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건진 몇가지 생각



며칠 전, 졸리는 시간에 누구의 추천으로 이른바 성격 DNA 테스트를 인터넷에서 해본 바 있다. 위 모양이 그 결과이고, “너는 주장 강한 발명가”(you are advocating inventor)라는 다소 의외의 결과를 얻었다. 의외라는 반응은 자기 본연을 애써 외면하려는 속셈이겠고, 나를 조금 알만한 사람이면 ‘딱 그거네’하고 슬핏 웃음을 띨 수도 있겠다.

그 색깔들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으나, 검은 색에 마음이 갔다. 모퉁이에 있는 선연한 어둠에 마음을 두고 한참 노려보았다. 한 사람의 어둠에 대해서는 할 말들이 많으리라. 아니 감추고 싶은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사제로서 나는 이 어둠을 늘 대면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도 그 어둠을 용기있게 대면하라고 말한다. 사제는 어둠을 몰아내는 주술사가 아니라, 어둠을 인정하여 대면하게 하는 안내자일뿐이다. 그럼 누가 그걸 몰아내주냐고? 그리스도와 사제를 혼동하지 마시라! 다만 사제는 복음이 말하는 바에 따라, 교회의 전통에 따라,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요한 1:5)는 말씀을 되뇌일 뿐이다. 이게 어디 마음을 쓸어주는 답변이 되겠는가? 이런 핀잔을 듣더라도 사제는 다만 그걸 “믿고” 사람들과 어둠을 뚫고 걸어가는데 “동행”할 뿐이다. 믿음은 답변을 주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동행”이다.

내가 뭔가를 주창하고 발명하고 고안해내는 사람일까? 좋은 뜻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괴팍한 나는 “어둠에 비추어” 이 말을 되새긴다. (그래, 어둠에는 빛이 있다.) 뭔가를 주장하는 사람은 상처주기 쉬우며, 편안하고 오래된 관습을 파괴하여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발명은 편리를 추구하지만, 이를 새로 쓰자면 당장에는 불편함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주장하여 일을 밀고 나가는 것은 당사자에게나 그걸 듣는 사람에게 매우 불편할 일일 수 있다. 좋은 말로는 예언자이고, 나쁜 말로는 파괴자이다.

예언자로서 역할하고, 파괴가 아닌 창조를 이뤄내려면 이런 부류는 몇가지 내면을 들여다 볼 일이다. 이게 자신의 어둠을 대면하지 않고 숨기려는 책략인지 분명히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을 식별이라고 한다. 식별은 항상 자신의 어둠과 대면하려할때라야 제대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식별에 대한 식별인 셈이다.

그런 다음에는 자신의 주장에 근거와 논리가 있는지 볼 일이다. 교회 언어로 말한다면 전통과 교리, 신학적 성찰을 구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불 받았다”고 덤벼들어서는 안된다. 근거와 내용이 없는 주장은 고집이다. 자신이 든 근거와 내용, 성찰이 애초에 없으니, 주장이 빗나갔을 때 혹은 근거가 잘못된 것일 때 이를 다시 검토하여 바꿀 여지가 없다. 대화가 없다. 정보를 기피한다. 고집으로 밀고 가는 수 밖에, 아니면 “믿음이 없다”고 다그치는 수 밖에.

그러나 근거와 논리에 따른 주장은 도전이어야 한다. 도전이 없다면 뭐하려 애써 연구하고 성찰하고 기도하는가? 그것은 우선 자신에 대한 도전이겠다. 공부든 신앙생활이든 자신의 고정 관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넘어선 존재에 나를 열어놓기 위한 것이다. 다음에 그것은 세상을 향한 도전이겠다. 우리에게는 되풀이해서 성찰한 교리와 전통, 그리고 교회의 삶에 관한 것이겠고, 이에 따른 세상을 향한 발언이겠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식별의 방법과 도전의 근거가 있으니, 복음에 기초한 성찰이요, 복음 자체이다. 복음은 교리나, 제도나, 성서의 문자적 해석이 아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몸소 겪으신 삶과 죽음을 통한 그의 활동이다. 전통은 교회가 그분의 활동을 자신들의 처지 안에서 이뤄내려고 살아내려고 분투한 흔적이요, 산물이다. 교회 안에서는 이 점에서 주객전도, 적반하장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상습성은 대체로 앞에서 말한 자기 어둠을 인정하고 대면하려 하지 않는데서 나온다.

주창자가 되건, 지도자가 되건, 혹은 영성가이건, 경청자이건, 학자이건, 학생이건, 내면의 어둠을 직면하고, 이에 내 자신에 도전하면, 세상에 도전하면서 나가야겠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식별과 정의의 행동을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어 주고 멍에를 풀어 주는 것,
압제 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 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 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 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너희 빛이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
너희 상처는 금시 아물어 떳떳한 발걸음으로 전진하는데
야훼의 영광이 너희 뒤를 받쳐 주리라.

그제야, 네가 부르짖으면, 야훼가 대답해 주리라.
살려 달라고 외치면, ‘내가 살려 주마’ 하리라.
너희 가운데서 멍에를 치운다면,
삿대질을 그만두고 못된 말을 거둔다면,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자에게 나누어 주고
쪼들린 자의 배를 채워 준다면,
너의 빛이 어둠에 떠올라 너의 어뭄이 대낮같이 밝아 오리라.”

(이사 58:6-10)

2 Responses to “어둠에서 건진 몇가지 생각”

  1. 짠이아빠 Says:

    Amen..
    신부님 그 DNA 사이트 저도 좀 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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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r. joo Says:

    심심풀이하시게요? ^^
    http://www.personald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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