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리는 칼 – 성 마틴 축일
성 마틴 수사 주교 축일 (11월 11일)
성인(Saint)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성 마틴 수사 주교에 얽힌 이야기는 성인의 기준과 면모를 살피기에 좋습니다. 일찍이 그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 나와서 여러 전설을 담은 것을 보면, 당대와 후대에도 여러모로 존경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4세기 Sulpicius Severus 가 쓴 ‘성 마틴의 생애’)
성 마틴은 4세기에 지금의 헝가리 지역에서 태어나서 일생을 프랑스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는 군인이 되었습니다. 군장차림으로 말을 타고 가던 어느 날, 그는 추운 겨울 길바닥에 벌거벗고 앉아 구걸하는 거지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곧장 칼을 빼서 자신이 입은 망토를 잘라서 거지를 입혔습니다. 사람 죽이는 칼을 그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썼습니다. 그날 꿈에 그 거지가 나타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 거지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이 일을 겪은 탓일까요? 성 마틴은 군인으로 사는 일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다 생각했고, 곧장 군복을 벗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평화주의자와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전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스도교의 평화 신앙을 살고 싶었던 그는 곧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고독하게 숨어서 수행하는 삶을 좋아했습니다.
삶과 영성이 일치했던 성 마틴을 눈여겨 본 사람들을 그를 주교로 삼고 싶었습니다. 주교가 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사람을 피하여 거위 우리에 숨었다가, 우리가 무너지는 바람에 엉망이 된 모습으로 사람 앞에 나와야 했습니다. 억지로 주교가 된 그는 오늘날과 비슷한 교구 체제를 마련했고, 본교회 사목구를 개편하여 지역 사람을 돌보게 했습니다. 자신은 이런 본교회를 걸어서, 혹은 당나귀를 타고 정기적으로 순회하며 신자와 성직자의 사목을 보살피고 도왔습니다. 오늘날 주교의 지역 교회 순회 전통을 세운 것이지요.
후대 사람들은 성 마틴의 전설을 즐겼습니다. 그가 거지에게 주고 남은 망토(cappa)를 잘 보관하여 이를 지키는 교회를 만들기도 하고, 이 망토와 교회를 지키는 사제(cappellanu)를 두기도 했습니다. 이런 작은 교회를 ‘채플’이라 부르고, 후대에 이런 채플을 지키는 사제 기사단에서 ‘채플린’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성 마틴은 헐벗은 이웃에게서 하느님을 보았고, 자신의 작은 도움뿐만 아니라 일생까지 던지며 살았습니다. 권력과 지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청원을 존중하여 그 지위를 받아들였고, 그 일에 충실하여 책임을 다해 신앙 공동체를 섬겼습니다. 중세 이후 오늘까지 유명한 순례길로 사랑받는 ‘산티아고 데 캄포스텔라’를 향한 길에서, 사람들이 프랑스에 있는 성 마틴 유물 성당에 꼭 들르는 이유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