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16세와 요한24세, 그리고 Pontiff

“나를 따르라”로 시작되는 교황 장례 미사 강론이 예견했던 것일까? 밤새도록 지켜 본 장례 미사에서 들렸던 요세프 라칭어 추기경의 거듭되는 “나를 따르라”는 주문은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당부에서, 곧장 선종한 교황의 유지를 받들 것을 요구하는 수사로 나아가서, 이내 26년 여의 재위 기간 동안 “제 2의 교황”으로 불리던 라칭어 추기경 자신을 따르라는 요구로 자꾸 들리기만 했다. 세계 언론이 제 3세계 출신 교황 선출 가능성을 점치며 예의 선정적인 보도로 흥분을 조성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엔 그 강론에서 거듭되던 “Follow me”와 교황으로 선출될 라칭어 추기경의 모습이 겹쳐 그려지기만 했다. 결국 오늘 라칭어 추기경은 교황 “베네딕도 16세”로 세계 앞에 나타났다.

로마 가톨릭 신자들에게 축하할 일인데도 자꾸 딴 생각이 든다.

로마 가톨릭이 아닌 다른 그리스도교 전통의 신앙인으로서 세계 천주교에 기대하던 내 상상의 얼굴은 바티칸 제 2차 공의회의 “요한 23세”를 이을 “요한 24세”였다. 현대 세계 안에서 교회의 쇄신과, 특별히 그리스도교의 일치에 대한 그의 비전이 80년대 이후로 계속 쇠퇴한다는 우려가 로마 가톨릭 교회 안에서마저 제기되던 참이었다. 게다가 교회 일치 대화에서 역시 갈등의 속내가 불거져 나오고 있었기에, 이른바 바티칸 제 2차 공의회 정신의 회복과 진전에 대한 희망이 여러 곳에서 간절했던 것이다.

교황 베네딕도 16세가 되기 전, 라칭어 추기경에 대한 기억은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의 소환과 징계를 통해 선명하다. 결국 보프 신부는 성직 자체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선임 교황이 보여준 해방신학에 대한 반대의 신학적 배경이었다. 이와 더불어 여성 사제 문제, 성직 독신 문제, 낙태와 피임(AIDS/HIV 방지를 위한 콘돔 사용과 관련하여), 그리고 타 종교 특별히 이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대화의 여지를 굳건히 닫아둔 신앙교리성성 장관으로서 완고한 보수주의자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이런 태도는 그리스도교 내의 교회 일치 대화 속에서 보여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배타적인 수위성 주장으로 반복되곤 했다. 성공회와의 대화, 루터교와의 대화 속에서 나온 값진 일치 선언이, 곧이어 나온 몇몇 교황 문헌으로 그 의미가 퇴색되기 일쑤였다. 그 뒤에는 늘 라칭어 추기경이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 한 달 간 세계 언론의 톱기사가 된 “교황” 관련 사안은 현대에 와서 교황을 의미하는 낱말로 축소되어버린 “폰티프”(pontiff)라는 말을 되새기게 했다. 일반적으로 주교 혹은 교황(교황의 공식 명칭은 여전히 ‘로마의 주교’이므로)을 통칭하던 ‘폰티프’의 의미는 ‘가교’(架橋) 곧 ‘다리를 놓는 사람’을 뜻한다. 주교란 모름지기 하느님과 세상, 교회와 교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는 직책인 것이다. 또 주교가 교회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었다면, 교회란 늘 하느님과 모든 백성의 다리를 놓는 선교 사명을 띈 것이란 설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역사 속에서 어느 교회 전통을 막론하고 주교(혹은 감독)는, 교황은, 그리고 교회는 세상 속에서 이런 ‘가교’의 역할을 해 왔는가? 오히려 다리놓기의 기본 공사인 대화를 금하고, 이미 진전되었던 공사마저도 복음 혹은 교회의 순수성과 그 보호라는 이름 아래서 철거하는 일을 자임하지는 않았던가?

교황 요한 23세는 1959년 한 교서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필수적인 내용에서 일치를 보도록 하고, 의심하는 것에 자유를 주고, 그러나 모든 것을 사랑으로 대하자.” 이것은 바티칸 2차 공의회 문헌 [기쁨과 희망](Gaudium et Spes)에 그대로 인용되었다(GS,no.92). “모든 사람의 대화”를 격려하던 교황 요한 23세의 이 넓은 헤아림은 이 분열과 반목, 배타의 시대에 ‘가교’가 될 요한 24세를 기대하게 하지 않는가?

새로운 교황이 종래의 ‘라칭어 추기경’이라는 이름을 벗고 ‘베네딕도”(축복)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듯이, 과거와는 달리 세계와 교회들, 그리고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에 새로운 축복이길 바란다.

오늘 뉴스를 접한 후에 든 몇 가지 상념이었다.

2 Responses to “베네딕도16세와 요한24세, 그리고 Pontiff”

  1. 루시안 Says:

    이번에 베네딕투스 16세의 성성/착좌식에서 로마 천주교회의 위계에 속한 각급을 대표하는 12명이 (여기에는 한국인 평시도 가족을 포함하여) 새로 뽑힌 로마 교종께 순명의 예를 올렸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런 날을 꿈꾸어 봅니다.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인 로마 교종님의 성성/착좌식에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님, 캔터베리 대주교님, 루터란과 세계 개혁교회 연맹의 대표 등 보편교회의 여러 지도자분들이 초대받아서 함께 교회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감격스런 광경을 보게 될 날이 있을까요?

    그날이 온다면, 보편 교회의 지체들이 비록 기구적으로 하나로 일치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하나의 거룩한 보편교회를 고백하는 이 미력한 개신교인도 사도교좌의 목자에게 보편 교회의 수위권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다. 단 머리의 수위권이 아닌 심장의 수위권(한스 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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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r. joo Says:

    루시안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미사와 베네딕도 16세의 착좌식에는 세계성공회를 대표해서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가 참석했습니다. 이는 로마 교회와 영국 교회의 분열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울러 정교회 진영에서는 러시아 정교회를 제외한 많은 정교회 주교들과 대표자들이 장례미사와 착좌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심장의 수위권”에 관한 표현이 흥미롭군요. 한스 큉 신부와 현 교황은 바티칸 2차 공의회의 신학적 성찰을 마련했던 중요한 신학자들이었는데 너무 다른 길을 걷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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