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야 열리는 행복

January 29th,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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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야 열리는 행복 (마태 5:1-12)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셔서 널리 드러나셨으니, 그 제자들과 신앙인들도 그늘진 세상에 빛을 비추며 삽니다. 신앙인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오히려 종교와 신앙의 이름으로 사회 곳곳에 만든 음습한 그늘이 널렸습니다. 거기에선 거짓이 곰팡이처럼 번집니다. 하느님께서 모세를 불러 십계명과 율법을 주시며 그 가르침과 길을 따르라 하셨으나, 율법은 금세 스스로 ‘선택받은 자’라고 으스대는 자들이 다른 사람을 속박하는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새 역사를 여시며 새 가르침을 주십니다. 사람을 옭아매는 과거 율법을 뒤집어, 사람에게 참된 행복을 선사하는 은총의 복음입니다.

마태오복음서는 새롭게 열린 은총의 법입니다. 복음서를 가로지르는 예수님의 가르침 다섯 묶음은 모세오경을 교체하고 뒤집습니다. 그 첫 단락 참된 행복 선언은 십계명을 넘어서며 우리 시선과 행동을 새로 열어줍니다. 십계명은 여전히 하느님과 우리 인간이 나누어야 할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에 펼쳐야 할 관계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명령과 조건이 가득한 계명은 압박과 통제의 수단이 되기 쉽습니다. 이에 반해, 복음은 우리의 모질고 거친 삶 자체에서 깃든 복락의 씨앗을 발견하시며 축복합니다.

모세가 험하고 외로운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았다면, 예수님은 여럿이 함께 오른 산 위에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락을 선언합니다. 높은 산의 지위를 독점하는 권력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올라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잡고 가르칠 때, 참된 권위가 섭니다. 세상에서 작고 비천하다고 취급받는 이들을 ‘산 위’로 끌어올려 ‘곁에’ 앉히실 때, 예수님께서 여시는 하느님 나라의 질서가 작동합니다. 세상 풍파로 가난하고 슬퍼하는 사람, 온유함을 갖추고 정의를 목말라 하는 사람, 깨끗한 마음으로 자비와 평화를 위해 사는 사람, 박해를 받는 사람이 복을 받고 그 삶이 칭송받는 질서입니다.

사도 바울로 성인은 예수님께서 뒤집은 질서를 깊이 마음에 새깁니다. ‘이 세상 안에서 지혜 있고 강하다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이 보기에 어리석고 약한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1고린 1:26-28). 바울로 성인은 말끝마다 ‘이 세상’이라는 조건을 붙입니다. ‘이 세상’에 대항하여 ‘하느님 나라’에 깃든 가치를 세우라는 요청입니다. ‘이 세상’의 지식과 지혜와 지위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지식과 지혜와 지위를 찾으라는 말입니다. 어거스틴 성인이 말한 대로, “이 세상의 사사로운 사랑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넓고 거룩한 사랑”을 분별하라는 당부입니다.

‘이 세상 속에서’ 경쟁하여 얻어내고 오른 성공과 성취는 예수님이 선포하는 은총과 행복에서 거리가 멉니다. 이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해방되는 길을 시작해야 합니다. 연약한 이들을 함께 초대하고 끌어올려 곁에 앉혀 누리는 삶이 행복의 길입니다. 세상의 시각을 뒤집어서 돌이켜야 참 행복의 길이 열립니다. 그 길을 예수님께서 비추시니, 함께 올라 누리며 빛의 길을 걸어갑시다.

신앙 – 하느님 나라의 이어달리기

January 22nd,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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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 하느님 나라의 이어달리기 (마태 4:12-23)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에 가셨으며, 어둠 속에 앉은 백성들과 죽음의 그늘진 땅에 빛을 비추었습니다. 역사 안으로 파고드는 하늘나라의 빛을 누리려면, 우리 마음과 행동을 돌이키는 회개가 따라야 합니다. 새로운 길을 따르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자신의 고정관념과 기득권을 버리는 결단이 뒤따라야 합니다. 세상 안에서 쓰러진 이들과 아픈 이들, 연약한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일에 동참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이처럼 요약하면,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그리고 제자와 그 뒤를 잇는 우리 신앙인의 삶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세례자 요한이 ‘잡히시자’ 예수님께서 전면에 등장하십니다. 요한과 자신의 삶을 연결하겠다는 의지입니다. 그 뒤를 이은 제자들의 운명과 우리 신앙인을 연결하는 고리는 ‘잡히다’는 낱말입니다. 성서 원어를 좀 더 정확히 드러내면, ‘잡히다’는 말은 ‘넘겨지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헤로데라는 정치권력에 ‘넘겨져서’ 결국 목숨을 잃습니다. 뒤따른 예수님도 종교와 정치의 합작 권력에 ‘넘겨져서’ 결국 죽음을 당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따랐던 제자들도 박해자의 손에 ‘넘겨져서’ 순교합니다. 이 신앙의 연결고리 안에서 우리 신앙인의 운명은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성찬기도 안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에 ‘잡히시다-넘겨지다’는 단어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빵과 잔을 들고 ‘이것은 너희를 위해 주는 몸과 피이다’에서 ‘주다’는 말이 같은 단어입니다. 성찬례 때마다 우리 신앙인은 요한과 예수, 그리고 제자들의 삶을 넘겨받습니다. 그 삶은 때로 억울한 모함이고 고통스러운 박해이고, 죽음과 순교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안에 하느님의 선물이 있습니다. 고정관념과 기득권의 고집이 아닌 포기와 양보 안에서 새 역사가 열립니다. 우리 신앙인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실 때마다 ‘넘겨받는’ 신앙의 유산입니다. 그 안에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이끄시는 은총이 뒤따릅니다.

신앙인은 역사 안에 파고들어 펼쳐진 하느님 나라의 일꾼입니다. 요한과 예수님과 제자들의 삶이 ‘가르치고 선포하고 고쳐주는 사건’으로 이어지는 일을 목격합니다. 신앙은 잘못된 정보와 편견을 벗어나 늘 새롭게 배우며 고쳐나가는 삶입니다. 거짓과 어둠에 맞서 진실을 선포하고 밝히려는 끈질긴 노력입니다. 마침내 온갖 권력 앞에서 무시당하고 빼앗기고 상처받은 이들을 싸매 고치고 일으켜 세우는 일입니다. 신앙인은 이 일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나누어 훈련하고, 세상 속에서 실천합니다. 이 일이 누그러지면, 교회는 하느님의 유산이 없는 여느 친목 단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요한과 예수님, 그리과 제자들을 이어 우리는 역사 안에 들어오시는 하느님 나라의 바통을 이어받아 달립니다. 거들먹거리는 온갖 권력에 저항하며 실패하고 상처 입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어주고 넘겨주는’ 역사와 신앙의 이어달리기로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조금씩 펼쳐갑니다. 이렇게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 생각 – 캔터베리 대주교와 요크 대주교의 성명서

January 21st, 2017

올해 2017년은 1517년 서방교회의 개혁과 창조적인 분열의 사건인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이다. 잉글랜드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와 요크 대주교는 이에 관해 공동 성명서를 내고, 종교개혁의 뜻을 되새겨 복음과 섬김의 사명으로 분열과 미움의 과거를 넘어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열어나가자고 촉구한다. 아래에 성명서 전문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싣고 원문 출처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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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 생각 – 캔터베리 대주교와 요크 대주교의 성명서

올해 세계의 교회는 유럽에서 시작된 종교개혁 500주년의 중대한 의미를 되새길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교회의 사치와 도락에 저항하여 마르틴 루터가 95개 항의 비판문을 내걸면서 시작됐습니다. 잉글랜드 성공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 기념 활동에 참여할 것이며, 유럽 대륙의 개신교 동반자 교회들과 행사를 함께 나눌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유럽 그리스도교인 안에서 일어난 쇄신이자 분열의 과정이었습니다. 올해 종교개혁 [500] 주년을 맞이하여, 많은 그리스도인은 종교개혁의 공헌을 이어받은 것을 커다란 축복으로 여기며 감사를 표할 것입니다. 그 많은 공헌 가운데는 은총의 복음을 분명하게 선포한 일과 자국어 성서가 마련된 사건, 그리고 신자들을 불러 세상과 교회에서 하느님을 섬기게 하신 소명이 포함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또한 교회 일치의 훼손이 지난 5세기 동안 계속되었던 것도 기억할 것입니다. [교회의 분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 가운데 일치하라 하신 분명한 명령에 반한 것이었습니다. 이 격동의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싸웠으며, 많은 사람이 같은 주님을 알고 있다는 사람들의 손에 박해받으며 고통당했고, 심지어 죽이기도 했습니다. 그 뒤로 수 세기 동안 불신과 경쟁의 유산이 그리스도교의 세계 확장과 더불어 따라다녔습니다. 이 모든 일은 우리가 깊이 성찰해야 할 과제를 남기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을 기억하는 일은 종교개혁자들이 모든 사람의 삶의 중심에 넣어주려 했던 내용, 곧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순전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올해는 그리스도 한 분만을 향한 우리의 신앙을 쇄신하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확신으로 우리는 좀 더 어려운 질문, 다시 말해 우리의 삶과 교회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을 나누고 축하하는 길에 들어서자는 질문을 던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을 기억하는 일은 또한 지속적인 분열들에 관해서 우리가 관여한 부분을 회개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이러한 회개는 다른 교회들에게 손을 내미는 행동이어야 하며, 그들과 나누는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500주년은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기도 주간을 시작으로, 이러한 일의 기회를 더 많이 마련해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종교개혁 기념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에 담긴 진리 안에서 쇄신하고 일치할 것을, 우리의 분열들에 회개할 것을, 그리고 그분 안에서 함께 하기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여 세상을 향한 축복이 되기를 촉구합니다.

(번역: 주낙현 신부)

영어 원문 링크 (캔터베리 대주교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