의 말과 내 머리의 생각이 주님 마음에 들게 하소서. 아멘.

천 육 백여 년 전 일기 한 조각을 읽어드립니다.

“우리는 성서가 일러준 대로, 그 높은 산에 걸어 올랐습니다. 우리의 오랜 발걸음 끝에, 마침내 아주 거대하고 끝없는 골짜기가 환하게 열렸습니다. 아주 넓고 지극히도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시나이 산 골짜기, 하느님의 산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모든 탐욕과 욕정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다른 산들이 새롭게 열렸습니다.”

이는 서기 381년 시나이 산과 예루살렘 성지를 걸어서 순례했던 스페인 여성, 에게리아의 일기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일기의 여러 부분이 유실된 탓에, 이 부분이 오랜 세월을 살아남아 ‘에게리아 순례기’의 첫머리를 장식했습니다.

모든 탐욕과 욕정이 묻힌 곳, 그리하여 다른 산들이 새롭게 열리는 곳. 에게리아는 그곳에 자신의 발로 올랐고,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 거룩한 산을 목격했습니다. 그것은 순례의 시작이었지만, 우리 삶의 순례가 바라보아야 할 곳을 미리 보여주는 광경이기도 했습니다.

순례자는 땅바닥에 박힌 온갖 고통을 발바닥으로 느끼며 걷는 사람입니다. 그 걸음은 때로 상처가 되어 우리 발걸음을 느리게 하고, 땅바닥의 고통과 하나 되는 찰나 아픔이 몸을 찌르기도 합니다.

순례자는 자신의 눈으로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을 눈 안에 담아서 걷는 사람입니다. 그 광경이 때로 찢겨나가는 자연의 상처인 탓에, 깊은 연민의 눈물을 머금기도 합니다.

순례자는 맨몸으로 세상에 부는 온갖 자유의 바람을 느끼고 숨 쉬고 냄새 맡으며 걷는 사람입니다. 그 자유가 때로 숨 막히는 우리 사회의 역사와 현실로 억눌리고 비틀릴 때, 그 몸은 피곤함에 지친 수많은 사람의 힘겨움을 자신의 것으로 느낍니다.

이 고통과 아름다움과 자유를 온몸과 온 감각으로 느끼면서 걷는 일이 바로 순례입니다. 이 순례 자체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의 정점입니다. 걷지 않고서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겪는 고통 한가운데서 아름다움과 자유를 발견하지 않는 한 우리는 신앙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참으로 복되게도 이 기도와 신앙의 증인들과 함께 서 있습니다.

이 기도와 신앙의 순례자들은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넉넉한 친구들을 발견했습니다. 쉬어가라며 마음의 공간과 물리적 공간을 내어주고, 정성 어린 음식과 대화를 마련해주는 환대의 벗들을 발견했습니다. 땡볕을 걷던 피곤한 나그네에게 달려나가 맞으며 절하면서 쉬어가라고, 피곤을 풀고 가라고, 함께 음식을 나누고 가라며 환대의 손길을 펼치는 벗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참으로 복되게도 이 환대의 벗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순례자들은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하여 걸었습니다. 지친 나그네들을 맞이했던 환대의 벗들 역시 누군가를 기억하며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천육 백 년 전 연약한 여인 에게리아는 모세를 기억하기 위해 시나이 산에 올랐고, 거기서 바라본 새로운 산의 풍경을 안고 예수에 대한 기억을 찾아 예루살렘을 향했습니다.

성주간 때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에게리아는 목격했습니다. 예수의 삶과 고난과 죽음이 예루살렘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를 발견했습니다.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며 걸었던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세상의 온갖 순례자들은 예수의 고난을 기억했습니다. 십자 나무를 바라보며 세상의 폭력과 무관심과 탐욕이 만든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습니다. 이 기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억은 죽음을 넘어선 기억, 바로 부활의 기억이었습니다.

부활은 진실을 덮는 무책임과 회피와 기만에 도전하는 기억입니다. 부활은 한 인간의 생명이 하느님께서 품으신 깊은 연민의 눈앞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억입니다. 부활은 한 인간의 죽음이 헛되어서는 안 되며, 그 죽음이 오히려 세상이 덮고 있는 거짓을 파헤치는 힘이 되리라는 기억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진실을 향한 간절함이요, 생명을 향한 깊은 연민이요, 평화를 향한 드높은 희망입니다.

이 진실과 생명과 평화를 향하여 순례자들은 옛날에도 걸었고 지금도 걷습니다. 우리가 이 기억의 길을 걷는 한, 진실은 묻힐 수 없습니다. 헛된 죽음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모든 슬픔의 죽음이 이제는 하느님 품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새 생명은 이제 우리를 일으켜 세워 세상을 향해 걷게 합니다. 이 세상의 온갖 무책임과 거짓과 불신, 그리고 권력의 탐욕과 사사로운 욕심을 거둬내라고 초대합니다. 그 길에 동참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 각자가 새로운 순례자가 되라고 손을 내밉니다. 우리의 벗들이 지난 20일 동안 걸었던 고통스러운 발, 촉촉한 눈가, 그리고 자유의 바람에 탄 얼굴로 건네는 증언이요 초대입니다.

또한, 우리 각자가 순례하는 나그네를 환대하는 따듯한 벗들이 되라고 합니다. 이미 우리의 벗들이 지난 20일 동안 순례자들을 초대하여 목을 축이게 하고, 배를 채워주며, 따뜻한 대화를 나누던 그 환한 얼굴로 건네는 증언이요 초대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이제 한국 사회와 교회의 역사가 걸어야 할 순례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이전에 우리 사회와 교회는 타인의 삶과 고통에 무관심하고, 생명을 향한 연민과 연대를 철없는 일이라 비웃었습니다. 타인의 희생을 딛고도 자수성가하여 얻었다고 믿는 지위와 위치에 기대어 자신의 권한과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했습니다. 하루 삶이 안타까워 종교에 매달리는 보통 사람의 순진한 종교심을 기복신앙으로 이끌어 눈을 멀게 했고, 경쟁과 속도에 사람을 몰아넣었습니다. 그동안 누구나 할 것 없이 불법과 편법을 삶의 지혜로 예찬하고 살았습니다.

이런 태도가 우리 몸에 쉰내처럼 배어있었지만, 우리만 그 악취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때 교회와 사회의 가르침은 복음의 기쁜 소식이 아니라, 나쁘고 처절하다 못해 악한 소식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이 도저한 무관심과 무책임, 권력의 오용과 남용을 씻어내야 합니다. 우리의 순례자 벗들은 이미 부르튼 발로, 눈물로, 새까만 바람의 얼굴로 552킬로미터를 걸으며 이것들을 씻어냈습니다. 돈주머니 없이, 가난하게 파송되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들에게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슬픈 죽음의 기억과 아픈 연민과 진실을 향한 열정으로 걸어온 순례자들이 있기에 지금 이곳은 참으로 복된 곳입니다. 그러니 이제 이곳에서 다른 가치, 하느님의 가치, 하느님의 산과 땅이 새롭게 열려야 합니다. 그 새까맣게 탄 얼굴들이 천 육 백여 년 전 연약한 여인 에게리아가 예루살렘에서 목격했던 환한 얼굴이었습니다. 에게리아는 예루살렘에서 보았습니다. 들었습니다. “보라 십자 나무, 저기 세상 구원이 달려있네.” 세상의 비극과 고통과 슬픔에 세상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이 아픈 상실과 기억을 어떻게 성찰하고 행동하느냐에 우리의 구원이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가 일러준 대로, 그 높은 산에 걸어 올랐습니다. 우리의 오랜 발걸음 끝에, 마침내 아주 거대하고 끝없는 골짜기가 환하게 열렸습니다. 아주 넓고 지극히도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하느님의 산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모든 탐욕과 욕정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순례자들과 함께 바로 이곳에서 다른 산들이 새롭게 열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