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에 묻는 얼굴들

언제든 조용히 나와 앉아, 펼쳐지는 도시와 숲과 물과 산을, 그리고 하늘과 태양과 달과 별을 볼 수 있었던 집을 비워야 하는 처지라서 마음이 좀 그렇다. 궁색한 삶이었지만 이런 풍경 탓에 기쁘게 지난 몇년을 살았다. 그럼 됐지 뭐, 하다가 새로 좁혀 들어갈 집을 돌아보고 오니 한숨만 나온다.

아이들에게서 옮아온 감기에 며칠간 몸과 정신이 몽롱한 처지에, RSS 구독기에 떠오른 어떤 글과 화면. 밤하늘에 은하수가 떠오르는 장면을 담아 보여 주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순간, 그림은 떠오르지 않고, 김환기의 말과 그 제목이 떠올랐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던가?

나는 외롭지 않다. 나는 별들과 함께 있기에…

별들을 빌어 외롭지 않노라고 말하는 것처럼 외로운 표현은 없겠다, 싶었다. 밤에 홀로 나앉아 검은 하늘과 별을 친구 삼아 본 이들은 안다… 그런데 이도 잠시, 별 볼 일 없는 구석 집으로 가면 어찌 될까 싶은 생각이 마음을 흩뜨린다.

화면을 보며, 다시 김환기의 그림 제목을 생각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나같은 사람도 그럭저럭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 인연이 스친 듯하든, 애처롭고 안타깝게 깊은 것들이든, 많은 얼굴들이 회전하는 별들처럼 움직이며 멀어져 갔고, 떠오르는 은하수의 아득함에 그 얼굴들을 묻기도 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희미한 얼굴에서 선연한 얼굴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만나고 헤어진다. 그래, 우리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아마도 다시 못 만나기 십상이리라. 새로운 만남들이 그 기억을 상쇄할테니, 그리 상심하지 않아도 되리라, 하고 스스로 위로한다. 그 은하수에 묻은 얼굴들에 말없이 깊은 축복의 인사를 건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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