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순종, 참여 – 성 베네딕트 축일
성 베네딕트 축일1
주낙현 신부 (서울 주교좌 성당 사제)
성 베네딕트(St. Benedict of Nursia, c.480~c.540)는 서방 교회 수도회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6세기에 다양한 수도회 전통을 집대성하여 베네딕트 규칙서와 수도회를 만들었고, 이후 많은 수도회의 모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복되다’는 뜻의 이름을 지닌 베네딕트 성인은 로마 귀족 출신이었고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이런 계층이 주도하던 사회와 문화에 큰 의문을 품고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베네딕트 성인의 삶과 신앙과 신학은 ‘베네딕트 규칙서’에 가장 잘 드러납니다. 후대 사람들은 베네딕트의 규칙서와 수도회가 서구 유럽의 문화와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합니다. 뛰어난 교부학자이자 영성가인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2012년 은퇴)께서는 베네딕트 영성 전통을 ‘시간의 균형, 순종, 참여’의 측면에서 요약합니다.
삶의 시간은 노동과 공부와 기도로 균형 있고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인의 시간은 무엇을 성취하는 데 대부분 사용되고, 그 피로를 풀려고 지나치게 노는 일로 채워지기 일쑤입니다. 열심히 살기는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잊고 사는 시간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잠시 멈추어 “기억을 되살리고 지성을 깊이 하고, 사랑이 성장하도록 하는” 시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공부와 기도의 시간을 통해서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밖에 있는 남을 발견하고, 하느님을 즐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순종은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고집과 생각을 포기하는 훈련입니다. 순종은 굴종이 아닙니다. 남에게 경청하는 일이 순종입니다. 지위고하, 나이, 신분을 넘어서 서로 경청하는 행동이 진정한 권위의 시작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경쟁적인 싸움을 거절하는 한편, 자신의 삶과 조직에 균형과 억제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받아들여야 권위가 생깁니다. 그리스도인은 획일화시키려는 관료적 힘에는 반드시 저항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서로 피어나도록 돕고 거룩함을 위해 서로 격려할 때 참 공동체가 마련됩니다.
참여는 사회와 조직의 삶에서 저마다 소임을 찾아 책임을 다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소임을 누구에게 맡겨놓고 방관해서는 권위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러면 누군가는 계속 수동적인 삶을 강요받게 되고, 그 영혼은 상처를 입습니다. 그 상처 난 영혼에서 난폭한 분노와 테러리즘이 나옵니다. 중앙집권적인 문화는 참여가 없는 문화입니다. 관료정치는 비인간적인 정치입니다. 이에 맞서는 힘과 내용을 갖추고 활발히 연구하고 논쟁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요 참여입니다.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는 베네딕트 영성을 통해서 성서의 인간학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우리 인간은 서로 섬기고, 모든 이를 위해 각 사람에게 주어진 특별한 선물을 존중하고 격려하며, 이로써 관상적인 기쁨을 누리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성 베네딕트 규칙서 우리말 번역은 곳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베네딕트 영성 입문에 좋은 책으로는 성공회 신자이자 베네딕트 영성 전문가인 에스더 드 왈이 쓴 “성 베네딕트의 길”을 추천합니다.
- 7월 6일 주보에 실은 글을 성인 축일에 맞춰 약간 수정하여 올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