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니콜 스미스, 그리고 인간 존엄의 시선

때 이른 죽음은 그 경위야 어떻든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연이어 보도되는 연예인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화면 밖의 시청자들을 위해 “연기”하는 삶과 이에 따른 사회적 명성을 통해 부수적으로 얻게 된 또다른 삶이 서로 부대껴 만들어 낸 그림자들이 얼마나 무거운가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이들의 선택과 운명이 어떠한 것이든 바깥에서 이를 한껏 소비한 이들의 시선은 이 죽음들 앞에서 어떤 것이어야 할까?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일간지에도 소개되었던 안나 니콜 스미스의 죽음. 이에 한 신앙인의 글은 이러한 죽음들에 대해 가장 인간적인 시선, 아니 인간으로서 깊은 존중의 시선을 갖출 것을 부탁한다.

글을 쓴 다이애나 버틀러 배스(Diana Butler Bass: 성공회 신자로 미국근현대 교회사 연구로 학위를 얻어 여러 학교에 가르치고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이 사람에 대해서는 대해서는 한달 쯤 후 그를 여러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있으니, 그때 자세히 소개하기로 하고)는, 39살의 나이에 20살 난 아들을 먼저 보낸 뒤, 다시 6개월 된 아이를 세상에 남기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플레이보이 모델 출신 안나 니콜 스미스에 대한 추모문을 블로그에 실었다.

Diana Butler Bass: Paying Respects to Anna Nicole Smith

그는 수년 전 자기 딸의 세례식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성공회 세례 언약의 한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다.

“당신은 모든 사람들 안에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힘쓰며,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겠습니까?”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그렇게 하겠습니다.”
(미국성공회 기도서 305쪽, 참조 한국성공회 기도서 313쪽)

“그리스도교 전통은 정의와 평화를 모든 사람들이 지닌 존엄성에 대한 존중의 행동으로 연결시킨다. 모든 창조물들이 존엄하며, 하느님과 관계맺고 있으며, 사랑으로 조성되었다고 믿으며, 우주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이 생각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윤리의 핵심을 이룬다. 창조의 그물망에 놓여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존중은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인간 존엄에 대한 깊은 영성이 없이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고자 하는 행동은 권력의 정치로 미끄러지고 만다. 세례 성사가 던져주는 강력한 의미는 이러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없이는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분투하는 어떤 동기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나 니콜 스미스는 섹시스타로서, 그리고 갑부와 결혼한 후 일어난 재산 상속을 둘러싼 법정 싸움을 통해서 세상의 농담거리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존엄을 어떤 식으로든 상품으로 내다 팔았고, 또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적절히 소비했다. 그가 최근 인터뷰에서 언급한대로 모든 사람들이 실은 “그녀의 한 부분씩을 훔쳐갔다.”

이러한 처지에 그의 죽음은 또다시 하나의 이야기거리로 미디어에 넘쳐난다. 그에 대한 복잡다단했던 그의 삶은 선정적인 일대기로 재구성된다. 이제 그의 죽음마저도 나와는 관계없는 텔레비전 너머의 불행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로 소외되고, 그래서 내가 그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라고 자신의 삶을 다독인다. 이러한 처지에 한 사람에 대한 존엄의 문제는 잊혀지고 만다. (보다 근본적인 성찰을 위해서는 수잔 손탁의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를 보라!.)

배스의 안타까움은 이제 살아있는 이들을 향해 있다.

“지금 나는 오로지 세례 언약만을 생각한다. 한 여성이 죽었다. 한 어머니가 아기를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농담의 대상이 아니다. 그녀는 우리 인간 가족의 상처받은 한 자매였다. 그런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데도, 사람들은 그 안에 깃든 인간의 존엄을 존중해주지 않는다.”

3 Responses to “안나 니콜 스미스, 그리고 인간 존엄의 시선”

  1. 참맑은물 Says:

    정말 따뜻한 분 이시네요,
    신부님.

    [Reply]

  2. 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 Blog Archive » 흑인 설교 전통과 미국 정치 및 문화 Says:

    […] 모든 백인들이 그런 건 아니다. 언젠가 한번 소개한 적이 있거니와, 실은 이 이야기도 다이애나 버틀러 배스(Diana Butler Bass)의 성찰 깊은 글을 […]

  3. 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 Blog Archive » 죽음과 삶, 그리고 사랑 Says:

    […] 아마 삶의 자리가 달랐던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처음의 충격과는 달리, 세상을 떠난 한 사람에 대한 응시보다, 이내 그와 연관된 이야기거리로 관심이 옮아간다. 때로 분노하지만, 그 분노는 딱히 서른 생애를 이 땅에서 몸부림쳤던 삶 자체의 숭고함에 맞춰진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시간으로 에둘러 실체를 가리고, 귀 막고, 덮어두더라도 그 분노는 지속되지 않는다. 죽음과 삶 자체보다는 이야기거리고 옮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이 가십거리가 되면,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을 추모하지 않고, 그 이야기를 소비하게 된다. 우리가 늘 그들 삶의 한부분을 계속해서 소비하고 살았던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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