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의 하느님
1. 하느님 행동의 신비
“errore hominum providentia divina”
(하느님의 은총 혹은 섭리는 인간의 잘못과 죄를 통하여 일어난다.)
신약학자 제임스 샌더스 (James A. Sanders)가 그의 책 여기저기서 되풀이 소개하는 고래의 신학적 금언.
이에 대한 부연으로 그가 덧붙이는 말: “분명한 건 성서에는 도덕률에 대한 어떤 모델이 별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 그보다는 우리 자신을 비춰보도록 하는 수많은 거울들이 들어있다. 하느님께서는 죄 많고, 신앙심이 없은 이들을 통해서 일하셨다… 때로 하느님께서는 종교 단체보다는 세속 단체들을 통하여 당신의 일을 하신다는 점도 알아야겠다.”
교회 망한다고, 교회가 공격당한다고 걱정할 일이 아니다. 교회답지 못하고, 그리스도인답지 못하면 하느님께서는 주저없이 다른 이들을 쓰신다.
2. “거울” 혹은 “창” – 성서와 성직에 대해서…
성서를 창(窓, window)으로 보는 일이 필요하다. “창”의 상징을 여러모로 숙고할 일이다 – “이콘” (icon)이라고 하면 한결 깊은 표현이겠다. 창이 없으면 어둡고 갇힌 상자에 머물고 만다. 창을 열어야 숨을 쉴 수 있고, 찬 기운을 막으면서도 햇볕을 받아들일 수 있다. 성직자는 창을 닦는, 혹은 창틀을 만들어 붙이는, 혹은 창 자체가 되려는 사람이다. 성서는 “창”이고 “이콘”이기에, 그것은 성사(sacrament)이다. 성직이 이 창과 결부되어 있는 한 이 역시 성사이다.
어떤 성사가 우상숭배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성사인 성서가 우상이 되는게 남 일이 아니다. 성사인 성직이 우상이 되는 것도.
우상에 대한 짧은 정의: “절대적이지 않은 것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것”
사례: 2MB 정권의 “경제” –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헉!), 시장지상주의, 자본 “물신” 주의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
“길에서 부처를 만나거든 그 부처를 죽여라.”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가리키는데 더러운 손가락을, 더러운 사람을 들어 쓰시는데 거침이 없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