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지 않으면 – 전체를 향한 깊고 넓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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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지 않으면” – 전체를 향한 깊고 넓은 시선 (루가 13:1~9)1

예수님은 늘 부드럽고 온화하게 말씀하시는 분일까요? 사도 바울로는 늘 위로와 격려만으로 전도하신 분일까요? 오늘 성서 독서와 복음은 신앙을 위로와 축복으로만 여기려는 신앙인에게 큰 도전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준엄한 심판을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하시니까요. 바울로 성인은 교적을 두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하시니까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 사건은 세례와 성찬례입니다. 바울로 성인이 지적하듯이, 우리는 자유와 해방의 출애굽 사건 때에 “구름과 바다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로서(1고린 10:2), 세상 어떤 힘에도 굴종하지 않고 오로지 정의로우신 하느님을 예배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새로운 백성으로서 우리는 “똑같은 영적인 음식과 음료”인 그리스도의 몸을 우리 안에 모시고 살아갑니다(4절).

바울로 성인의 경고는 우리 내면의 태도에서 시작합니다. 세례를 받고 성찬례에 참여하는 일이 자동으로 축복과 구원을 이끌지 않습니다. 마음의 태도와 몸의 행동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성실한 예배 참여자도 ‘우상숭배’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뼈아픈 지적입니다. 우상숭배는 무엇인가요? 하느님이 아닌 것에 마음과 몸을 파는 일입니다. 이웃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안위와 즐거움에만 갇혀 지내는 사람, 자신의 자리와 재산과 권력을 지키려고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사람, 부족한 사람에게 베푸신 은혜의 과거를 잊고 자신이 스스로 세웠다고 생각하는 사람 모두 우상숭배자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향하는 신앙과 자신을 향하는 우상숭배는 분명히 다릅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을 둘러싼 외면의 사회 구조에도 관심을 돌리라 하십니다. 그리스도교는 죄와 심판을 한 개인이 벌인 행동의 인과관계로만 좁히지 않습니다. 다른 여느 종교와 구별되는 지점입니다. 독재자 빌라도는 신앙의 순례자들을 죽였습니다. 악한 권력의 잘못을 분명히 짚어내고 증언하십니다. 권력이 자행하는 명백한 학살을 신앙인이라고 피할 수는 없습니다. 실로암 탑이 무너져 무고한 사람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탑’이라는 인위적인 구조물은 사회 제도와 구조의 문제입니다. 자명한 사회 구조적 원인을 덮고 문제를 모두 개인에게 돌릴 수 없습니다.

사순절의 신앙인은 세상에 너절한 고통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고통을 봅니다.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삼가며 성찰하는 동시에, 사회의 외면을 정확하게 분석하여 판단합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힘을 휘두르는 억압을 직시합니다. 궤변과 거짓 선전으로 공포심을 부추기는 현실을 꿰뚫어 봅니다. 교묘한 통제의 방식을 알아차리고 저항합니다. 자기 내면의 절제와 성찰에서 시작하여 사회 외면의 문제를 파악하고, 과거의 잘못된 방향에서 마음과 몸을 돌리는 일이 회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은 물론 여기저기 쓰러진 사람을 발견하여 세상 전체를 바라보는 깊고 넓은 시선을 지닙니다. 쓰러진 이들을 일으켜 현재를 새롭게 일구고 미래를 향하는 행동이 신앙인의 책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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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공회 서울 주교좌 성당 2016년 2월 28일 사순 3주일 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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