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에 자유를! Free Tibet!

프리 티벳! 티벳에 자유를!

수천의 함성이 이곳 샌프란시스코를 들끓게 하고 있다. 어제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 기습적으로 올라가 자유 티벳을 외치는 현수막을 걸었는가 하면, 오늘은 광장에서 남아프리카 성공회에서 은퇴한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대주교와 배우 리처드 기어를 중심으로 수천명의 군중이 모여 촛불 시위를 벌였다. 중국의 억압 아래 있는 티벳에게 자유를 달라는 것이다. 이 시위는 올 여름 중국 베이징 올림픽에 사용될 성화 봉송이 내일로 잡혀 있는 시점에 극에 다를 것인데, 이 때문에 SF 시 당국은 얼마전 일어나 런던과 파리의 성화 보이코트 시위를 겪을끼봐 전전긍긍하는 모양이다.

스포츠 행사인 올림픽을 정치에 끌어들리지 말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한 것은 정치인들이거나 독재자들이었다. 우리의 남아 손기정(1912-2002)이 마라톤 금메달을 딴 올림픽(1936)은 히틀러가 마련한 세계를 향한 정치 선전장이었다. 일제의 강점기 아래,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손기정의 슬픔은 올림픽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복잡하게 만든다.

삶이 두터운 탓에 그 중층적인 의미들과 효과들이 무우처럼 썰어지지는 않는다. 운동을 극도로 회피하는 성격이지만, 나는 올림픽 경기에 비칠 때마다 그 순간에 몰입하여 승리하는 자와 패한 자의 마음을 번갈아 가며 느끼고 하릴없이 함께 환호하고 눈물도 흘린다. 미국에 와서 다시 확인했지만, 여기 놈들은 한국을 한국 전쟁과 서울 올림픽으로 밖에 기억하지 않는다. (‘그래 참 고맙다, 이 놈들아!’)

그러나 적어도 내게 1988년의 서울 올림픽은 히틀러의 것과 구분되지 않는 독재자 전두환의 올림픽이었기에, 아니면 최소한 그 기회를 통해서라도 전두환이가 어떤 자인지를 알려야 했기에, 참으로 오래도록 길바닥을 뛰어 다니고 눕기도 했던 것이다. 자유 티벳을 외치는 이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최근에 일어난 티벳 내의 독립 시위에 대한 중국의 무력 진압과 살상은 광주에 대한 전두환의 살상과 함께 “올림픽”으로 곧장 포개진다. 이들의 참상을 알리는 유투브 동영상이 차단되고 있다 하니, 그곳이 80년의 한국과 2008년의 미얀마와 다를게 무언가?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걸 외면하려거나, 감추거나, 아직 모를 뿐이다. 비정치적이라는 말은 이미 정치적이다.

투투 주교는 올림픽 자체를 보이코트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스포츠는 그 자체로도 선양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정치 행사가 되어 버린 올림픽에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은 참석하지 말아야 하며, 올림픽을 통해서 중국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는데 거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림픽이 열리는 마당에 세상의 이목을 티벳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도 중국을 압박하는 더 효과적일런지 모른다. 실제로 보이코트할 방법은 없다. 반대(protest)를 시위(demonstration)할 뿐이지.

한편 이런 쓸데없는 생각도 든다. 미국은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경쟁자 중국을 견제하는데 이 마저도 이용하리라는 것. 서로를 비난하는 인권백서를 경쟁적으로 내는 이 두 나라의 싸움은 선량한 사람들의 착한 생각과 행동들도 정치적으로 써먹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나저나 천년 동안이나 중국 눈치만 살핀 습속에 젖어 우리는 달라이 라마 방한 하나 허용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 노무현 참여 정부도 못했는데, 제 잇속에만 밝은 이명박 실용 정부에서 일어날 리 만무하다.

작은 사람들과 연대하는 일에 인색한 작은 나라(사람)는 결코 세상을 이기지도, 이끌지도 못한다.

2 Responses to “티벳에 자유를! Free Tibet!”

  1. 김바우로 Says:

    제 블로그에 관련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Reply]

  2. fr. joo Says:

    김바우로 / 블로그에 올라 있는 티벳 관련 정보를 잘 봤습니다.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

    [Reply]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