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 연재] 공현절 – 세상의 빛 예수와 신앙인

Epiphany-triptych.jpg

공현절 – 세상의 빛 예수와 신앙인1

주낙현 요셉 신부 (서울주교좌성당 – 전례학 ・ 성공회 신학)

공현은 ‘널리 드러난다’ ‘빛을 가져온다’는 뜻을 지닌 그리스 낱말 ‘에피파네이아’에서 따왔다. 공현절기의 주제는 ‘예수 안에서 널리 드러난 빛과 영광’이다. 예수의 아기 성탄으로 어두운 세상에 빛이 비쳤다. 세상의 어둠은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빛을 이기지 못한다. 공현절은 성탄으로 시작된 작은 빛이 구원의 역사로 펼쳐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교회 초기 전통에서는 공현일인 1월 6일에 주님의 세례 사건을 기념하는 일이 더 많았다. 그러다가 점차 공현절의 극적인 전개의 세 가지 사건은 동방박사의 아기 예수 방문과 예수의 세례, 그리고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 사건로 정해졌다. 최근에 성서정과가 3년 주기로 바뀌면서 이 주제도 조금씩 결을 달리했다. 올해 ‘가’해는 가나 혼인 잔치 대신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셔서 세상의 빛으로 살라는 가르침으로 펼쳐진다.

동방박사의 여행은 공현절의 대명사가 되었다. 교회 전통은 이들의 여정과 선물을 진리의 빛을 간절히 바라는 신앙인의 순례로 해석했는가 하면, 예수는 유대교라는 혈연과 지역의 종교를 훌쩍 넘어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자가 되신다고 선포했다. 예수의 삶을 따라 빛의 길을 걷는다면, 어떤 차별도 없이, 모든 이에게 구원이 열려있다는 새로운 역사이다.

주님의 세례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새롭게 바뀌었다는 선언이다. 지금까지 유대교든 어는 종교든 ‘하늘’은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하늘’에서는 처벌과 심판이라는 두려운 말이 들리곤 했다. 그런데 예수의 세례 사건에서 ‘하늘’은 새로운 목소리로 예수를 감싸고, 예수의 세례를 받은 우리를 감싼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예수께 기름 부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름 부으시어, 이 세상에서 예속과 굴종으로 살아가지 않고, 이 세상에서 왕처럼 떳떳하게 살며, 다른 이들도 왕처럼 섬기며 살라는 명령이다.

신앙인은 예수의 제자로서 이 사랑의 음성과 명령에 대답할 책임이 있다. 하느님과 더불어 이웃과 함께 이 사랑의 관계를 널리 펼치며 사는 일이 제자도이다. 공현절에 펼쳐지는 빛과 영광의 드라마는 예수에게서 그치지 않고, 제자들에게 이어지고, 그 세례와 가르침을 나누는 우리에게로 넘어온다. ‘가’해 마태오의 공현절기 주일 복음이 가르치고 이끄는 초대이다. 이 초대에 응답하는 일이 신앙이다.

다시, 공현절은 우리 삶과 역사에서 교차하는 어둠과 빛을 돌아보게 한다. 삶의 여정에서 사람마다 겪는 영적인 어둠이 적잖다. 손쉬운 종교는 이를 해결하려면 ‘덮어놓고 신을 믿으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공현절의 신앙은 하느님과 이웃에게 자기 자신을 먼저 펼쳐 놓으라고 초대한다. 빛 앞에서 어둠 속에 감추인 모든 것이 드러난다. 최근 우리 사회는 진실의 빛이 거짓의 어둠을 걷어낸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공현절의 신앙인은 우리 교회가 빛의 길을 걷고 있는지 성찰한다. 다시는 빛과 진실을 가리지 않고, 널리 드러내기 위하여.

(사족: 애석하게도 2004년 기도서에서는 공현절기가 빠졌다. 다행스럽게도 성서정과에는 공현절기의 뜻과 신학이 사순절 직전까지 드러난다. 나중에라도 공현절기를 회복하여 바로잡을 일이다.)2

  1. 성공회신문 2017년 1월 21일치 5면(↩)
  2. 성공회 신문 편집자 주: 성공회 신문은 주낙현 신부(서울주교좌성당)을 필자로 초대하여, 올해 1년 동안 교회력에 따른 주요 절기와 축일의 역사와 의미, 그 전례를 안내하는 기획 연재를 마련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