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교구 주교 선출

(5월 6일 오후 갱신: 오늘 토요일 3차 투표까지 가서 결과가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 2명이 각축을 벌였고, 결국에 앨러바마 보좌주교인 49세의 마크 앤드러스 주교가 제 8대 캘리포니아 교구장으로 선출되었다.

아마도 지난 27년간의 교구 운영의 흐름을 이어갈 경험 많고 안정적인 주교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유진 서튼은 유일한 유색 인종(아프리카계 미국인) 후보로, 평신도원의 지속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성직자원에서 세를 얻는데 실패했다. 아마 관상기도와 영적 지도 전문가인 점이 평신도에게 설득력을 가졌을 법한데, 그의 경력에 나타나는 빈번한 자리 이동이 안정적인 사목 지도력을 바라는 성직자들에게는 미덥지 않았던 모양이다. 교구 사상 첫 흑인 주교의 기대가 사라졌다.

다른 동성애자 후보들에 대한 지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았다.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없겠지만, 이곳 교구의 성향으로 보아 동성애 문제가 표심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는 비치지 않는다. 이 문제보다는 이들은 자기들에게 필요하고 맞는 주교를 선택했다. 어쨌거나 올 여름에 열리는 미국성공회 관구의회는 큰 짐을 던 것 같다.

한편, 캘리포니아 교구 선거로 가려져 있던 이웃 교구 북-캘리포니아 교구도 오늘 새로운 주교를 선출했다. 이곳 CDSP 출신이자 교무국장이었던 베리 비스너 신부가 차기 주교로 선출되었다.)

드디어 내일로 다가왔다.

별로 큰 일이 아닐 수도 있는 한 교구의 주교 선거가 세계성공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미국성공회뿐만 아니라 세계성공회가 약 80여 개 교회를 가진 이 작은 교구에 주목하는 것은 단지 또 다른 동성애자 주교의 선출 가능성 때문이다. (성공회는 국교인 영국성공회를 제외하고는 교구의회를 통해 주교를 선출한다. 정교회도 대체로 주교를 선출한다. 로마 가톨릭은 바티칸에서 세계 곳곳의 주교를 임명한다.)

사실 이와 관련된 관심은 지난 2003년 미국성공회 뉴햄프셔 교구가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인 것을 밝힌 진 로빈슨 신부를 주교로 선출하고, 그 해 여름 미국성공회 관구의회에서 이를 인준한 이후 더욱 불거졌다. 이른바 “남반부 성공회 신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세계 성공회 최대의 교회인 나이지리아 교회 피터 아키놀라 대주교를 중심으로 하여 미국성공회 동성애자 결합의 축복을 예식화한 캐나다 성공회를 비난하며, ‘너희들이 안 나가면, 우리들이 나가서라도 교회의 신앙을 지키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기에 세계성공회의 분열이 초읽기처럼 비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된 저간의 복잡한 사정을 어찌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저마다 다들 한마디 거들만한 중요한 사안이고, 한국에서는 감정마저 격해져 이 사안에 대해 성직자들이 갖는 입장을 조사해서 ‘성직자 옷을 벗겨야’ 한다는 소수의 극렬한 반응까지 나오는 참이니, 아예 말 건네기가 무섭게 되어 버렸다. 이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미 다른 통로를 통해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 놓은 터이므로, 그전에 나누지 않았던 한 가지 이야기만을 언급하고 싶다.

그것은 이곳 캘리포니아 교구의 주교 선출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교 선출 과정 문제는 한국교회가 경험하고 있는 일이고, 이를 둘러싼 무성한 뒷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에, 도대체 다른 나라 형제 교회들은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고 배울 만한 것은 배워보자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교구는 원래 캘리포니아 전 주를 대상으로 한 선교 교구로 시작되어서, 그 동안 교구를 분할해 왔다. 현재는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샌프란시스코와 인근 베이 지역의 80여 개 교회를 관할하는 작은 교구일 뿐이다. 현 주교는 1979년 축성되어 27년간 미국성공회 사상 최장기 주교로 활동하고 있는 제 7대의 윌리암 스윙 주교이다. 그는 재작년 정년(72세)을 5년 앞두고 은퇴를 선언하여, 이 교구는 근 한 세대 만에 새로운 주교를 선출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주교 선출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주교의 은퇴 선언에 따라, 교구 상임위원회는 “주교 선출 위원회”를 구성한다. 이 위원회는 미국성공회 전역에서 주교 선거를 알리고 출마 지원서를 받아 약1년 동안 지원서를 검토한다. 지원서는 지원자의 사목 경력과 더불어 위원회가 제시하는 질문에 대한 지원자의 답변서가 상세하게 첨부되어야 한다. 이 서류검토를 통하여 4명에서 6명의 후보자를 정한다. 이후 여기에서 탈락한 지원자의 탄원을 검토하여 최종적으로 후보를 발표한다. 캘리포니아 교구는 5명을 후보자로 정한 뒤, 이후 탄원 과정을 통해 2명을 추가하여 발표했다.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7명이 후보자 가운데 3명이 동성애자라는 것이다(남성 사제2명, 여성 사제1명).

특기할 것은 주교 선출 위원회는 후보자를 선택하는 동안 특별한 영성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 여기서는 버클리에 있는 성공회 성십자가 수도회의 톰 슐츠 수사 신부님이 내내 이들을 영적으로 지도하셨다. 또한 지원자는 30세 이상이어야 하고 (사목 경력의 제한은 없다), 주교가 지원할 경우, 교구장 주교이든 보좌주교이든 이전 교구에서 최소한 5년 이상 주교직을 맡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원 심사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른바 “지원자 순회 청문회”이다. 실제로 교구 교인들에게는 청문회 전에 이들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얻도록 자료가 제공되며, 무엇보다도 주교 선출을 위한 식별의 기도가 교회 예배를 통해서 진행된다. 후보자 결정 이후 약 3개월 이후 공개 순회 청문회가 1주일 동안 거의 매일 교무구별로 이루어진다. 모든 후보자들이 이 기회를 통해서 성직자들과 교인들을 만나게 되며, 자신의 사목 비전과 더불어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된다. 나도 한차례 이 순회 청문회에 참석했는데, 약 400여명이 넘는 이들이 모여서 거의 대부분이 4시간 30분 동안의 시간을 자리를 지키는 것을 목격했다. 전언에 따르면 그 전날 샌프란시스코 그레이스 대성당에는 약 800여명이 모였다고 한다. 지원자에 대한 정보를 숙지한 이후 갖게 되는 공개 청문회의 과정이 주교 선출을 실제로 결정 짓는다.

주교 선출은 고지된 대로 5월6일 토요일에 그레이스 대성당에서 특별 교구 의회로 진행된다. 징계 중에 있는 이들을 제외한 교구 내 모든 현직 성직자들이 성직자원을 이루며, 평신도 대표들이 평신도원을 이룬다. 새로운 주교는 양원에서 과반수를 얻은 자로 선출되며, 양원의 과반에 이르기까지 그 날 중에 투표는 계속된다. 만일 당일 주교를 선출하지 못하면, 2주 후에 다시 투표하게 되고, 여기서도 주교를 선출하지 못하게 될 경우,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은 완전히 취소되고 후보자들은 사퇴하며, 새로운 주교 선출 위원회가 구성되어 모든 일정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한국의 경험과 비교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대목이다.

당선 가능성에 대한 입소문은 여기도 예외가 없다. 벌써 약 3명이 부각되고 있는데, 대체로 내가 순회 청문회를 통해서 얻게 된 생각과 비슷하다. 앨러바마 교구 보좌주교인 마크 앤드러스 주교, 워싱턴 D.C. 내셔널 캐시드럴의 유진 서튼, 그리고 보스턴 출신의 제인 굴드 등이다. 여기에는 논란이 되는 동성애자가 없다. 이야기 속에서는 꼼꼼히 그들의 사목 경력과 더불어 그들의 성격, 지도력 등에 대한 언급이 뒤따른다. 왜 어부지리가 없을까마는…

흥미로운 것은 세간의 관심과는 달리, 많은 이들이 여기에서 동성애자 주교가 선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2003년 관구 의회에서는 진 로빈슨 주교 인준이 몰고 온 논란을 미국성공회 신자들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기에 되도록이면 논란을 피하겠다는 심리가 작용할 것이란다. 실제로 얼마 전 미국성공회 주교원은 관구 의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윈저 보고서]의 권고를 되도록 충실히 이행하겠노라고 생각을 모았다. 어쨌든 두고 볼 일이다.

누가 선출되든 이 주교 선출이 관구의회가 열리기 전 120일 안에 일어나는 것이면, 모두 관구의회의 주교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 시간 밖으로 선출된 주교는 관구의회 인준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런 절차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 교구가 동성애자 주교를 선출하고, 관구의회가 인준하지 않으면, 교구는 새로운 주교를 선출하게 되는데, 이 경우 그 새로운 주교가 동성애자라 하더라도 다음 번 관구의회 120일 밖으로 선출될 경우, 그는 곧바로 주교로 축성된다.

주교 선출 위원회의 영적 지도 신부님인 토마스 슐츠 수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교 선출은 정치적인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비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분명히 거기에 현존하실 것입니다. 구약성서에 엘리야와 한 젊은 병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젊은 병사는 그 앞에 놓인 엄청난 군대를 보고 절망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는 엘리야의 비전을 보지 못합니다. 엘리야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군대를 포위하고, 이 작은 이들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대성당에 모이는 날 하느님의 천사들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섣부른 교리의 잣대와 자의적인 경험을 절대화한 눈은 정치적이기 십상이다. 성령의 활동이 가져오는 신비에 자신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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