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관 게이트'(mitregate)의 배경

최근 세계 성공회 내의 기류가 좋질 않다. 특히 영국 람베스 궁(캔터베리 대주교 집무실)과 미국 성공회의 관계를 둘러싸고 말이 무성하다. 일전에 번역하여 올려놓은 미국 성공회 의장 주교인 캐서린 제퍼츠 쇼리 주교의 설교에는 몇 가지 논쟁의 맥락이 있고, 그와 관련된 특정한 사건은 언론을 타고 일파만파 퍼지면서 두 주교 간의 문제가 아니라, 영국 성공회와 미국 성공회의 갈등 양상으로 비칠 지경이다. 물론 속내는 더 복잡하니 그리 단순하게 바라볼 문제는 아니다. 사태는 가까이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고, 그마저도 오랜 역사적 뿌리가 있다. 이 점을 살피지 않고 보면, 특정한 사건에 따른 진영 싸움으로만 오해할 소지가 크다. 그 논란의 내력을 간단히 요약하고, 언론의 관심거리가 된 특정한 사건을 잠시 언급하겠다. 그 사이에 이런 일들을 지켜보는 내 생각을 덧붙인다.

1. ‘인간의 성’과 세계 성공회의 갈등
논란의 맥락을 가까이 살피면, 지난 20여 년 간 ‘인간의 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태도, 특히 동성애에 관한 세계 성공회의 다양한 이해와 논쟁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2003년 미국 성공회의 동성애자(커밍아웃한 게이) 주교 성품과, 지난 5월 15일에 미국 LA 교구에서 다시 동성애자(커밍아웃한 레즈비언) 동성애 주교 성품이 논란의 핵심이다. 이 문제를 두고 세계 성공회는 내홍과 분열의 위협에 시달렸고, 미국에서는 미국 성공회(The Episcopal Church)를 떠난 보수파 지도자들과 교회로 구성된 독립된 단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새살림을 차린 교회는 세계 성공회의 다른 보수적인 관구들과 서로 돕고 의지하는 관계이기도 하여, 세계 성공회의 내홍은 복잡해진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이미 이 블로그 여기저기에 적은 적이 있다.

2. LA 동성애자 주교 성품
지난 5월 15일 LA의 부주교 성품 이후,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성령강림절 서신'(Pentecost Letter)을 세계 성공회에 보냈다. 이 편지는 세계 성공회의 일치가 성령의 뜻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동성애자 주교 성품이 교회 일치를 모색하고 있는 몇 가지 조치(윈저 보고서)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미국 성공회에 대한 적절한 제재를 제안했다. 그 제안은 성공회 내 에큐메니칼(교회 일치) 대화 기구에 참여하는 모든 미국 성공회(TEC) 위원들의 사퇴였다. 며칠 후 세계 성공회 총무는 미국 성공회 측 위원들의 직무 정지를 통보했다.

이 제안과 곧 뒤따른 조처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요, 그 적용의 형평성에 대한 비판도 잇따랐다. 이른바 다른 관구 치리 지역을 침해하고 있는 남미의 서던 콘 관구에게도 비슷한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했으나, 실제로 위원 사퇴 같은 해당 사항은 거의 없다. 게다가 치리 관구 침해 문제와 관련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관구 교회들에는 아직 어떤 공식적인 제재 요구가 전달되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제재 제안과 조치는 중요한 의문을 남긴다. 캔터베리 대주교와 세계 성공회 총무가 이런 결정을 내리고 처리할 권한이 있는가? 실제로 지난 몇 십 년 동안 세계 성공회의 운영을 담당해 ‘세계 성공회 협의회'(the Anglican Consultive Council: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성)의 위치는 지난 10년 동안 유명무실한 위치로 전락하고 있다.

3. 미국 성공회의 반응
미국 성공회(The Episcopal Church)는 이 제재를 통보받았고, 미국 성공회 관구장인 캐서린 제퍼츠 쇼리 주교는 미국 성공회 신자들에게 보내는 [사목 서신]을 발표했다. 서신에서 성령의 활동이 특정하게 제한된 의미의 교회 일치에 갇히지 않는 것이며, 세계 성공회 내의 불일치와 다양성은 오히려 성공회 전통이 발전시켜 온 역사의 은총인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정해진 대로, 영국 성공회(The Church of England)와 스코틀랜드 성공회(The Scottish Episcopal Church)를 방문했다. 스코틀랜드 성공회 관구 의회에 초대받아 행한 연설에서, 그는 스코틀랜드 성공회와 미국 성공회의 역사적 연관성, 특히 국교가 아닌 스코틀랜드 성공회의 전통과, 식민지 이후의 교회로서 미국 성공회의 경험을 통해서 근대적인 세계 성공회의 한 방향이 마련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적시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선교’가 어떻게 교회를 형성하고 교회를 변화시키는가를 식민지 선교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통해서 역설했다.

이 점은 세계 성공회(The Anglican Communion)의 형성에서 미국 성공회와 같은 식민지 이후 교회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설명하는 것이다. 성공회를 ‘영국’ 성공회(The Church of England)의 연장으로 이해하는 반복된 오류에 도전하는 중요한 상식이다.

4. 캐서린 주교의 런던 서덕 주교좌 성당 설교
캐서린 쇼리 주교는 영국 성공회 런던 서덕(Southwark) 교구 주교좌 성당에서 설교와 성찬례 집전자로 초대받았다. 이 소식을 듣고 문득 스친 생각은 여성인 그의 ‘주교직’이 영국 성공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하는 것이었다. 영국 성공회는 여성 사제를 서품하되 아직 여성 주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교는 여전히 사제인 까닭에 쇼리 주교가 설교하고 성찬례는 집전하는 데는 논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쇼리 주교는, 예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 시몬의 집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터에 난데없이 ‘거리의 여자’인 막달라 마리아가 찾아와 자신의 머리를 풀어 눈물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어 닦아 드린 복음 이야기에 따라 설교했다(공동성서정과표). 그 설교 전문은 며칠 번 번역해서 이 블로그에 올렸다.

5. “Mitregate”(주교관 게이트)?
아니나 다를까. 영국의 가디언 지는, 캔터베리 대주교는 쇼리 주교에게 성찬례에서 주교관(mitre)을 쓰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쇼리 주교는 이 요청을 받아들이되, 주교관을 머리에 쓰지 않는 손에 들고 순행했다고 전했다. 기사가 틀렸길 바랐다. 그러나 곧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가 ‘여성’ 주교인 것과 관련된 문제인 탓에, 그의 설교 내용이 울리는 점이 많았다. 한편, 쇼리 주교를 초청한 서덕 주교좌 성당의 주임 사제도 영국 성공회 내 보수파의 비난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일 저녁 예배 설교에서 쇼리 주교에 대한 일부 보수파들의 반응을 소개한 뒤, 절차 문제에 대한 해명과 더불어, 그 주일 미사의 본기도(the collect)와 복음 본문의 뜻을 풀어가며 차분하고 명료하게 반박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쇼리 주교가 주교관을 쓰지 않도록 캔터베리 대주교 측에서 요청받은 일과 더불어, 람베스 궁이 쇼리 주교의 삼성직(부제-사제-주교) 서품을 증명하는 문서를 요구했던 것도 밝혀졌기 때문이다. 쇼리 주교 자신은 미국에 돌아와서 이러한 처사가 ‘넌센스’이며 ‘기괴한 일’이라고 논평했다. 그것이 영국 성공회의 특수한 사정에 관한 것이든 아니든, 이 사건은 이른바 ‘주교관 게이트'(mitregate)로 불리며, 세계 성공회의 구도와 미국 성공회에 대한 캔터베리 대주교의 의중을 불신하는 분위기로 치닫고 있다. 당연히 이런 일에는 과장과 오해가 끼어들고, 언론이 부추기는 선정주의에 휘말리다 보면, 불필요한 불신까지 생겨난다. 이런 과장과 오해를 부추기고, 언론에 먹잇감을 던져주는 일은 덕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사태를 보는 내 생각을 다음 글에서 덧붙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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