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도 – 거룩한 삶의 찬미
주님의 기도 – 거룩한 삶의 찬미 (루가 11:1~13)
왜 기도하는가? 어떻게 기도하는가? 기도로 무엇을 얻는가? 이런 질문에 많은 사람은 기도를 소원성취의 수단으로 보는가 하면, 여느 종교의 표현을 따라 ‘치성’을 드리는 일로 이해하곤 합니다. 더욱이, 오늘 복음 본문 후반에 나온 비유 이야기를 근거로, ‘하느님께 떼쓰고 귀찮게 매달려서 소원을 이루는 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혹시 성과가 없으면,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고 돌리기도 합니다. 그렇기만 하다면야, 세상에 이루지 못할 소원이 없고, 사람마다 서로 다른 소원이 충돌하여, 기도는 사회 혼란의 원인이 되고 맙니다.
이런 문제점을 제자들도 아는지라, 기도를 제대로 가르쳐 달라고 예수님께 청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새롭고 낯선 기도입니다. 그동안 다른 종교들과 선생들이 가르치던 기도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옛 제자들과 신앙의 선배와 더불어 우리는 이 기도에 담긴 새로운 뜻을 되새기고, 우리 기도 생활의 틀로 삼아 모든 공동의 전례와 개인 기도에서 되풀이합니다. 주님의 기도에 담긴 한 마디 한 마디는 우리 신앙의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어머니”라도 해도 좋습니다. 하느님은 철학에서 말하는 ‘신’도 아니요, 능력의 해결사도 아닙니다. 그분은 생명의 근원이신 ‘부모님’이며 우리 삶의 핵심입니다. 게다가 우리말 쓰임새처럼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이지, 개인이 독차지하는 ‘내 아버지’가 아닙니다. 하느님이 ‘아버지’라는 말은 우리 신앙인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신앙인은 서로 모두 형제자매라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기도는 우리 생명을 낳으시고 보살피고 키워주시는 부모님 아래서 형제자매인 우리가 함께 드리는 찬양입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은 우리 신앙인의 삶으로 그 거룩함이 드러납니다. 본래 거룩하신 하느님이시기에 우리가 말하고 고백하는 바에 따라서 그분이 거룩해지고 말고 할 일이 아닙니다. 거룩함은 깨지지 않은 온전함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창조대로 우리 삶을 바르고 온전하게 가꾸고 서로 보살피는 일입니다. “아버지의 나라”는 바로 이 온전한 삶의 관계를 하느님의 자녀인 형제자매가 함께 누리는 세상입니다.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우리 삶과 세상에서 펼치게 하는 우리의 행동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실상은 가난을 함께 물리치고 서로 용서하며, 이기심의 유혹을 이겨나가는 삶입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의 소망은 이 세상에서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과 닿아 있습니다. 이 마음이 우리 삶을 파괴하는 질투와 시기와 분쟁을 이겨나가는 힘입니다. 이 마음의 힘으로만 우리는 서로 용서할 수 있으며, 자기 중심주의의 유혹이 만드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때라야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다는 조건을 머리에 새겨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를 새로운 기도의 삶으로 초대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은 자주 눈앞의 이익과 이기심으로 흔들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생명의 근원인 한 하느님 아래 형제자매가 된 교회가 세상 안에서 온전하고 거룩한 관계를 살겠다고 다짐할 때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 삶의 찬미이며, 용서받고 하느님의 은총을 넘치게 누리는 행동 지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