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기도 I – EOW 1
지난 월요일 신학교 매일 성찬례의 집전 차례를 맡은 김에 성찬기도(Eucharistic Prayer)만 번역해서 사용해 보았다. 집전자인 나만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이미 신학생들은 성찬기도를 모두 알고 있는 참이니, 한국어로 챈트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그날 오르간 연주자 크리스토퍼의 제안도 있었다.
미국성공회는 1979년 기도서를 공식발행한 이후 1998년에 새로운 아침기도-저녁기도, 그리고 성찬례를 펴냈다. 20여년 전에 별로 드러나지 않았고 고려하지 않았던 이른바 “포용적 언어”(inclusive language) 사용을 반영하고 새로운 사목 상황에 따른 변화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것이었다.
교회 혹은 신학 내의 성차별적 언어들을 극복하려고 제기된 이른바 “포용적 언어”의 사용은 예전 안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1979년 기도서가 평등주의적 공동체 신학이라고 풀이할 만한 “세례 교회론” (Baptismal Ecclesiology)에 강력하게 기반하고 있던 터라, 이런 새로운 언어적 적용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막상 번역은 녹록한 작업이 아니다. 우리말 운율에 맞추기도 어렵고, 새로운 성찬기도의 핵심인 이른바 영어의 “포용적 언어”라는 것이 우리 언어와는 사뭇 다른 점들이 많기 때문이다. 번역은 늘 반역이지만, 다시 새로운 창작이기도 해서 어의에 충실하면서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어떤 친근한 이미지들과 어투를 사용해보려고 시도했다.
성찬기도 이해의 한 자료가 되었으면 하고, 무엇보다 하루를 위한 중요한 기도의 내용이 될 수 있을까 해서 함께 나누려 한다.
성찬기도 I Eucharistic Prayer I
from Enriching Our Worship 1 (1998)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그대와 함께 하소서.
마음을 드높이
주님을 향하여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림은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시며 자비의 샘이신 하느님,
거룩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림은
옳은 일이며, 좋은 일이며 즐거운 일이옵니다.
언제든지 아래의 서문을 사용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모든 창조 세계를 당신의 축복으로 채우시고,
그 한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먹이셨으며,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한 몸으로 엮어주셨습니다.
주님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충만한 생명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위 서문을 대신해서 절기에 따라 기도서의 서문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의 천사와 대천사와 온 세대의 성인들과 함께,
창조세계와 더불어 우리의 주님을 찬미합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한 그 영광
높은 데에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 데에 호산나.
온 누리를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신 은혜로우신 하느님,
우리가 주님을 찬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우리를 불러 끝없는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을 우리에게 맡기시어 신실한 청지기가 되게 하시고,
그 넘치는 은총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웃과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의 형상을 존중하지 못하고,
이 세상에 깃든 주님의 선하심을 깨닫지 못하여,
이 창조 세계를 깨뜨리고,
서로를 속이며,
주님의 사랑을 거절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보살핌을 거두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당신과의 계약으로 우리를 초대하시고,
우리를 노예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우리를 광야에서 지켜 주시고,
예언자를 일으키시어 구원의 약속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날에 이르러,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보내시어
예수 안에서 인간의 몸을 얻게 하시고,
인간의 가정에 태어나 우리와 머물며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죽음의 십자가에 바쳐서
모든 악을 이기시고, 자유와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기 전날 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빵을 들어,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벗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받아 드십시오. 이것은 여러분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십시오.”
식사를 마치시고 예수님께서는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벗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받아 드십시오. 이것은 여러분과 많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흘리는 새로운 계약의 내 피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신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셨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고,
그리스도는 다시 오십니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여,
이제 우리가 당신의 창조세계에서 얻은 이 빵과 포도주를 바치니,
성령을 통하여 이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이 음식을 나누어 들 때에,
성령이 우리에게 넘쳐나게 하시어,
이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게 하소서.
이제 우리를 하느님의 딸과 아들로 받아주시어
그 한없는 유산을 얻게 하시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성인들과 함께
주님의 이름을 끝없이 찬미하게 하소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하나되어,
주님, 영예와 영광과 찬미를 세세 무궁토록 받으소서. 아멘.
June 15th, 2005 at 6:28 pm
이 성찬기도 번역 스크랩해 갑니다. 불가하다 판단되시면 알려주세요. 관련파일 파기하겠습니다. 그리고 허락해 주시면 제 홈피에도 게시할라구 하는데, 물론 신부님의 copy right을 명확히 밝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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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6th, 2005 at 3:41 pm
루시안님// 졸역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로서도 영광입니다. 무엇보다 에큐메니칼 대화 속에서 함께 만나고 함께 걷기를 희망합니다. 사실 예전(전례) 속에서 이런 대화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만…
[Reply]
July 14th, 2005 at 4:06 pm
다양한 예전을 위한 성찬기도의 시도로서 번역을 위해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현대적인 언어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와 닿는 문장들이, 그리고 말로서 소리내어 읽어도 막히는 것이 없는 듯 합니다.
계속 수고해 주세요.
[Reply]
July 16th, 2005 at 7:48 pm
주신부님….
전 카톨릭 교인이지만… 에큐메니칼 운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형제교회인 성공회관련 싸이트를 자주 방문합니다…
이전 교황이신 요한바오로2세의 선종과 현 교황이신 베네딕토 16세의 착좌에 관한 단상들을 잘 읽었습니다.
어릴 때 부터 복사를 섰던 관계로 거의 모든 미사전례를 외우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번역하신 성찬 전례는 제가 외우고 있는 것과 거의 비슷합니다.
교회의 일치를 위해…. 기도 많이 해 주십시오…
한 가지 더 여쭙고 있는데요…
아시다시피 중국 카톨릭은 지하교회와 애국교회가 같이 있습니다…
성공회도 그러한 상황인가요? 중국 정부는 바티칸뿐 아니라 캔터베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나요?
신부님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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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9th, 2005 at 5:10 pm
김요셉님// 질문란에 이어서 여기서 다시 만나는군요. 중국의 로마 가톨릭 교회는 잘 알 수 없지만, 중국교회와 성공회의 관계는 매우 독특합니다. 1954년 세워진 이른바 중국교회(애국교회 혹은 삼자교회)는 혁명 후 통합된 단일 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성공회도 참여했고, 최근까지 이 교회의 대표는 성공회 안에서 주교 성품이 된 팅 주교였습니다. 개별 교회 전통으로서 성공회적 색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교단으로서는 독립적인 교단이고, 세계 성공회와도 별개이며, 캔터베리 대주교와의 관계도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세계 성공회는 중국교회 내 성공회 전통 속에서 서품을 받은 성직자의 권위를 인정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개별 교구가 그 성직자를 성공회 성직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