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 연재] 장미 주일 – 쉼으로 미리 맛보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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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주일 – 쉼으로 미리 맛보는 기쁨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장미 주일’로 부르는 주일이 교회력에 두 번 있다. 대림 3주일과 사순 4주일이다. ‘장미’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례 색깔도 장미색을 쓴다. 장미는 그 화려한 색깔과 짙은 향기로 기쁨을 상징한다. 하필 왜 참회와 절제의 절기 중간에 이러한 화려한 기쁨이 있을까?

사순절기의 절제 생활이 지금처럼 느슨해진 것은 아주 최근 일이다. 오랫동안 교회 전통에서는 사순절 기간에 금욕, 금육, 금식 등 절제 생활이 엄격했다. 어린이와 임산부, 노약자만 예외였다. 하도 엄격해서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 직전 화요일에는 작정하고 기름진 음식을 배불리 먹는 축제를 만들 정도였다. 지루한 절제 시간 가운데 잠시 휴식을 주려는 것이었을까? 곧 다가올 예수님의 수난을 준비하라는 배려였을까? 그도 아니면, 2주 후 다가올 부활의 기쁨을 미리 맛보라는 뜻이었을까? 실제로 옛 성서정과에서는 사순 4주일에 빵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고픈 사람을 넉넉히 먹이신 기적의 복음을 읽었다. 배고픈 이에게는 기쁨이 넘치는 일이다. 이런 뜻을 다 모아서 잠시 숨 돌리는 시간을 마련했으리라.

교회력의 역사를 보면,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절이 먼저 있었고, 이를 본떠서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주제도 비슷했다. 그 참에 장미주일도 같이 생겼다. 원래 이름은 조금 다르다. 사순 4주일(레타레)은 그날의 미사 입당송 ‘즐거워하라(Laetare), 예루살렘아’의 라틴말에서 따왔다. 비슷하게, 대림 3주일(가우데테)도 입당송 ‘기뻐하라(Gaudete), 주님 안에서’에서 따왔다. 다만, 20세기 들어 개정한 성서정과와 전례에서는 이 입당송이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 주일들에는 성가 선곡에서 기쁨의 주제를 고려하면 좋겠다.

이 두 주일에 ‘장미’를 덧붙인 연유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지배자 신들은 장미를 엮어 화관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지배자들의 신화를 뒤집었다. 장미를 억압당하고 박해받은 순교자의 관으로 바꾸었다. 가시관 쓰신 예수님을 따라 순교자도 가시 찔리는 고난이 있었으나, 그 신앙은 아름답고 향기롭다는 뜻이었다.

일찍부터 성모 마리아의 상징은 백합과 장미였다. 장미의 가시는 예수를 잃은 어머니 마리아의 ‘심장을 아프게 찌르리라’는 시므온의 예언과 들어맞았다. 중세에 변형되어 발전한 성모 묵주 기도(로사리오-장미)도 이런 연관이 있다. 11세기에는 로마의 주교(교종)가 장미를 축복하여 지역 교회에 선물했다. 자애로운 신앙의 보호와 인도를 상징한다고 했다. 영국 지방에서는 사순 4주일에 ‘어머니 교회’인 주교좌성당을 방문하는 전통이 있었다. 나중에 이 관습이 실제 ‘어머니’를 기리고 감사하는 ‘어머니 주일’로 발전했다.

사순절은 혹독한 절제 가운데서 어둠 속 참회와 빛의 기쁨이 밀고 당기는 체험의 시간이다. 사순 여정 가운데 주일은 뺀다. 절제의 기간이더라도 주일은 늘 작은 부활절인 탓이다. 6세기부터는 사순절 주일 전례에서도 ‘알렐루야’를 생략했으나, 여전히 성찬기도는 그 자체로 하느님을 향한 영광송이다. 생략한 ‘알렐루야’는 성목요일에 다시 등장했다가 멈추고, 부활밤에 더욱 큰 소리로 노래할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축소된 부활 직전 2주 동안의 ‘고난 주간’에는 성당의 모든 성화와 성상을 천으로 가리거나 얼굴을 돌려 놓았다. 우리 삶에서 그리스도의 부재를 느끼고 목격하며, 우리 삶의 어둠을 비출 하느님의 빛을 더욱 갈망하라는 뜻이다.

역사처럼 신앙도 이리저리 굽이치고 겹쳐 흐른다. 신앙의 내용과 형태를 단칼에 정리할 수는 없다. 혹독한 신앙의 수련도 있지만, 그 안에는 신앙인의 연약함을 향한 너그러운 배려도 있다. 배고픔과 갈증, 인간 내면의 어둠 속에서 헐벗은 외로운 자신을 깊이 돌아보는 훈련인가 하면, 기쁨을 향한 희망과 감각을 잊지 말라는 격려이기도 하다. 전례는 이처럼 여러 뜻이 겹쳐져 서로 모순되듯이 존재하고 관계할 때 신앙의 신비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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