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사상 첫 여성 관구장 주교 선출
주교 선출만이 뉴스거리는 아니겠으나, 사안에 따라서는 늦은 블로그 업데이트에 주교 선출에 관한 또다른 이야기를 소개하는 일을 마다할 수 없다. 더 이상 “첫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기사 제목이 안되려면, 당분간 이런 수식어 기사를 지금보다 훨씬 많이 접해야 하겠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 화이팅!
미국성공회 전국 총회(관구의회)는 제 26대 미국성공회 수좌주교 – 미국성공회 전체를 책임지는 주교이며, 세계성공회에서 미국성공회를 대표한다 – 로 올해 52세의 캐서린 제퍼츠 쇼리(Katharine Jefferts Schori), 현직 네바다 교구장 주교를 선출했다. 6명의 다른 남성 주교 후보들과의 경선에서 줄곧 우위를 달린 끝에 5차 투표에서 주교원의 과반수를 얻어서 당선된 그는, 곧이어 성직자-평신도원에서 90%의 찬성으로 인준을 받았다. 그는 올 11월 현 프랭크 그리스월드 주교를 뒤이어 임기 9년간 미국성공회를 대표하는 주교로 활동하게 된다.
이 일이 세계성공회에서 뉴스거리가 되는 까닭은 무엇보다 그가 여성 주교라는 점, 그리고 아직 세계성공회 내에서 심각한 논쟁을 유발한 동성애자인 진 로빈슨의 주교 인준에 찬성한 점, 또한 동성애자 커플의 결합을 인정하고 지지하고 있는 점들 때문이다. 남성-여성(gender) 그리고 인간의 성(sexuality) 문제는 세계성공회 내의 상충하는 견해 차와 더불어 다른 교회 전통과의 에큐메니칼 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성공회에는 여성 주교가 있지만, 관구를 대표하는 주교직을 여성이 맡기는 이번이 성공회 사상 처음이다. 현재 세계성공회 내에서 여성 주교가 있는 관구는 미국, 캐나다 그리고 뉴질랜드 성공회이다. 물론 다른 여러 관구들도 여성 주교를 선출할 수 있다. 미국성공회는 1974년, 논란을 불러일으킨 11명의 여성 성직 서품이후, 1976년 관구의회를 통해서 여성 성직을 공식화했으며, 1989년 메사츄세츠 교구에서 흑인-여성-페미니스트 활동가-저널리스트라는 딱지 위에 이혼녀라는 온갖 사회적 차별의 수식어를 견뎌내야 했던 바바라 해리스가 보좌 주교로 성품되어 세계성공회에 여성 주교의 시대를 열어 놓았다. 이후 현재까지 캐나다에 2명, 뉴질랜드에 1명의 여성 주교를 포함하여 세계성공회 안에 총 15명의 여성 주교가 있다.
현재 세계성공회의 절반 정도의 관구들만이 여성성직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 교회들 안에서도 여성 주교직은 또다른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1993년 여성 성직 서품 결정 이후 줄기차게 여성 주교 문제를 두고 논란을 벌여온 영국성공회의 경우, 작년에 열린 관구의회를 통해서야 여성 주교에 대한 모든 법적 장애물들을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이 일로 영국성공회 자체가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여전히 논쟁과 교회 분열의 불씨를 남기고 있거니와, 여성 사제 서품 이후 이에 반대하던 이들이 영국성공회를 떠난 것과 같이 영국에서 여성 주교가 선출된다면 같은 일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에 대비해서 여성 성직 자체를 반대하는 이들만을 위한 주교 혹은 영국 내 제 3의 관구 – 캔터베리와 요크 관구 이외의 -를 만들자는 의견이 일고 있는 참이다.
반대의 큰 이유 중에는 성공회 내의 전통과 신학적 논란과 더불어 다른 교회 전통들, 특별히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와의 에큐메니칼 대화에 큰 걸림돌이 되리라는 우려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 벌써부터 쇼리 주교의 수좌주교 선출에 대해서 이런 우려의 목소리가 오히려 영국성공회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터이고, 미국 내 보수파들도 쇼리 주교의 동성애에 대한 견해에 반대하는 곁에 이 문제를 덧붙여 새로운 수좌주교에 대한 공공연한 반대 성명을 내고 캔터베리 대주교에 자신들의 견해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나 정교회도 한마디 거들 것이 분명하다.
교회 내의 여성의 지위와 관련된 문제, 특별히 성직 문제는 교회사 안에서 지속되고 있는 해묵은 논쟁이며, 그 찬반의 논리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반대의 편으로서는 “여성은 교회 안에서 머리가 될 수 없다”는 분명한 성서적 기록을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게다가 주교들의 원형이라 할 열 두 사도들에게는 여성이 없었다는 것과 이를 지켜온 교회 전통들은 사도권의 계승자로서 남성적 주교직의 상에 여성이 결코 부합할 수 없다는 전통적인 교리를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찬성하는 이들은 성서와 전통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이런 주장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성서 기록의 상황과 문화에 대한 연구, 그리고 교회 전통의 사회적 정치적 연구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여성이 성서와 교회 전통에서 그 자리를 박탈당해왔다는 점들을 주시한다. 그리하여 복음의 재상황화 – 재맥락화의 입장에서 성서와 전통을 바라보고 적용하면 여성 성직과 주교직은 오히려 ‘복음’을 회복하는 일이다.
한편, 캐서린 제프츠 쇼리 주교의 이력은 다채롭다.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나 부모와 함께 초등학교 시절에 성공회 신자가 된 그는 대학생 시절 신앙을 떠났다가, 친한 친구의 죽음과 함께 과학도로서 과학이 인정하고 발견하는 신비와 초월에 대한 경험과 통찰 속에서 다시 신앙을 찾았다. 500시간 이상의 비행 기록을 갖고 있는 파일럿 출신이기도 한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오레곤 주립 대학교에서 해양학으로 박사 학위를 얻고 연구와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다가 성직 소명을 식별했다. 1994년 캘리포니아 버클리 성공회 신학교 CDSP의 성직 과정을 마치고 사제 서품을 받은 후, 2001년에 네바다 교구장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5년 후인 올해 수좌주교로 직무를 수행하기에 이르렀다(미국성공회의 경우 주교는 자기 교구에서 최소한 5년 이상을 임직한 후에는 타 교구나 수좌주교 선거에 재출마할 수 있다.).
사족: 개인적으로 그와 안면식 정도를 갖고 있는 것은 그가 이곳 버클리 성공회 신학교 출신으로 학교 재단 이사 가운데 한 분인데다, 몇몇 중요한 포럼과 행사의 주요 강사로 자주 방문을 했고, 미국성공회 아시아 사목회의에서도 경청자와 후원자로서 여러 차례 참여한 탓이다. 특별히 그는 세계의 빈곤과 질병 문제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아프리카 교회와 협력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우연히도 네바다 교구는 케냐 성공회 마차코스 교구와 자매 결연을 맺어 서로 돕고 있는데, 그의 초청으로 마차코스의 조셉 카누구 주교가 네바다와 이곳 신학교에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조셉 카누구 주교는 내가 미국으로 건너오기 직전 세게성공회 복음과 선교회의 차 케냐에 들러서 만나 우의를 다진(^^) 3명의 “요셉”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곳에 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수소문해서 다시 만나게 되었던 정다운 분이기도 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신학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 네바다 교구와 마차코스 교구는 여러모로 상반된 이해와 견해를 갖고 있다. 카누구 주교와 나눈 짧은 대화를 통해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카누구 주교는 교회가 사회 속에서 담당해야 할 복음과 선교의 사명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열망 속에서 교회가 만나게 된다는 생각을 되새겨 주었다. 쇼리 주교 역시 수좌주교로서 사회와 세계 속에서 이러한 교회의 선교 사명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어 일하겠노라고 밝혀 온 바였다.
교회를 둘러싼 산재한 논란과 위기 속에서 그는 어떤 지도력을 발휘할까? 그는 수좌주교 출마 인터뷰에서 세례 예식에 있는 기도문의 내용을 들어 그리스도교 신앙을 “기쁨과 경이로움”의 길이라고 말했다. 이 고통스러운 논쟁과 분열의 위기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기쁨과 경이로움”을 가져올 지를 물으면서, 최소한 우려와 걱정보다는 이 일들이 보여주는 도전과 신비에 우리 스스로를 열어 놓는 일이 우선이겠다.
June 24th, 2006 at 6:31 am
주 신부님, 오랫만입니다.
대한 성공회는 제가 기억하기로는 90년대초 김성수 주교님 계실 때, 관구 승격을 추진한 줄로 아는데요, 지금은 한국 관구로 독립되어 있겠지요?
(“질문 있습니다”를 한번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는 것을 다시 질문드리는 거나 아닌지 … .)
저는 지금 논문 초고 막바지에 있습니다.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10월 쯤 다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San Francisco에 들러서, Grace Cathedral, St Gregory of Nyssa 등도 방문해 보고, 신부님도 한번 뵐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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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7th, 2006 at 1:44 pm
루시안님, 예 오랜만입니다. 논문 막바지라니 고생이 많겠습니다. 잘 마무리하셔서 좋은 성과를 거두시기를 바랍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들르신다면 한번 뵐 기회가 있겠군요. 언급하신 두 교회의 경우는 가능하면 주일에 방문하시면 좋을텐데요.
참고로, 한국성공회의 관구 승격은 1992년에 결의되어 관구 출범을 선포한 뒤, 1993년 4월에 초대 관구장으로 김성수 주교님이 취임했습니다.
주님의 평화를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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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1st, 2006 at 8:42 pm
저는 가톨릭대에서 신학 석사 과정을 밟고
교회 관련 일을 계속해 왔지만…
이런 성공회의 모습이 아주 부럽게 느껴집니다.
여성 사제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더니
성공회로 옮기라더군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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