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성찰” 잡감 – 민노씨에 기대어

며칠 전 민노씨는 “악(惡)의 숙주: 달콤한 망각, 뒤틀리는 대학”이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며칠 고쳐 읽으면서, 그 글에 쓴 댓글을 옮겨 놓는다. 옮기면서 그전에 날을 달리해서 올린 벗된 어느 신부님께 드리는 편지의 내용과 상충하면서도 서로 돕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늘 처지에 따라 다른 말을 한다.) 이렇게 적었다.

눈물 나도록 아프고 고마운 글입니다.

우리는 종종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남의 허물을 짚어내고 손가락질하지만, 그 비판의 대상에 자신을 포함하기를 주저하는 듯합니다. 아니, 자신에게 편만한 욕심을 감추기 위해, 그 비판이 더 거세지고 목청만 높이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찰이 없으니 그런 비판이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꿈꾸는 희망은 희망대로, 우리의 너절한 욕심과 욕망은 그것대로 드러내고 비추어 스스로 반성하는 일은 투명해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며칠을 두고 다시 읽은 이 글에서 그런 자신에게 투명하고 정직하려는 민노씨의 몸부림과 호소를 듣습니다. 그 자리가 비판적인 성찰과 비판의 행동, 나아가 변화를 위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첫 출발인 것을 봅니다. 민노씨의 부끄러움은 누구를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읽은 이들이 자신을 비추어 자신 안에서 자신만의 부끄러움으로 발견하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그 처지에 따라 어떤 행동이 가능한지도 보여줍니다. 그러니 민노씨는 찌르지 않는데, 나는 찔려서 아프고, 그러다가 나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니 고마운 일입니다.

미안했습니다. 예의 상지대 사건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제는 몸만 대주지 말고 민노씨도 좀 이기적이 되어 자신을 위해서 좀 살아보라’고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이런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민노씨의 처지를 염려한다며 내 허튼 조언에 핑계를 붙였지만, 그 조언에 감사한다고 말한 뒤 상황을 설명하는 민노씨의 마음을 알아듣고 부끄러웠습니다. 돕지 못해서 미안했습니다. 멀리서 편하게 말만 해서 미안했습니다.

나이들 수록, 경륜을 쌓을수록, 혹은 책 한 권 더 읽을수록, 종종 나는 내 무관심과 방관을 ‘세련된 것’으로 치장했고, 너무도 ‘익숙하여’ 변화될 수 없는 세상이라 변명했습니다. 악은 선의 부재일 뿐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한 사람이 이런 세련된 치장과 익숙한 변명 속에서, 선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지 않을 때, 그것이 바로 편만한 ‘악의 정체’입니다. 실은 “우리가 그 악의 공범들”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가 그 악”입니다. 우리 자신이 ‘악의 숙주’라고 말하는 것은 자학이 아닙니다. 더는 악의 식민지가 되지 않으려는 가장 첫 깨달음이어야 합니다.

상지대 사건과 더불어 사적인 경험을 통해서 ‘당사자주의’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점에서 더욱 얼굴이 달아올라 화끈거렸습니다. 세련된 ‘방관자의 알리바이’에 익숙한 처지가 되어서, 짐짓 혀를 차며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 사이 내 안의 감수성이 메말라 가는 것을 느끼지 못했고, ‘냉철한 체’하며, 내 안의 열정을 억누르고, 공중 부양한 양, 도통한 훈계 질이나 하려 했습니다. 그 유혹들이 너무나 ‘달콤’하여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사이 변화를 위한 실천의 상상력은 간데없이, 온갖 도사인 척하는 허황한 판타지에 취해 스멀스멀 내 감수성이 좀 스는 것도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래서 민노씨를 이렇게도 읽습니다. 모두가 한 생각일 필요는 없다고, 모두가 하나 된 투쟁의 대오에 줄 세우자는 게 아니라고. 다만, 누구나 자기 처지에서 그 투명하고 정직한 성찰을 시작할 수 있고, 그 성찰이 지시하는 비판과 실천을 잇대어야 한다고. 작은 고백과 성찰과 실천이라도, 그것이 우선은 내 안의 감수성을 유지하고, 선의 상상력을 지켜나가는 길이라고.

그리고 민노씨와 상지대의 여러 친구, 그리고 “The나은”양과 함께 하는 모든 일은 고통과 패배인 듯한 현실 속에서도, 고통으로만 남지 않고, 여전히 감당할 만큼 즐거운 삶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감사의 합장

4 Responses to ““투명한 성찰” 잡감 – 민노씨에 기대어”

  1. 민노씨 Says:

    저에겐 너무도 과분한 글입니다.

    이런 고마운 글 때문에 제가 블로깅하는, 때때로 심연에 가라앉아 느껴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그 이유들이 다시 떠오르는 느낌입니다.

    신부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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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거 Says:

    “자신에게 투명하고 정직하려는 민노씨의 몸부림과 호소” 이 한 대목만으로도 저는 부끄러워지는데요..
    신부님..성탄절에 자신에게 투명하고 정직하려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축복의 기도를 해주세요.. 저는 죽을 때까지 그렇게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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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Paul Says:

    신부님! 그간 안녕하셨지요?
    아주 오랜만에 들렀는데, 신부님의 블로그는 여전히 진중함과 따뜻함을 모두 잃지 않고 있어 더더욱 반갑습니다.
    일전에 정동에서 한번 뵙고선 몇 년이 흘렀는데, 공부는 아직 마치지 않으신 것인지요? 언제 한국에 들어오실 일은 없으신지… 지난 번처럼 잠깐이라도 얼굴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간 제게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교구 신학생이 되었지요. 변함없이 불러주시는 하느님께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요. 기회가 된다면 꼭 뵐 수 있기를, 그리고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조금 늦었지만 성탄 축하드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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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민노씨 Says:

    너무 오랫동안 글이 올라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약속(?)하신 헌사는 아직인가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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