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기원 성찬례

오늘 저녁에는 이곳 성공회 신학교 CDSP의 목요일 저녁 공동체 성찬례를 한반도 화해와 평화를 위한 기원 미사로 드렸다. 여기에 온 이후로 신학교에서 한국어 미사를 드린 것이 다섯 번 정도가 된다. 하지만 매일 미사 한차례를 빼고는, 외국에서 공부하러 온 다른 나라 성공회 신부들과 인터내셔널 미사를 드렸기에, 성찬기도를 우리 말로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미사 의향을 특정 지역으로 정하기 어려웠던 것에 비해서, 오늘 미사 의향은 한반도의 평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곳 성공회 신학교 CDSP는 성공회의 예전 생활의 전통에 따라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그리고 오전 11시 반에 있는 매일 성찬례로 이루어져있다. 하루 세 번의 예전은 신학교의 교육이 예전을 통한 신앙 형성과 훈련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모두가 기숙사에서 살아가는 처지도 아니고 강의와 겹치는 일이 많아서 참석을 강제하지 않지만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다만 매주 목요일 오후에는 오전 미사 대신에 교수, 신학생, 그리고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공동체의 밤 미사를 드리고 함께 식사한다.)

오늘 미사의 대강은 이랬다.

미사의 시작은 전형적인 순행의 형태를 깨뜨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촛대와 다른 봉사자들이 짝을 지어 입당하는 것과는 달리, 분단의 상징으로 각기 두 패로 나뉘어 다른 문으로 입장했고, 그 동안 분단의 슬픔을 표현하는 피아노 음악이 입당성가를 대신하였다. 우리 아들과 딸이 남남북녀가 되어 각각 태극기과 인공기를 들고 두 패를 인도했으며, 그들이 침묵 속에 제대에 이르러 머무는 동안, 부활초와 한반도기(아리랑기)가 집전자와 함께 제대에 이르러 모두가 제대에 예를 표할 수 있게 되었다. 곧바로 부활초 옆에서 부활 선언과 세례 물을 다시 뿌리는 의식으로 이어져, 부활의 새로운 생명이 우리 한반도에서 다시 일어서기를 기원했다.


복음 환호송은 자진모리 가락이 흥겨운 한국 천주교 강수근 수사신부님의 곡을 선택했다. 이미 몇 차례 다른 미사에서도 사용한 탓인지, 조금씩 이 친구들도 그 가락에 흥겨워 할 줄 알게 되었다. 뒤따른 복음 독서는 케냐 성공회에서 온 존 키부부 음미와 신부가 해주었다.

말씀은 한국에 수 차례 다녀가신 적이 있는 존 케이터 신부님께 부탁해 놓았다. 이방인의 눈으로 특별히 한국성공회가 펼치는 평화와 화해의 운동 그리고 사회의 약자들을 위한 활동을 목격하고 얻은 충격을 자기 신학생들에게 말하도록 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했다. 케이터 신부님은 19세기말 제국주의 4강에 포위되어 찢기는 한국의 모습을 십자가의 고통으로 형상화한 뒤, 이 고통 속에서 한국의 백성들과 한국성공회가 벌여온 선교 활동을 세례자 요한의 예언자적 활동에 비추어 설명했다. 그리고 여전히 분단 속에서 고통 받으며, 서로 미움을 키워나가던 역사를 끝내고자 분투하는 이들의 경험 속에서, 이들과 함께 미래의 사제들과 현재의 미국 교회가 무엇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것이며,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물었다.

이후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일하는 교회와 활동가들, 그리고 우리 자신의 헌신을 위한 신자들의 기도가 회중석에서 이어져 나왔다.

설교 이후, 신자들의 기도, 평화의 인사와 봉헌으로 이어지는 미사는 좀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성찬의 전례는 말씀의 전례를 이어 받아 그 말씀을 우리 안에서 몸으로 실현하는 그릇인 탓이다.

봉헌은 나운영 작사/작곡의 “주의 형상 따라서”(성가 195)를 부르며, 우리 떡과 우리 술을 봉헌하여 성찬의 음식으로 삼았다. 이어지는 성찬기도는 성찬기도 첫 대화 (Sursum corda)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어로 노래하면서 이어갔다. “거룩하시다”와 “신앙의 신비”를 우리 곡에 따라 부르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영성체와 함께 다양한 곡들을 나눠 불렀는데, 이미 미국성공회 새 성가집에 실려 있는 이건용 선생의 “오소서 오소서 평화의 임금”도 빠뜨리지 않았다.

마지막 파송 예식은 평화와 화해의 실천을 다짐하여 이 세상에서 부활의 몸이 되고자 하는 “알렐루야”의 환성이 가득 찬 성가로 끝이 났다. 함께 손뼉치며 발을 구르며, 저마다 가진 악기들을 흔들어대며, 우리 한반도에, 그리고 이 세상에 부활의 함성이 울려 퍼지기를 기원했다.

“이제 주님을 사랑하며 그분을 섬기러 나갑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특별히 이 미사를 위해 함께 준비했던 이들에게 감사 드린다. 말씀을 전해주신 존 케이터 신부님, 집전 조력을 하겠노라고 나서고 신자들의 기도를 마련해 준 에스미 조 컬버, 그리고 케냐 성공회의 존 음위아 신부, 또한 한국인 파트너와 함께 살면서 한국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키워나가며 부활초를 들고 입당해 준 토마스 잭슨에게 다시 감사드린다.

이들과는 개인적인 깊은 인연도 있다. 존 케이터 신부님은 내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아시아 지역을 경험한 적이 한번도 없었으나, 60-70년대의 미국 시민 인권 운동에 깊이 참여하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오랫동안 선교사 활동을 하시면서 해방신학과 바닥공동체의 경험을 한 탓에, 한국 교회의 활동에 대한 소개를 받고는 선뜻 한국 방문을 추진하시고, 지난 몇 년 동안 이미 수 차례 방문하시어 이제는 많은 신부님들이 알게 되었다. 이제 당신 스스로 많은 한국의 친구들을 얻게 되어 기뻐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 말을 배우고 계신다. 한국말로 집전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노라 했더니 아이처럼 기뻐하신다. 꼭 그런 분이다.

에스미 조 컬버는 지난 여름에 세상을 떠난 엘스 컬버의 미망인이자 이곳 신학생이다. 엘스컬버를 대신해서 한성렬 북한대사로부터 지난1월 친선 훈장을 수여 받았으며, 교회 사목을 맡더라도 엘스 컬버의 유지를 따라 미국성공회와 함께 한반도 평화를 위한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아쉽게도 그는 이달 졸업과 함께 오레곤주 포틀랜드로 다시 돌아간다.

케냐에서 온 존 음위아 신부는 약 1년간 여기서 머물며 공부하고 있는데, 다음 학기에 케냐 미사를 드리게 되면, 나더러 복음을 읽되 꼭 스와힐리어로 읽어달라고 너스레를 떠는 분이다. 미국에 오기 전 세계성공회 선교와 복음화 위원회가 나이로비에 열린 차에 케냐와 케냐 성공회의 신부님들과 주교님들을 경험한 탓인지 늘 보기에 반갑고 즐거운 형님 같다.

이들 말고도 많은 도움이 있었다. 석사 과정 지도교수님이셨던 루이스 와일 신부님은 예복실까지 찾아와 안아주시며 참 뜻 깊은 미사였노라고 격려해주셨다. 무엇보다도 함께한 이들의 기꺼운 참여가 이 성찬례를 더욱 의미 있고 기쁘게 한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성공회를 통해서 공유된 전통 속에서 다른 나라말인 성찬기도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오히려 새로운 신비감으로 자신들에게 들려오면서도, 더욱 깊이 성찬기도의 내용을 되새기게 되었노라는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데 감사한다. 예전이 무엇이며 소통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다시 되새겨 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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