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신학 – 예수 변모 축일
빛의 신학 – 예수 변모 축일 (8월 6일)1
공관 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가)는 모두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고 산 위에서 빛을 감싸고 영광스럽게 변모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사건은 산에서 일어납니다. 이 산은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는 공간입니다. 덧없고 유한한 인생이 영원한 차원과 만나는 곳입니다. 하늘과 땅이 이어지는 곳입니다. 이 두 경계 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뚝 서십니다. 이 경계에서 예수님은 환한 빛으로 변합니다. 이제 예수께서 우리 인간을 향하여 이루시려는 일이 무엇인지 드러납니다. 그것은 하늘을 입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빛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사건 등장인물의 만남이 뚜렷합니다. 모세는 가녀린 떨기나무가 전능하신 하느님의 불을 품었던 순간에 하느님을 만났고, 이집트 노예 탈출을 이끌었습니다. 예언자 엘리야는 악행을 거듭하는 권력과 싸우다가 하느님의 부름을 받아 하늘에 올랐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활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예수님과 만나 구원 행동의 전통을 나누고 함께 이어가는 만남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전통을 세상 속에서 계속 이어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입니다.
사건에 담긴 말들이 이채롭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의 ‘죽음’에 관하여 논의했습니다. 이때 ‘죽음’에 해당하는 희랍어는 ‘엑소더스’, 곧 ‘해방의 탈출’입니다. 이를 위해서 애써야 할 터인데 제자들은 초막을 지어 머물렀으면 합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명령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도피하지 않고, 세상의 억누르는 사슬을 끊으며 해방하는 일에 귀 기울여 참여해야 합니다.
서방교회 영성과 신심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사건에 몰두하여 참회의 신학으로 깊어졌다면, 동방교회 영성과 신심은 예수님의 변모 사건을 바라보며 빛의 신학으로 펼쳐졌습니다. 우리 인간 삶의 목표는 하느님을 만나고 자유롭게 되어서 빛나는 존재로 변화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거룩하게 변화하는 과정에 끊임없이 참여하는 일이 신앙이라고 확신했습니다. 2세기의 교부 이레네우스 성인은 이 사건에서 우리 인간의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있는 인간 자체이며, 참된 인간의 삶은 하느님을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 주낙현 신부, 서울 주교좌 성당 주보 8월 3일 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