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 연재] 부활 50일과 전례 상징들
부활 50일과 전례 상징들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성공회는 전례적 교회로서 교회력(전례력)을 성실하게 지킨다. 교회력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원 사건을 우리 일상의 시간에 고스란히 겹치려는 장치이다. 몸과 마음, 시간과 생활의 리듬이 되도록 하라는 부탁이다. 전례의 여러 상징도 새로운 삶을 돕는다.
부활은 인간에게 새로운 시간의 탄생이다. 창조 이후의 역사를 한번 마감하고, 새로운 창조의 시간이 열렸다.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분기점, 역사를 해석하는 기준, 신앙 식별의 잣대는 예수의 부활 사건이다.
이 새로운 시간을 강조하려고 고대 신앙인들은 흥미로운 숫자 놀이를 했다. 창조의 시간인 ‘칠’(7)에 하나를 덧붙여 ‘팔’(8)이라는 숫자로 이 새 시간을 표현하려 했다 (7+1=8). 옛 창조의 시간보다 더 풍요로운 새 창조의 시간이라는 뜻이다. 부활일은 단지 안식일 다음 날이 아니다. 새로운 제8요일이다.
새로운 시간의 놀라운 기쁨과 감격의 표현이 예배이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안식일 예배를 대신하여, 새로운 시간의 제8요일인 ‘부활하신 주님의 날’(주일)에 성찬례를 드렸다. 그리스도인들을 이후 일어난 모진 박해 아래서도 목숨을 걸고 새 시간에 모였다. 부활일은 일 년 중 가장 큰 주일이며, 매 주일은 모두 작은 부활일이다.
이 시간은 이제 ‘위대한 50일’로 확장된다. 여기에도 같은 숫자 놀이가 있다. 옛 창조 시간의 안식일이 일곱 번 지나서 새로 얻은 시간이 ‘오십일’이다 (7*7+1=50). 구약성서의 희년 사상과도 겹친다. 부활절기와 성령강림일은 구별된 교회 절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간의 확대인 ‘부활 축제’로서 통째로 하나인 희년의 시간이다. 부활절기는 부활밤에서 시작하여 부활일과 부활 후 팔일부, 그리고 사십 일째 되는 승천일을 거쳐 50일째 되는 성령강림일을 아우른다. 4세기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이 절기 동안에 무릎을 꿇지 않도록 정했을 정도로 부활의 기쁨을 강조했다.
부활절기는 예수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신 일을 과거의 사건으로 축하하는 일에 머물지 않는다. 부활은 오늘과 미래에도 살아계시고 하느님의 다스림을 확인하고 되새기며 찬양하고 기뻐하는 영원한 시간이다. 그러므로 부활주일 단 하루의 종교적 의례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모두 부활의 증인으로서 나날이 변화하고 성숙하며, 주님 부활의 기쁨과 능력을 세상에 전하는 ‘기쁨의 50일’이기 때문이다.
부활절기의 중심적인 상징 두 가지는 부활초와 세례대이다. 부활초는 부활밤 새로 축복한 불에서 붙여서 세상의 어둠을 이긴 하느님의 빛, 즉 부활의 생명이 만든 빛을 드러낸다. 부활밤 세례식에서 부활초로 물을 축복하고 그 물로 세례를 베푼다. 세례를 베푸는 곳은 성천(聖泉:거룩한 샘)이라 불리는 세례대이다.
교회 전통에서 세례대는 성당 동쪽의 제대와 마주 보는 서쪽의 입구 중앙에 부활초와 함께 있다. 신앙은 세례를 받고 제대로 나아가며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순례의 여정이라는 뜻이다. 성당 입구에서 우리는 죄를 씻고 기름 부음을 받았던 세례의 경험과 언약을 되새기며 그 물로 십자 성호를 긋고 성당에 들어온다. 전통적인 성당 배치에서는 제대와 성천이 마주하며 복음의 성사인 성찬례와 세례를 되새겨 준다. 종종 세례대는 팔각형으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서울주교좌성당의 세례대는 영국에서 가져와 1892년부터 사용하던 정교한 대리석 팔각형 성천이다. 숫자 ‘팔’(8)이 다시 적용됐다.
신앙인은 부활밤의 새 빛으로 시작된 새로운 시간을 걷는다. 신앙인은 과거를 씻는 세례를 통과하여 새로운 ‘생각과 말과 행실로’ 새로운 시간을 사는 ‘제8요일의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