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하느님의 고통 나누기

게쎄마네에서 예수께서 물으셨다.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었느냐?” 이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하느님께 기대하는 바에 대한 전복이다. 인간은 이제 하느님 부재의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고통을 나누라는 부름을 받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 없는 세상에서 실제로 살아가야 한다. 어떤 종교적인 방법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 이 하느님 부재를 속여 넘기거나 설명하려 하지 말 일이다. 인간은 ‘세속’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로써 하느님의 고통을 나누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방법 안에서 종교인이 된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방법에 의지해서 자신을 어떤 존재(죄인, 참회하는 자, 혹은 성인)로 만든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 인간이 된다는 것, 그러나 그저 그런 인간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만들어 내시는 그 인간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은 어떤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이 세속 사회 속에서 하느님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다.

디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의 [옥중서간] Letter and Papers from Prison에서

6 Responses to “성주간: 하느님의 고통 나누기”

  1. 민노씨 Says: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은 어떤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이 세속 사회 속에서 하느님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

    세속 사회와 종교적 신앙세계를 분리하는 분들에게는 중요한 각성을 주는 지적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세속 사회에서의 출세를 위해 교회를 이용하는 분들(고소영)이야 이런 ‘말씀’을 들어도 콧방귀도 뀌지 않을테지만요… 두고 두고 음미해야 하는 지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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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r. joo Says:

    민노씨 / 마틴 부버의 [나와 너]를 좋아하시는 민노씨께, 본회퍼의 [옥중서간]도 추천합니다. 우리말 번역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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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혜이안 Says:

    제 몸과 마음, 모두 다 콕 찔려 주는 글이네요.

    특히 이 말씀이요,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 없는 세상에서 실제로 살아가야 한다. 어떤 종교적인 방법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 이 하느님 부재를 속여 넘기거나 설명하려 하지 말 일이다.”

    신부님, 복된 부활 느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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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fr. joo Says:

    혜이안 / 하느님 부재를 직면하여 견뎌나가며 어떤 고통과 연대할 때, 부활이 우리에게 선물로 온다는 선언이라고 봐요. 혜이안님도 복된 부활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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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 Blog Archive » 성삼일 - 다시 들춰본 생각 Says:

    […] 성주간: 하느님의 고통 나누기 […]

  6. via media 주낙현 신부의 성공회 이야기 » Blog Archive » “나는 누구인가? – 본회퍼 축일 Says:

    […] “인간은 이제 하느님 부재의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고통을 나누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인간은 ‘세속’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안에서 인간은 하느님의 고통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종교인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방법에 의지해서 자신을 죄인이나, 참회하는 자 혹은 성인으로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한 인간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만들어 내시는 그 인간이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것은 어떤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이 세속 사회 속에서 하느님의 고통에 참여할 때 가능합니다.”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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