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들에게 눈길을 주는 새해
샌프란시스코 지역 신문사(한국일보)에서 새해 인사를 짧게 적어달라는 청을 해서 보냈는데, 그 후론 아무런 연락이 없다. 실렸는지 여부도 모르겠다.(알고 보니 실리긴 했다. 맞춤법이 이리저리 틀린 채) 허접한 흰소리라면 종이가 아깝고, 독자들이 들인 시간이 아까울 것이어서 조심하긴 하는데… 쏟아낸 말인 이상 그릇되지만은 않은 생각이려니 해서 여기에 올려서 찾아뵙고 드리지 못한 새해 인사를 대신한다.
작은 이들에게 눈길을 주는 새해
새해 인사는 으레 기운차고 희망있는 말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앞섭니다. 즐거운 기운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세상이 희망과 기대로 넘쳐나고 있으니 딴지거는 작은 목소리 하나 정도는 참아 줄 아량은 있겠다 싶어 이런 글의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무쪼록 새해가 작은 이들의 목소리를 허투루 듣지 않고 다독여 주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작은 것들에게 마음이 잘 가지 않는 까닭은 우리 안에 큰 것들에 대한 기대와 열망이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과 마음이 분주한 것도 가만보면, 저만치 세워놓은 목표가 너무 높아서 도대체 이런 속도로는 안되겠다고 스스로를 채근하는 탓입니다. 그렇게 달려오다 지친 세월에 대한 회한은 특히 이민사회의 쓸쓸한 풍경이기도 합니다. 아무쪼록 새해는 이런 풍경의 단편을 더하지 말고 우리 안에 있는 작고 소중한 것들을 잃지 말고 다시 눈길 주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종교에서 가장 경계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우상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런데 종교 혹은 종교생활이 도리어 우상이 되거나, 우상을 세우는데 이바지하는 일이 숱합니다. 축복과 은혜가 곧장 세상살이의 성공으로 등치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면 이미 병세가 심각합니다. 종교를 갖거나 신앙 생활을 한다는 분들은 그 종교들이 담고 있는 “역설의 신비”에 깊이 마음을 두고 살았으면 합니다. 아무쪼록 새해는 자기 안의 우상을 깨뜨리고, 이웃들과 함께 하는 삶 속에서 작고 참된 기쁨을 되찾는 시간이었으면 합니다.
이런 것들을 한 다짐으로 단박에 이룰 수는 없습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람살이든 사물이든 그 가운데서 마음주지 못했던 가장 작은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고, 그 한두가지에 우선순위를 두어 짧은 시간이나마 반복적으로 실천해야겠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든지, 짧은 산책이든지, 그도 아니면 작은 화초 하나라도 키워내는 일로도 훈련이 가능합니다. 아무쪼록 새해가 이런 작은 자기 훈련의 시간으로 채워졌으면 합니다.
이런 소리도 새해 덕담이 될 수 있는 마음 넉넉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복 받으라는 덕담에 하나 보태렵니다. 줘야 받을 것이니, 이렇게 인사하고 싶습니다. 새해 복 많이 주고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