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는 쓰다 말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들”의 운명을 바꿔버린 시인 선생님이 있었다. “우리들”은 그 시인의 말처럼 우물 밑으로 손을 뻗어 가난한 우물끼리 연대하며 살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다시 그 시인처럼 “우리들” 가운데 여럿은 삶의 그늘들과 씨름하다 쓰러지거나, 몸을 상하거나, 사람들의 황홀한 기대와 불편해 하며 살았다.

모두들 시인이고자 했다. 시인 선생님이 알려준 시인들과 거기에 덧붙여 읽게 된 다른 시인들은 우리를 겉자라게 했는지 모른다. 왜 그때 읽은 황지우, 김정환, 최승자 등이 더 깊이 남아 있을까? 한참 뒤에도 왜 나는 “K를 위하여”의 최승자처럼 철없이 설익은 도끼날을 허공에 찍어대는 것일까?

한편 여럿 시편들 말고, 시집으로 마지막 읽은 걸로 기억하는 건 김중식의 [황금빛 모서리]였던 것 같다. 그 시집들은 바다 건너에 데려오지 않았다! 그동안 삶이 푸석해져버린 것이다.

느지막이 결혼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려는게 되지는 않고, 자꾸 딴 생각이 든다. 자취집에 모여 점심 먹고 둘러 누워 돌려가며 시를 읽었던 그 친구들을 회상하여 한마디 축하 인사해주려는 참이었던데, 자꾸 생각이 이그러진다. 못쓰고 만다.

회상은 지금의 처지때문에 오히려 쓴 맛을 남긴다. 그래서 더욱 짠하게 그리운 친구들이다.

결혼 축하해, **야! 신부에게도!
너를 한번도 내 기도에서 잊은 적이 없어!

다른 녀석들도 다들 모이겠구나.
나도 곧 볼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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