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노벨상, 그리고 자본의 똘마니들

폴 크루그먼, 노벨 경제학상 수상” 이른 아침에 인터넷 신문으로 듣는 소식이다. 노벨상에 관심 갈이 없지만, 폴 크루그먼이 올해의 수상자라는데 눈에 번쩍 뜨인 것은, 경제학을 알아서도, 노벨상을 우러러봐서도 아니다. 그저 눈에 익숙하고, 그 통찰력으로 세상살이 하나씩을 알게 해주는 한 칼럼니스트의 이름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에 애초에 관심이 없는 건 내 개인적인 무식때문이겠지만, 미국 경제, 금융 위기의 한가운데서, 가파르게 오른 물가와 범죄율을 살갗으로 느끼는 상황에 이 소식은 같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또 다른 사람을 떠오르게 했다. 1980년대인가 90년대인가 밀턴 프리드만이라는 노골적으로 발가벗은 자본주의 경제학자가 같은 이름의 상을 받았다. 이 프리드먼은 미국 레이건 정부와 영국 대처 정부의 강폭한 자본가들의 세상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인물이었다. 그의 신자유주의 이론이 지배한 지난 25년 간의 결과물이 현재 미국 금융 위기이라는게 여러 사람들의 말이다. 그는 행복하게도 이 지경을 보지 않고 수를 다하고 재작년에 죽었다.

폴 크루그먼이 노벨상 선배인 프리드먼과 어떤 대척점에 있는지 상세히 판단한 능력이 내게는 없다. 최소한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 이론을 신봉하는 부시 정권과 그와 쌍둥이인 맥케인-페일린 후보의 경제 정책에 대한 가장 신랄한 비판자인 크루그먼을 보는 것으로 가늠할 정도다. 경제학에 문외한인 탓인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그의 정치 문화에 대한 분석이 빛난다. 영어를 충분히 즐길 만한 능력이 없는 탓이겠으나, 우리나라의 정운영에게는 못미쳐도(;-)), 그를 더이상 못읽는 처지에, 참아주고 읽을 만하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크루그먼은 오늘도 바쁘게 글을 올린다. 세계 경제까지 위기에 빠뜨린 워싱턴 부시 정권보다, 오히려 런던의 브라운 정권이 더 발빠르게, 그리고 좀더 정확하게 사태를 보고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애들의 눈을 가리는 것은 “사적인 것(민간소유)은 좋고, 공적인 것(공공소유)은 나쁘다”(private good, public bad)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그는 잊지 않는다.

이 이데올로기는 여느 자본주의의 기본 이념이겠으나, “하나님이 축복한 나라”에 우리나라를 통째로 봉헌하고 싶어하는 우리 정부의 똘만이들에게는 더 없는 경전이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이 이데올로기의 똘마니들에게는 그들 소수의 “집단적 개인”말고는 “함께 견디고 살아가야 할 우리”는 없다.

한편, 이 “우리”라는 점에서 폴 크루그먼이 그 비평의 지평을 넓혔으면 좋겠다(그를 잘 몰라하는 말이라면 다행이겠고). 미국이 제국으로서 세계 경제의 중핵인 것은 사실이나, 그 영향 아래서 살아가는 세계를 “우리”라는 큰 틀과 가치에서 보고 살폈으면 한다. 얼치기 세계주의자인 토마스 프리드먼 같은 이에게 세계 문제 분석을 내 맡기지 말라는 것이다. 내키지 않으면서도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를 그가 받은 노벨상에 붙여주고 싶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때문이다. 같은 신문의 니콜라스 크리스토프 같은 세계에 대한 지평과 연민과 경험이 그에게서도 드러나기를 바란다. 그러니 상금으로 세계 여행도 많이 하시라. 축하한다.

7 Responses to “폴 크루그먼, 노벨상, 그리고 자본의 똘마니들”

  1. 민노씨 Says:

    예전에 정운영씨께서 한겨레에 칼럼을 쓰시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 )
    경제학에 문외한인 저같은 독자도 충분히 글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명칼럼이었다는 잔상이 흐릿하게 남아 있네요.

    물론 그 후에 (어찌된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중앙일보로 가셔서 좀 놀랐지만요..

    추.
    주신부님 글을 읽으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주신부님께서도 참 명칼럼니스트인 것 같습니다. 글이 어쩜 이리도 유려한지요.. 그리고 글 사이사이에서 느껴지는 신부님의 호흡이랄까.. 그런 부드러운 (때론 격정적이지만요) 느낌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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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minoci's me2DAY Says:

    민노씨의 느낌…

    via media :: 폴 크루그먼, 노벨상, 그리고 자본의 똘마니들 (주낙현) : 주낙현 신부님도 참 명칼럼니스트라는 생각이 문득… : )…

  3. fr. joo Says:

    민노씨 / 사람 쑥스럽게 하는 특기가 있군요 ^^;

    갑자기 정운영 같은 분의 글들이 그립더라고요. 3년 전 지병으로 세상은 뜬 소식에 이상하게 마음이 멍멍했어요. 민노씨처럼 한겨레에서 읽고, 대학 강연에 초대받아 왔을 때 직접 들어본 것이 전부인데도, 아마 가장 즐겨읽었던 칼럼리스트였던 탓일거에요.

    중앙일보에 들어간 후 나온 논조때문에 변절이니 뭐니 했던 소식을 늦게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좀 둘러 보았더니 그분의 삶에 여러 곡절이 있었던 것 같더군요. 그런데도 저는 김수행 같은 사람이 추도사랍시고 쓴 글에 기분이 더러워져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학문적인 이견이 어느 정도였는지 모르나 인연을 끊었던 듯한 대사나 – 뭔가 변명처럼 들리던데 – 자신으로 학자로, 정씨를 저널리스트로 비교하는 태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김씨의 ‘기막힌’ 글 품새때문이었던 같아요.

    그런데, 왜 여기서 갑자기 흥분하고 있지? 아마 미미하지만 정운영의 글에 빚진 듯한 친밀함이 밀려든 탓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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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민노씨 Says:

    남겨주신 링크 덕분에 뒤늦게 읽습니다.

    아주 어릴 적에 김수행씨께서 번역한 [자본론] 및 그 해제를 억지로 억지로 읽다가 그만뒀던 기억이 나네요. 한길사에서 출판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런 추억 때문인지 몰라도 학자로서의 김수행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해도 맞을텐데, 왠지 김수행씨에 대해선 호의적인 감정이 남아 있었습니다. 어린 맘에 저 어려운 걸 ‘번역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로군!’ 이런 순진한 마음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링크로 남겨주신 추도사는 몹시 거칠고, 투박하다 못해 주신부님께서 격한 실망감을 표현하기에 족할 정도로 불필요한 언급들, 너무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독설들도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제가 좋아하는 블로그들 가운데 경제에 꽤나 해박한 블로그들이 있는데요. 그 블로그들의 경제 관련 글들은 제반 지식이 없는 경우에는 거의 읽기가 고통스러울만큼 난해해서… 그런 점이 참 아쉽더랍니다. 물론 관련지식을 어느 정도 아시는 독자들께서는 충분히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하면서, 또 글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 그런 글들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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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바우로 Says:

    칠레를 동물의 왕국 그리고 피바다로 만든 피노체트를 가리켜 칠레경제를 부흥시킨 마법사라고 칭찬한 프리드먼같은 바보놈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는 것을 노벨이 알았다면 아마 노벨상 제정을 후회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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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monad Says:

    형, 나야 세영이. 여전 하구나. 형은…나도 여전해.
    나 회사 옮겼어. 40일 전에. 한겨레로. 문화부에 있어. 학술담당이야. 주말엔 문학기사 쓰고. 작년에 이재정 장관 만난 자리에서 형 얘길 했더니 버클리에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한국 왔어? 보고 싶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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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fr. joo Says:

    monad / 그래 반갑네. 작년 가을이랑 올 여름에 갔을 때도 여철이에게 물어서 전화했는데 안받더라. 신문사 옮겼다고는 들었는데 한겨레로 간 줄 몰랐어. 최근에 쓴 기사들 재밌게 읽었어. 나도 보고 싶으니, 여철에게 우선 전화 좀 주시게. 자세한 이야기는 이메일로 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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