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에 받은 편지 하나
한국의 친구 신부님에게서 문안 편지를 받았다. 사순절에 맞추어 똑바로 살라는 죽비로 들어야겠다. 서툴게 관구 홈페이지에 올린 글로 생겨난 논란을 옆에서 보고 안타까워 했노라고 위로도 전했다. 그러나 정작 내 부끄러움이 깊어진다. 이 무렵에 신부님 자신도 내내 부끄러운 자화상을 그대로 드러내 나누려 했다. 굳이 전화하여 이런 부끄러움을 되돌아보며 사순절을 보내고 싶노라면서 허락을 받아 그 부분을 옮겨 본다.
얼마전 주 신부님 맘 고생이 심했을 것 같아서 어떻게 위로를 하나 하고 고심하다가 그냥 지나쳤습니다. 관구 홈페이지에서 일고 있던 논쟁을 보고 나도 한 숟갈 보태는 심정에서 주 신부님 입장에 지지를 보내는 글을 올릴까 하다 그냥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글 재주도 없지만 신앙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해 또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중요한 현안들에 대해서 워낙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상에서 논쟁을 한다는 게 제게는 익숙치 않을뿐 아니라 그들과 논쟁해서 얻는 것이란 게 결국엔 깊은 상처입은 내 마음밖에 남지 않는다고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주 신부님 혼자서 고군 분투 하시는 걸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작심하고 공격적으로 따져묻고 비수를 날리는 이들에게 일일이 점잖케 대꾸하시며 사제로서 품위를 지키시는 걸 보면서 힘겨워 하시는 주 신부님을 뵙는 듯 했습니다.
내가 좀 저만치 가면 그만큼의 여유가 우리 신부님들께도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차라리 건방진 생각이 앞섰던 일이었다. 또한 논란의 초점을 분명히 해야 우리 신앙의 깊이와 넓이를 키울 수 있겠다 싶어서 설익은 이야기나마 나누려했을 뿐이었다. 어쨌든 그게 내 뜻하는 만큼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역시 내 부족함이 큰 탓이리라. 그러나 힘겨웠던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었다. 나중에 털어 놓을 기회가 있겠다.
친구 신부님은 교회의 부끄러움을 토로하고자 마음 먹은 듯하다.
**교구는 갈수록 재밌어 집니다. 다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곳이라서(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터 놓고 뭔가 진지하게 소통하기가 쉽지 않은 그런 곳이 돼가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우리들 안에 서로가 서로에 대해 무시하고 폄하하는 그런 풍토가 갈수록 짙어 지는 듯 여겨집니다. 나 아니면 안돼라는 식의 오만함과 독선의 힘이 갈수록 커져서 자신 이외에는 **교구에서 제대로 일을 할 만한 사람들이 없는 것 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저 같은 사람들은 발 붙일 곳이 별로 없는 곳이 돼가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사람들과 교류를 하지 않고 지내지요.
웬 욕심과 지배욕들이 그리 강하고 많은지… 사제들을 가만 살펴보고 있노라면 우리 자신들이 뭔가에 미친듯 허기진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무서울 정도입니다. 여유라곤 보이지 않는 삶의 모습을 보면서 뭔가 단단히 잘못가고 있구나! 하는 탄식과 두려움이 밀려오곤 합니다.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는 듯 한데 제 정신들을 못차리고 살고 있는 듯 보이지요.
예수님께서 늘 깨어 있으라! 하신 말씀이 지금 우리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라고 여겨집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지요.
삶에서 행복과 불행 그리고 우리들이 그렇게 바라마지 않는 복이란 게 하늘에서 하느님이 이쁜 놈들에게 뚝 떨어뜨려주는 그런 게 아니라 내 마음에서 내가 창조해 내는 나의 창조물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내 마음으로부터 일체의 모든 것이 시작되고 창조됨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이지요. 일체유심조라 했지요… 주 신부님께서도 마음로부터 짓는 행복과 복을 많이 많이 창조하시길 빕니다.
광야에서 유혹받으신 예수님의 복음 이야기를 우리 성직자들은 신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했을까? 내 자신에게 이 유혹 이기신 이야기를 다시 돌려서 새김질하는 중이다.
사순절 편지 감사합니다, 신부님. 이어서 전화로나마 잠시 바다 건너 나눈 목소리가 정말 반가웠어요. 주신 말씀에서 많은 걸 다시 배웠습니다. 신부님도 마음에 많은 행복을 만들어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