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관 게이트’ – 몇 가지 생각
앞서 적은 일련의 사태와 논란은 세계 성공회에 대한 이해에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 또 영국 성공회(캔터베리 대주교)의 처지도 이해할 만한 구석이 많다. 한편, 영국 성공회와 미국 성공회의 서로 다른 역사적 발전과 교회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다름은 이 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다. 성공회는 같은 전통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맥락에서 역사적인 경험을 거치며 서로 겹치면서도 다른 신학을 발전시킨다. 이 점들은 세계 성공회 여러 관구에도 적용된다. 역사적 경험과 그 신학화 과정은 전통의 연속과 단절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갈등의 과정이기도 하다. 사실, 이것이 성공회가 자신의 독특한 신학과 신앙의 전통과 실천을 발전시키는 태도요, 방법이요, 길이다. 다시 말해, 성공회는 교리와 치리를 위에서 내리는 교도권(magisterium)을 거부하는 교회 전통이요, 개인들의 모임(congregation)보다는 공동체의 네트워크(교구:diocese)를 교회 단위로 생각하여 그 네트워크가 처한 맥락에서 나누는 하느님 경험을 통해서 교회의 신학과 실천을 발전시키는 교회 전통이다. 이런 전통의 특성을 되새기며 이 사안도 봤으면 한다.
1. 여성 주교 – 영국 성공회의 고민
세계 성공회의 절반은 아직 여성 성직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여성 성직을 서품하는 나머지 절반은 다시 여성을 부제(deacon)까지만, 사제(priest)까지만, 그리고 주교(bishop)에게도 열어 놓은 교회로 나뉜다. 성공회의 여성 성직은 1944년 홍콩의 리 팀 오이(李添嬡: 1907-1992) 사제 서품 이후 줄곧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여성 성직 운동과 더불어 1977년 이후 미국 성공회는 여성 성직을 인정하기에 이르렀고, 영국 성공회는 그보다 한참 뒤인 1992년에 허용안을 통과시키고, 1994년 첫 여성 성직 서품이 이뤄졌다. 이때 영국 성공회 내 보수파들 일부가 성공회를 떠나 천주교로 넘어가기도 했다. 이후 여성 주교직이 내내 논란이 되었지만, 실제로 2014년이면 여성 주교직 허용이 확실시된다. 그러나 영국의 잔류 보수파(이른바 ‘성공회-가톨릭주의자’ 일부와 ‘복음주의자’ 일부)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 주교직이 시행되면, 성공회를 떠나겠노라 위협한다.
이런 처지에서 그들을 달래고 있는 영국 성공회의 입장이 참 난감하다. 힘겹게 대화를 이끌고 있는 처지에서, 아무리 다른 나라 성공회의 주교라고나 하나, 여성 주교가 영국 성공회 안에서 ‘주교’로서 공식 행동을 보이면 꼬투리 잡는데 명수들인 보수파의 눈을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캔터베리 대주교는 이 점을 고민하셨을 것이다. 주교관을 쓰지 말라고 요청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을 것이라 짐작한다. 로완 윌리암스 주교 자신은 여성 성직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분이다. 그러나 교회 전체를 아우르는 처지에서 난감한 처지였을 것이다.
2. 주교의 상징
그렇다면, 실제 주교가 주교관을 쓰지 않는다고 주교가 아닌가? 주교관만 주교를 상징하는가? 주교가 입는 자주색 성직 셔츠나 캐석(성공회에서는), 주교 십자가, 주교의 반지는 문제가 안 되는가? 쇼리 주교는 주교관을 쓰지 않는 대신 주교관을 왼쪽 옆구리에 끼고 순행했다. 자주색 셔츠도 입었고, 주교 십자가 목걸이로 걸었고, 주교 반지도 끼고 설교를 하고 성찬례를 집전했다.
3. 주교관(mitre): 형평성 문제
영국 성공회가 여성 주교직을 ‘아직’ 인정하지 않으니, 어떤 여성 주교도 영국 성공회 안에서 주교인 것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영국 성공회는 그 원칙을 지켜 왔는가?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쇼리 주교는 이미 그보다 몇 년 전에 영국의 다른 주교좌성당에 초대받았고, 성찬례는 집전하지 않았지만, 주교관을 썼다. 영국 성공회를 방문하여 전례에 참여한 다른 여성 주교들도 주교관을 쓰는 데 문제가 없었다. 다른 교단의 주교(스웨던 루터교회 같은) 주교가 영국에 방문하여 전례에 참여했을 때도, 주교관을 쓰지 말라는 요청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전에 없던 일이 쇼리 주교에게 일어났으니, 논란과 의혹이 커질 만하다.
그 ‘원칙’이라는 것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교직이 인정되지 않는 곳에서는 주교직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주교직을 드러낸다고 해서 다른 교구에 가서 그 교구를 치리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회에서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다른 교구의 주교는 자기 교구를 떠나서는 주교장(crosier)을 쓰지 않는다. 치리권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교장을 치리권의 상징이 아닌 다른 상징, 즉 관구의 대외적인 상징으로 여겨 사용한다면 다른 문제이겠으나, 그런 일은 예외적이다. 주교관을 쓰는 것은 해당 교구의 주교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성찬례를 집전하는 것은 굳이 주교로서 집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제이면 집전할 수 있다. 그 기능에서 사제이니, 주교의 성찬례 집전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두 번째 문제는 캔터베리 대주교 당신 자신의 사례에서 더욱 불거진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영국 천주교의 몇몇 행사와 전례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때 윌리암스 대주교는 주교관을 썼다. 천주교는 아예 성공회의 성직을 인정하지 않는다(천주교 교황령 ‘Apostolicae Curae’, 1896). 1896년 이후 천주교는 성공회 성직을 인정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캔터베리 대주교는 주교의 상징인 주교관을 천주교 전례에서 썼다.
여기까지 오면, 영국 성공회 내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금세 접게 된다. 그 처사가 이해할 수 없으며, 일관성도 없기 때문이다.
4. 동성애자 서품 문제와 미국 성공회
아마도, 이 사안은 한 달 전에 있었던 동성애자 주교 성품 문제, 그리고 뒤이은 캔터베리 대주교의 미국 성공회에 대한 조처, 쇼리 주교의 미국 성공회 입장 등이 오가면서 불거졌을 것이다. 동성애자 주교 성품이라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미국 성공회의 수장인 의장 주교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더욱 주교관 문제와는 더욱 관련이 없는 문제이다. 그것은 동성애자 주교 자신도 아니요, 그 성품을 수행한 주교와 그 교회의 대표로서 어떤 책임을 물을 수는 있겠으나, 그 자신의 주교직을 드러내는 것을 금지할 이유는 아니다.
5. 삼성직 서품 확인 문서 요청
많은 이에게서 공분을 일으킨 것은 주교관 문제뿐만 아니라, 쇼리 주교에게 삼성직 서품의 유효성을 증명한 문서를 요구한 것이었다. 사안 자체로 보면, 영국 성공회에서 마련한 한 장짜리 문서에 내용을 적어 서명해서 제출하는 단순한 일이기도 하다. 실제로 성공회에서는 다른 교구의 성직자가 자기 교구에서 성사를 집전하려는 해당 교구장 주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나 역시 이곳 캘리포니아 교구에서 성사 집전권을 요청하여 허락받았다. 중요한 절차이다. 자기가 성공회 성직자라고 우긴다고 될 수 없는 일이다. 성공회의 각 교구 혹은 관구 법에 따라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사실 확인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널리 알려진 관구장 주교에게 이것을 요구하는 것이 바른 처사인가? 게다가 이전에 다른 나라의 주교들, 특히 관구장 주교들이 그런 절차를 밟은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미국 성공회로서는 환대의 정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만하다.
6. 캔터베리 대주교의 두려움?
공교롭게도, 쇼리 주교의 설교는 이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문제는 ‘타자’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 점에서 보면, 캔터베리 측의 대응(이 문제는 람베스 궁에서 따로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관여된 일이 아니라는 말인가? 두고 보면 알 일이다), 나아가 그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가 보여 준 세계 성공회 일치 문제에 대한 처리 방법의 감지할 수 있다.
나는 우선, 캔터베리 대주교의 신학적 저술과 언설이 이러한 교회 행정적 치리와 여러 면에서 모순된다고 생각한다. 좀 더 비판적인 신학자들은 여러 논문에서 애초에 윌리암스 대주교의 신학적 논리, 특히 그의 교회 이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독서와 분석이 깊지 못한지 몰라도, 나는 윌리암스 대주교의 신학에서 좀 더 넓은 지평을 발견하곤 했다. 그러나 어떤 두려움이 대주교로서 행정적 처사에선 그의 혜안과 영안을 막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두려움은 ‘교회의 가시적 일치’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보인다. 영국 성공회 내적으로는 성공회를 떠나겠다는 보수파들의 위협에 직면하고, 외적으로, 즉 세계 성공회 안에서는,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의 보수적인 주교들이 분열의 가능성으로 위협할 때,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시는 것 같다. 다양한 맥락에서 다양하게 드러나고 누리는 하느님 경험을 인정하지 않고, 어떤 교리적 획일성을 통해서 ‘일치’를 주문하고, 그것에 벗어나면 분열을 불사하겠다는 생각은 이미 분열주의적인 생각이다. 여기서는 일치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윌리암스 대주교는 바로 그들을 붙잡는 일에서 일치를 찾고 있는 듯하다.
지난 식민주의 정책과 식민주의적 선교에 대한 죄책감이 팽배한 탓일까? 몇몇 아프리카나 아시아 교회의 행태에 대한 그의 무비판적인 태도는, 사회 정의와 하느님 나라에 대한 그의 신학적 논지와 주장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다. 아프리카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정말 문제를 보려면, 가난하고 억압받는 아프리카인들을 중심으로 두고, 그에 대해서 아프리카 교회의 행태와 실천이 아프리카인들에게 어떤 하느님의 선교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아프리카 교회가 아프리카인들의 가난과 고통을 그대로 대변하지 않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여러 아프리카 친구들에게서 들은바, 아프리카의 문제는 대체로 ‘부패’의 문제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교회가 그 부패의 중심부터 변두리까지 걸쳐 관여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성공회가 더하면 더했지 예외가 아니다. 짐바브웨 하라레 교구는 작은 일례에 불과하다.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가? 무엇이 그분의 눈과 귀를 막는가?
7. 정통과 진리의 문제
이제 다른 생각이 따라 나온다. 신앙과 진리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다. 교회는 역사 속에서 진리를 바로 부여잡고 있느냐를 정통(orthodox) 논쟁으로 다뤘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서로 정죄하고 파문하고, 심지어는 서로 살육하는 역사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신앙의 문제는 진리의 문제나, 그와 관련한 정통의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진리는 신, 혹은 초월자에게 유보되는 사안이다. 다만, 인간은 그 진리의 파편을 저마다의 맥락에서 부여잡고, 그것을 어떻게 삶과 역사 속에서 펼치며 살아가느냐를 일로 삼는다. 이때 참된 신앙의 식별자는 ‘정의'(justice)이다. 이른바 ‘칭의론’은 하느님과 누리는 바른 관계에 관한 문제이다. 그런데 사람 사이에 바른 관계를 누리지 않으면, 즉 정의로운 관계를 살지 않으면서, 하느님과 바른 관계를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진리를 다루는 방법은 논리적인 연역 혹은 귀납의 문제나 대상이 아니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대개 그 진리 안에 압도되는 경험, 즉 ‘나’를 초월한 더 큰 것에 휩싸여서 자신의 한 없는 부족함과 작음, 그 유한성을 인정하는 순간에 느끼는 것이다. 여러 건전한 종교의 경험이 대부분 그렇다.
이런 점에서, 제도로서 교회와 성직자는 늘 ‘매개자'(medium/sacrament)이다. 신학도 하느님의 진리를 불완전하게 매개하는 방법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그 매개자/체가 소유자를 자처할 때, 권력이 끼어들고, 분리를 부추긴다. 권력은 늘 소유와 비소유를 가를 때, 그리고 그 분리를 유지하려는 방법으로 존재한다. 그 권력이 억압과 지배를 낳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July 1st, 2010 at 8:04 pm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는데요.
말미(7.)의 문장들은 참으로 탁월한 통찰이십니다.
7.을 좀더 따로 떼어 풀어주시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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