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 연재] 전례의 색깔 – 원칙인가, 역사인가?
전례의 색깔 – 원칙인가, 역사인가?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전례색은 전례력의 주제 변화에 따른 여러 색깔을 말한다. 제대에 예복 등에 색깔을 써서 시각적으로 전례의 뜻을 도드라지게 하려는 뜻이다. 전례색의 사용은 오랜 역사가 있는 만큼, 그 적용과 의미도 다양하게 발전했다. 우리가 쓰는 ‘전례색 사용 원칙’(기도서 28쪽 이하)도 불변하는 원칙이라기보다는 한국성공회가 전례 안에서 교회의 일치를 드러내려는 ‘권장 사항’이다. 그러나 교회 일치에 관한 감각을 높이려는 뜻을 존중하고 따라야 마땅하다.
유쾌하든 불쾌하든,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면서 전례색이 시작됐다. 로마 황제가 세례식에 쓰라고 주교에게 하사한 금술 달린 예복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유대교 전통을 따라서 ‘탈리트’를 쓰는 관례가 전부였으리라 추측한다. 4세기 말부터 성찬례 집전자는 흰색 예복을 입었다. 이후 9세기까지 서방교회는 다양한 전례색을 사용했으나 꼭 정해놓은 법은 없었다. 동방교회는 지방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정교회는 절기 관계없이 지금도 주일에 항상 금색을 쓴다. 모든 주일은 작은 부활절인 탓이다.
13세기 시작 무렵부터 서방교회의 전례색 기본이 마련됐다. 백색은 주님의 모든 축일과 모든 성인의 날에, 홍색은 성령강림절과 성십자가 축일, 그리고 사도와 순교자 축일에, 흑색은 절제의 절기와 별세자의 날에, 그리고 녹색은 그 밖의 날에 사용했다. 나중에 흑색은 대림절과 사순절 동안 자색으로 바꿔 색깔을 약간 완화했다. 이 기본 색깔을 중심으로 지역에 따라 변화도 생겼다. 대림절에 청색을, 사순절에 회색을 쓰는 중세 영국의 ‘사룸’ 예식서였다. 성공회에서는 19세기부터 ‘사룸’ 예식의 전통을 복원하여 전례 행동과 전례색에 변화를 주려고도 했다.
정교회는 나라와 전통마다 여전히 전례색 사용이 조금씩 다르다. 천주교는 복잡한 전례색 사용을 1969년의 전례 총지침으로 개정했다. 이후 성공회뿐만 아니라 여러 개신교회도 천주교의 개정 전례색을 조금씩 고쳐서 사용한다. 같은 서방 교회 전통이니 큰 문제가 없지만, 오랜 관습 때문에 수용과 적용에서 조금 혼란을 겪기도 한다.
한국 성공회의 <1965년 공도문>과 <2004년 기도서> 사이에는 전례색 사용에 조금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공도문>은 칠순기간(부활 70일 전)에 자색을 쓰라고 하지만, <기도서>는 사순절에 자색을, 성주간에는 홍색을 쓰라고 한다. 큰 혼란은 성목요일이다. <공도문>은 ‘건립성체일 미사’에 백색이라고 적었지만, <기도서>는 홍색 사용을 지시한다. 올해도 교회마다 혼란스러워하면서 무엇을 쓸지 옥신각신했는지 모른다. 세계성공회 여러 교회도 조금씩 다르다. 잉글랜드를 비롯한 여러 관구는 백색을, 미국과 다른 관구는 홍색을 지시한다. 신학의 강조점이 살짝 다른 탓이다. 백색은 성찬례 제정과 사제직에 초점을 두지만, 홍색은 그날 세족례와 최후 만찬이 수난사의 일부라고 강조한다. 옳고 그름이 아니니, 그 초점에 따라 교회마다 해마다 다르게 해도 좋겠다.
대림절의 청색 사용은 권장할 일이다. 대림절의 주제는 사순절과 다르기 때문이다. 새로운 하늘을 향한 기대와 아기 탄생의 희망이 청색에 담겨 있다. 흑색 사용은 여전히 유용하다. 성금요일의 흑색(어둠과 죽음)과 홍색(수난의 피)의 교차 사용이나 혼용은 그날 주제를 더욱 부각한다. 상장예식에서도 빈소를 지키는 동안에는 흑색을, 발인 이후의 예식을 백색을 사용하여 죽음과 부활의 변화를 드러낼 수도 있겠다.
- 성공회신문 2018년 4월 14일 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