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 그리고 경계에 선 파수꾼

매주 한국에 계신 신부님들께 보내드리는 설교 자료를 빌미 삼아, 짧은 생각을 보탰다.

대림절기는 역시 설렘과 희망의 절기이지만, 한편으로는 도전의 절기이기도 하군요.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도덕이 밥먹여 주냐? 경제와 추진력이 최고야!”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기세를 높이게 된 모양입니다.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걸 투영해 누군가를 만들어보자고 하는군요. 우상이 하나 서고 있습니다.

이런 우상의 등장을 물 너머 하릴없이 지켜보면서, 우리 교회도 이런 세태에, 현실이니, 시대정신이니, 생존을 위한 변화니 하는 미명을 들어 은근슬쩍 따라 가는 것은 아닌가 걱정합니다.

오늘 성서 주해에서 보듯이, 신약학자 보른캄은 세례자 요한을 이렇게 잘 정의했더군요.

“그는 영원한 시간을 가르는 경계에 선 파수꾼이다”

우리가 서있는 경계는 어디일까요? 그리고 우리가 감당하겠노라고 나선 파수꾼의 사명이 무엇일까요? 이 질문들이 목숨을 내걸고 감옥에 갇혀 자기 생의 마지막 순간에, “오실 그분”을 재확인하고 결단하려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과 겹치는 저녁입니다.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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