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명의 빵이다, 그러면 너는 누구인가?

나는 생명의 빵이다, 그러면 너는 누구인가? (요한 6:24~35)1

사람이 종교를 찾는 이유를 물으면 각양각색이지만, 자신이 현실에서 겪는 문제와 의문에 대답을 주십사 하는 소망이 많습니다. 현세에서 자신의 안녕과 성공, 가족의 건강과 축복은 당연한 일이고, 내세에도 안녕과 축복이 계속되기를 갈망합니다. 그런데 이 갈망의 해결 방식을 되새겨 보면, 인간은 요청하고 하느님은 베풀어 주신다는 공식입니다. 구약시대 모세 때도 같았습니다. 괴롭다고 소리치니 파라오의 압제에서 건져 주었고, 배고프다가 아우성치니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불평과 더 큰 것을 바라는 욕심이었습니다. 그렇게 바라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가 하루 지나 썩듯이, 인간의 욕심은 마침내 황금소를 만들어 우상을 섬기는 일로 부패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해결책은 다릅니다. 자기가 소망하는 대로만 받은 것은 “썩어 없어질” 것이지만, 실제로는 먹을 수도 없고 마실 수도 없는 예수님을 “생명의 빵과 물”로 받아들이면 ‘영원히 계속되는’ 새로운 일이 펼쳐집니다. 불가능하다고 세상이 내치거나 버린 일을 다시 되새겨서 받아들이고, 그 일에 온 마음을 두고 온 몸을 던질 때 하느님 나라가 열린다는 장담입니다. 모세 앞에서 불타면서도 사그라지지 않은 떨기나무 사건이 그렇습니다. 말이 안 되는 사건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나는 나다”라 하시며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세상이 불가능하다는 것 속에서 하느님의 가능성이 펼쳐진다는 뜻입니다.

“나는 나다”하셨던 하느님의 어투를 예수님께서 그대로 쓰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문이요, 착한 목자이며 포도나무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부활과 생명이다.” 어느 말씀 하나도 현실의 세상에서 통용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을 향한 의지와 실천의 선언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삶 전체는 욕심과 경쟁의 어둠에 잠긴 세상에 빛을 주고 새로운 길을 냅니다. 서로 마음의 벽을 쌓은 세상에 문을 트고, 버려진 사람을 찾아내어 보살피며 달고 단 포도를 한 움큼 입에 넣어주시며 기운을 일으킵니다.

오늘 “나는 생명의 빵이다”하신 말씀은 이제 우리에게 “너는 무엇이냐? 너는 누구이냐”는 물음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삶 전체로 세상을 비추고 보살피고 먹이셨다면, 우리 신앙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느냐는 도전입니다. 믿음은 자기 자신의 소망에 머물지 않고, 더 큰 희망과 진실 ‘안에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believe in). 믿음은 예수님의 삶 ‘안’에 들어와 살라는 초대입니다. 이를 몸소 보여주시려고, 영성체를 통하여 예수님이신 성체와 보혈이 먼저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바울로 사도의 권면대로, 예수님을 모신 우리가 그분의 삶 ‘안’에 들어가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직분의 은총과 선물대로 세상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을 향하여 우리는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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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2015년 8월 2일 연중18주일 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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