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성찰과 학자의 비평
“간학문성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새로운 대상을 창조할 때 형성된다.” (롤랑 바르트, 1984)
“그 생성의 순간에 얻은 모든 지식은 논쟁적인 지식이다.” (가스통 바슐라르, 1950)
“그러니까 나르시스의 비극은 그가 충분히 나르시스적이지 않거나, 오히려 그가 변화를 줄 만큼 충분히 길게 비추어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비추어 볼 줄 안다(reflective). 그러나 자기 내부로 되돌아가는 성찰(reflexive)을 하지는 못한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을 타자로서 의식하지만, 타자로서 자의식을 가진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 소외 경험을 시작하는 순간에 자신을 이 타자에게서 떼어 놓을 수 없었고, 이해하지도, 살아 버틸 수도, 심지어 웃을 수마저 없다.” (바바라 밥콕, 1980)
의례 연구(Ritual Studies) 학자인 로널드 그라임스가 의례 비평과 관련하여 학자의 컨텍스트를 논하기에 앞서 인용한 짧은 글들이다. 그라임스는 학자로서 의례와 같은 어떤 사건이나 행동을 기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자기 회귀의 성찰성(reflexivity)은 그 기술을 충분히 하되, 역시 기술 대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참여하는 학자의 비평 행위의 다른 말이다. 학자는 상황과 기술 및 분석 대상의 안팎을 지속적으로 드나드는 성찰적 비평가이다.
“현장 연구는 내부와 외부의 관점들 사이의 긴장을 최대화하여 거리두기와 강조하기의 변증법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달렸다.”
May 13th, 2008 at 5:31 am
[…] 자기 성찰 없이는 한발짝도 못나간다. 특히 신앙적인 반성은 자기 내면의 어둠을 직시하는 것이다. 공부나 논리나 체험이나 연륜이 딸려서 걸리는게 아니다. 사회든 교회든 간에, 개혁 혹은 변화를 외치고 이를 끌고 가는 동인의 내막을 정직하게 들여다 볼 일이다. 그 짐짓 심각한 의논과 표정과 “으싸, 으싸”하는 움직임 안에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어둠을 덮어버린다면, 그건 변화가 아니라 곧 재앙이 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